아이를 독립인격체로 바라봐야하는이유?
우주의 별은 어쩌면 각기 다른 독립인격체가 아닐까?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과 오대산에 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낡은 스타렉스를 타고 오대산에 가서 차에서 숙박했다. 지금이야 캠핑이 활성화되어있어 접하기 쉬웠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지금처럼 캠핑이라는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다. 차를 타고 이동하다 이불만 있으면 그곳이 캠핑 장소가 됐다. 빛이 한 줌도 들어오지 않는 곳까지 올라가 주차를 했다. 차에 비추는 라이트 불빛만이 유일했다. 아버지가 밖으로 나와 보라고 했다. 하늘을 바라보니 우주가 내 눈앞에 펼쳐진 것만 같았다. 어둠뿐인 주위에 하늘에 별이 쏟아질 듯 내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다시 그러한 체험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은 하늘을 봐도 과거 오대산에서 바라본 별처럼 생생하게 별의 밝기를 느낄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우주를 가르칠 때 지구는 우주에서 바라보면 작은 좁쌀과 같다고 이야기한다. 우주에는 어쩌면 우리와 같은 지적 생명체 즉 외계인이 살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수많은 별은 하나의 우주가 아니라 각기 다른 독립인격체가 아닐까? 빛의 색은 비슷한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자신만의 개성의 빛을 뿜어내고 있지 않을까? 아이들의 시각으로 과거를 추억해봤다.
법륜 스님은 수많은 강의를 통해 대중에 깨달음을 주고 가르침을 설파한다. 법륜스님의 깨달음 이면에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기준이 있다. 그 기준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통찰해 내기 때문에 어떠한 물음에도 답할 수 있는 식견을 가지고 있다. 나는 종교가 없어도 가끔 법륜스님의 강의를 듣는다. 강의를 듣다 보면 어떠한 물음에도 현명한 대답으로 우문현답의 자세를 보여준다. 세상에 수많은 사연과 생각의 차이가 있지만, 법륜스님이 답변에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한 강의에서 초등학생 어머님이 법륜스님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나는 아이를 위해 모든 걸 받쳐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있는데 아이는 공부를 하지 않고 방에 들어가 유튜브만 본다는 것이다. 매일 유튜브만 보며 공부를 안 하니 참아야 하지 하면서도 자꾸 가시가 돋친 말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가시 돋친 말을 내뱉을수록 아이는 더욱더 부모와 멀어지는걸 느꼈다고 한다.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인데 벌써 사춘기가 온 것도 아니고 참으로 힘들다고 이야기했다.
법륜 스님은 이에 대해 해답을 내놓으셨다. 아이의 인생은 아이의 인생이고 부모의 인생은 부모의 인생이라는 것이다. 가족을 이루고 즐겁고 화목한 가정이 되어야 하는데 왜 아이와 불화를 통해 고통으로 들어가야 하냐는 것이다. 그 이면에는 아이를 개인적 독립체로 바라보는 시각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답은 간단했다. 아이의 인생이니 부모가 너무 고통스러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미래 아이의 운명은 지금 우리는 모른다. 추측만 할 뿐이다. 유튜브를 보기 때문에 공부를 못할 거야, 공부를 못하면 사람 구실을 못할 거야, 이러한 추측 말이다. 하지만 아이가 오히려 창의적인 유튜브 크레이터가 될 수 있다. 오히려 잔소리하기보다는 아이가 좋아하는 걸 한번은 부모님도 같이 해보는 걸 추천했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바라봤을 때 해결책이 생긴다는 것이다. 법륜스님은 아이가 유튜브를 24시간 내내 보면 자신도 질려서 나중에는 다른 걸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대중이 폭소하며 공감했다. 아이들은 청개구리와 같아서 부모가 하지 말라고 하면 반항심리로 더욱 부모와의 관계가 멀어진다는 것이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이였지만 왜 점점 사이가 멀어지는 모르는 이유는 내가 아이를 제어하고 내 안에 가둘 수 있다는 생각에 기인하는 것이다.
모든 사물은 각자 독립 인격으로 존재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각자 해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만이 서로를 독립인격체로 보지 않고 자신의 견해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실망하고 고통스러워하고 미워하게 되는 것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 각자의 꿈을 위해 살아간다면 남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시기하며 갈등을 불러 일으킬 필요도 없다. 설령 사물 또한 독립인격체가 있는데 생각하는 아이들은 더욱 그러하지 않을까? 우리는 생각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상처받고 실망하게 된다. 가까운 부모와 아이의 관계라면 더욱 독립인격체로 아이를 존중해 줘야 한다. 법륜스님은 아이를 키워보지 않았지만 어떡해 저런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다. 나도 법륜스님만큼은 아니지만, 세상을 독립인격체로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지금은 아이를 키우는데 스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다. 독립인격체로 바라봤을 때 아이만의 장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이가 무얼 좋아하는지 드려다 보게 된다.
친구 중에 명문대를 나와 약대에 진학한 친구가 한 명 있다. 친구랑 술자리를 하다 보면 부모님과의 관계가 좋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약대에 들어가긴 했지만 사실 고등학교 때 연기에 관심이 많아 연기자 되는 게 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님에 성화에 연극동아리도 그만두고 공부에 몰두하게 되었다고 한다. 학원을 어찌나 뺑뺑이 돌리는지 과외를 포함해 학원을 네 군데나 다녔다고 한다. 주말에도 쉬지 않고 학원을 가고 공부를 했다고 한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부모님이 원망스럽게 느껴졌다고 한다. 나는 평범한 고등학생 시절의 추억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한다. 공부만 하느라 친구를 만날 시간도 내 꿈을 어필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도 부모님은 나에게 전화해서 누구 때문에 약대 갔는지 알지? “다 엄마 때문이야”라고 할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한다. 나는 속으로 행복해야 할 부모님과의 관계가 누구나 꿈꾸는 약대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소원해 져야 하는지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글을 쓰고 세상을 들여다보면서 이유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아이를 내가 달성해야 하는 꿈의 대상으로 투영해서 아이를 키우기 때문이다. 아이의 성공이 내 성공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이의 실패는 곧 내 인생의 실패라고 그릇된 생각 때문에 사이가 나빠진 것이다. 친구가 크게 성공하더라도 지금으로 봐서는 부모와의 관계는 나아질 것 같지 않아 보였다.
나는 내 친구의 부모 입장에서 생각해봤다. 얼마나 슬플까 하는 생각에 우울해졌다. 만약 내가 사랑하는 아이가 커서 아빠를 놔두고 저 멀리 떠난다면 나는 부모로서 실패한 인생이지 않을까? 가족의 행복 빼고 다른 더 좋은 선택지가 있을까? 돈이 아무리 많더라도 가족이 불행하다면 행복한 기준이 될수있을까? 아이가 부모의 강요 속에 성공하더라도 아이가 힘들어하고 원망한다면 행복할까? 에 대한 고민을 해봐야 한다. 2017년 ”스카이캐슬“드라마가 대중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명문대에 들어가기 위한 부모님들의 과도한 집착 그리고 잘못된 방식의 사랑이 나중에 가족 모두를 파국으로 몰고 간다. 미래는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정답은 각자 찾아 나가는 것이다. 내가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게 인생살이다. 그러므로 더욱더 아이를 독립인격체로 바라봐야 한다. 앞으로 자존감 높은 아이는 자신의 인생의 발자국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독립적인 아이로 자라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