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바뀌는 시기가 사춘기다.
우리는 사춘기라 하면 청소년기에 반항하고, 방황하는 시기로 오해한다.
왜 내 아들은 부모의 말을 안 듣지? 왜 내 딸은 문을 꽝! 닫고 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 거지?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가장 두려워하는 시기가 아이들이 사춘기 시기를 겪는 때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부모도 사춘기를 겪은 적이 있다. 나는 사춘기를 겪지 않았다고 하지
만 당시로 돌아가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에게 물어본다면 "너! 사춘기 있었어라고 이야기한다."
단지 나만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세월이 지나서 "망각"해 버렸기 때문에 사춘기에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그럼 우리는 죽기 전까지 다시는 사춘기의 감정을 못 느끼고 죽는 것인가? 그리고 아이를 키우면
서 사춘기가 나쁜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한다.
만약 마흔 살에 사춘기를 겪는다면 키우는 아이의 감정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다른사람들은 그거 갱년기 아니냐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정확힌 제2의 사춘기라고이야
기하고 싶다. 그리고 사춘기는 나쁜 게 아니라 우리 삶에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중요한 요소라
고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사춘기 시절이 나한테 없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모님께 물어보니 사춘기는 분명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다른 아이처럼 심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나에게 사춘기란 있었나? 없었나? 가물가물한 추억 속 기억이다.
작년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책을 쓰기로 마음먹은 계기는 삶의 간절함과 어떤한 계기로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이 생겨났다. 즉! 세상을 바로 보는 시선이 남들과 달라진 것이다.
사물을 보고 사람을 보고 생각을 느끼는 감정과 감촉들이 과거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것도 마흔 다 되어서 다가온다는 건 내가 생각해도 왜 이러한 현상이발생했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예를 들면 잘 살고 있다 갑자기 신이 접신해 무당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하면 맞을 것이다.
갑자기 생각의 크기가 커져 버렸다. 평범한 사람들 99%로 가 같은 방향을 보는데 이제 나는
1%의 다른 방향을 보고 깨달음의 크기도 커져버렸다. 그러면서 뇌가 급격하게 확장됐다.
뇌가 확장되고 과거에 없던 생각의 크기가 팽창해 버리자 남들이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말들이
이제는 이해를 하지 못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어른이 돼서 사춘기가 와버린것이다.
어른이 돼서 사춘기를 마주한다는 건 아마 나만의 세상 그리고 철학이 적립되는 과정일 수도 있다.
단기간에 생각의 크기가 커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약간의 "우울함"과 다른 사람들과의 "단절감"이 발생한다. 그리고 사람들과 멀어지고 싶
다는 감정과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 올라온다.
이러한 감정은 청소년기의 아이들이 느끼는 "사춘기"와 같지 않을까 한다. 즉 사춘기는 생각의
크기가 급격하게 팽창하는 시기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생각의 크기가 커지는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반황한다" "말을 듣지 않는다" "걷 돈다" "싹수가 없다"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사춘기는 생각의 크기가 초등학교를 지나 급격하게 커지는 시기이다.
어른이 돼서 우리는 사춘기 시절을 망각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매몰차게" 단정지으면서
이야기 하는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기가 왔을 때 기다려줘야 한다. 나만의 생각을 적립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믿어줘야 한다. 믿어준다면 알아서 자신의 생각의 틀을 확립해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를수 있다.
결국 부모도 사춘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사춘기를 겪어봐야 내 아이, 타인의 아이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