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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May 04. 2016

그 흔한 한마디, 그러나 쉽지 않은

티켓 한 장 들고 일탈을 시행하다.


언제부터였더라. 내가 여행을 꿈꾸기 시작했던 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기억나는 것 하나는

20살, 대학생 때 학교 앞에서 나눠줬던 여행사 팸플릿 하나. 거기서 부터였다. 내가 여행을 시작한 건.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했고, 동행을 구하고, 고이 모셔두었던 팸플릿을 꺼내 여행사에 직접 가서 계약을 했다. 그렇게 나의 첫 여행은 이루어졌었다.


그게 벌써 10년 전의 이야기다. 작년까지 나는 1년 6개월을 여행사, 정확히 말하면 랜드사 오피로 일했었다. 익히 알려진 대로 적은 월급에, 새벽까지 야근을 하는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여행사에서 일하고는 있었지만 일은 일일 뿐, 실질적 여행과 나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었으며 나는 그저 평범한 월급쟁이 일 뿐이었다. 그 전까지 나에게 여행이란, 돈과 시간이 충족될 때에만 가능한 일로 치부되었다. 그런데 동료 직원들이 너도나도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홍콩으로, 태국으로, 스페인으로. 나는 너무너무 궁금했다. 도대체 무슨 돈으로, 어떻게, 그들은 이 바쁜 와중에도 떠날 수 있는가. 정답은 하나. 신용카드!!! 그랬다. 적은 돈이라도 월급쟁이 이기에 가능한 일, 매달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 하나 믿고 그들은 카드를 긁었다.


그리하여 나도 긁었다. 몇 날 며칠을 검색하고 고민하다 비싼 항공권 가격에도 불구하고, 나는 티켓을 구매했다. 그 티켓 한 장의 위안으로 나는 2달여를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그 비싼 티켓은 값을 톡톡히 치렀으며, 비슷한 가격에 저가항공을 이용했다는 다른 여행객의 말에 더 큰 기쁨을 나에게 안겨주었다.


4월 29일. 여행 가기 하루 전. 나는 정신없이 밀린 일들을 후다다닥 해놓고는 어이없게 영화를 보러 갔다.

그리고는 자정이 다 되는 시간에 집으로 돌아가 주섬주섬 짐을 싸기 시작했다. 잠은 비행기에서 자면 되니까.

3시간쯤 잤을까. 공항에 간다는 그 설렘 하나로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눈을 뜰 수 있었다.



나의 여행은 5박 7일, 타이 항공을 이용해 태국 경유, 방콕 1박, 라오스 4박의 일정이었다.

내가 방콕 경유를 택한 이유는 딱 하나, 배낭여행자들의 천국, 카오산 로드가 가고 싶어서였다.

방콕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걱정 없이 맥주와 기내식을 음미하며 비행을 즐겼다.

시작부터 나에게 어떤 위기가 발생할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아무런 계획 없이 달랑 비행기 티켓 하나 들고 시작된 나의 일탈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나이 먹었나 봐. 비행기에 올라탔을 뿐인데 외롭네 ㅋㅋ 왠지 내 그릇을 뺏어갈 거 같아 허겁지겁 기내식을 먹다가 문득 창문을 봤다. 특별한 맛도 없는데 기내식은 왜 맛있을까 생각했는데, 단 한 번도 이런 생각 안 들었었는데 그건 하늘 위에서 먹는 밥이라 그런가 봐. 하나씩 새롭게 깨닫는다. 허공 위에서 식사라니, 꽤나 낭만적이지 않은가. 너무 졸리고 너무 외롭고 너무 배부르다가 하늘이 너무 예뻐서 가슴이 벅찬다. 시린 건가? 연애하고 싶다. 젠장 ㅋㅋ

- 2015.4.30 비행기 안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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