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난 여행의 끝
다시 방콕. 환승 대기 시간이 10시간 이상 남아 카오산로드에 가서 잠깐 놀다 오기로 했다. 첫날 버스를 타고 가려다 어마어마한 시간을 투자하는 낭패를 봤기에 시간이 촉박한 나는 이번엔 택시를 탔다. 택시비 가지고 장난친다는 말을 들어서 타자마자 미터기를 켜달라고 하니 군말 없이 미터기를 켜준다. 방콕은 처음이니? 어디서 왔니? 등등 이런저런 질문을 하고 친절한 아저씨구나라고 생각하려는 찰나 미터기가... 미터기가...!!!!!!!!!!!
이런 개 X..!!!!!! 조작 미터기였다. 신호에 걸렸는데 미터기가 미친 듯이 올라가는 거임.
미터기가 이상하다!!
택시 타고 며칠 전에 갔는데
왜 이렇게 비싸냐!!
내가 무슨 말을 해도 택시기사는 traffic만 읊조린다. 교통체증 때문이라니... 근데 서 있는데 미터기가 왜 끊임없이 올라가니... 그냥 중간에 내릴까 하다가 퇴근길에 택시 잡기도 힘들 거 같고 입국하는 마당에 여행도 다 끝났는데 괜히 일 크게 만들지 말자 싶어 그 뒤로 말 한마디 안 하고 창밖만 바라보며 화난 얼굴로 카오산로드까지 갔다. 안 그래도 가슴에 화가 많은 난데, 정말 너무너무 화가 났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500바트 던지고 문을 쾅 닫고 내리는 것뿐. 반만 주고 내리고 싶었지만 혹시나 타지에서 칼 맞을까 봐 무셔워서~ 화는 많은데 그 와중에 또 겁도 많음. 카오산-파야타이 역까지 조금 더 주고 흥정해서 탄게 200이었는데. 말할 때는 없고 너무 열 받아서 핸드폰 노트에 욕을 썼다.
과잉친절을 조심하라 늘 그랬듯이
개자식
근데도 너무 화가 나서 가계부 쓰며 한번 더 욕함.
개XX 택시 드라이버
그때를 떠올리며 글을 쓰자니 다시 화가 치밀어 오른다. 젊은 놈의 자식이 그렇게 살면 안 되지. 다행히 공항 돌아갈 땐 착한 아저씨 만나 제대로 지불하고 130에 갔다.
아무튼 또다시 우여곡절 끝에 카오산로드에 도착했다. 가장 먹고 싶었던 콘파이를 먹으러 맥도날드부터 고고씽!! 아~ 기다리고~ 고~ 기다리던 (어머~너무 옛날 사람 멘튼가) 콘파이!! 넘나 맛난 것!!♥ 하나 더 먹고 몇 개 더 사 올걸 하는 후회가 드는군. 혼자 여행 가면 참 안 좋은 것이 많이 먹지를 못한다. 역시 먹을 땐 누군가 함께여야 양도 맛도 배가 되는 것 같다. 약 1주일 전 겨우 하룻밤 지내고 간 곳이지만 그래도 금세 다시 돌아오니 익숙한 동네 같고 마실 나온 느낌이 들었다. 콘파이 먹고 어슬렁어슬렁 지인들에게 줄 기념품이나 살까 해 한 바퀴 돌아본다. 그리하여 코끼리 파우치 몇 개와 말도 안 되는 프린팅 민소매 티셔츠를 2장 샀다. 하지만 나에게는 넘나 귀엽고 편한 것~ 한국 와서도 가끔 입고 있다. 헤나도 하고 싶었지만 시간 관계상 대기자가 너무 많아 그건 패스. 그렇다면 나에게 남은 옵션이란 시원한 맥주가 되겠지.
카오산로드를 빙글빙글 돌다가 테라스가 있는 펍에 자리를 잡았다. 일단 큰 병!! 맥주를 하나 고르고~ 음식은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튀긴 음식보다는 건강한 음식이 먹고 싶어 로스트 치킨 어쩌고 하는 메뉴를 주문했다~ 어머나!! 그런데 저건 넘나 맛난 것!! 숟가락으로 국물까지 퍼먹퍼먹~ 말 다했지 뭐. 개인적으로는 싱아보다 창이 더 맛있는 것 같다. 조금 더 진한 맛이랄까? 아무튼 여유롭게 앉아 마지막 휴일을 즐기고 있었더랬다. 그리고 이제 이 여행을 정리할 겸 펜과 종이를 꺼냈다. 카페를 갈 때도 여행을 갈 때도 나는 늘 펜과 종이를 챙겨 다닌다. 펜으로 생각을 끄적이는 게 너무 좋다. 회사에 다니는 1년여 동안 너무나 힘들었던 걸까? 일기를 쓰기 시작하자마자 갑자기 목이 메어오며 눈물이 눈에 그렁그렁 맺혀왔다. 동요하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리고 의자에 등을 기대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펜을 쥐었는데 어머나... 이게 웬일!! 눈물이 자꾸만 흘러나온다. 그리하여 나는 멋있게 선글라스를 집어 들었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선글라스 밑으로 흘려보내며 티슈로 연신 콧물을 닦아내었다. 대로변에 앉아서 주책없이 그렇게 울었더랬다. 들어오던 외국인 두 명이(하필 난 또 입구 쪽에 앉아있었다.)
저 여자는 왜 이렇게 슬프게 울고 있지?
라며 내가 못 들을 거라 생각했는지 속닥이며 지나갔다. 순간적인 감정으로 옆에 가서 대화라도 해야 하나~제가 왜 울고 있냐면요~ 라며 설명이라도 해줘야 하나 1초 망설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럴 때 감정에 치우치면 나중에 창피해진다는 걸 알기에 진정하고 다시 내 마음을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 날의 내 마음과, 제대로 혼자 한 여행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러했다.
택시 아저씨 때문에 기분이 나쁘다. 우라질.
덥고, 습하고, 땀나고...
혼자서는 영~ 웃음이 나질 않는군.
나는 나약한 걸까?
모두 다 힘들게 살아가는 삶을
나는 유독 버티지 못하는 것도 같다.
나는 괜찮은 걸까?
즐거웠던 여행의 마지막에
지금까지의 나를 회상해보며
나는 아직도 나를 더 알아갈 시간이
필요함을 느낀다.
여행은... 아니 여행도 할수록 느는구나.
뭐든 할수록 느는구나.
삶의 원리는, 진리는 다 똑같군.
여행 참 좋다.
결론적으로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군.
아무 대책 없이 온 여행에서
너무나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리하여 너무나 즐거웠다.
하루하루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나의 행운과 행복은
이런 뜻하지 않은 장소와 시간에 발견되고,
그로 인해 또다시 일상을 버틸 힘을 얻는다.
때로는 죽을 듯이 혹은 은둔하고 싶을 만큼 삶이 나를 힘들게 하지만
잠시의 일탈로
다시 삶을 헤쳐나갈 힘을 얻는다.
이래서 삶은 살만하고,
또 살아볼 값어치가 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을 만큼
힘든 나날이 있었지만
살아갈 이유는, 행복할 이유는
늘 찾아오곤 한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시점이다.
생각보다 훨씬 즐겁고 알차고 다이나믹한 여행이었다. 비행기표를 끊고 3달을 기다리고 기다렸던 여행이었다. 인내의 시간만큼 그 열매는 달디달았으며 삶의 힘든 시간이 없었다면 달콤한 이 시간이 이렇게 이가 시릴 만큼 달콤하게 다가오지 않았으리라. 5박7일, 정말 꽉 차게 즐기고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배낭을 멘 채로 회사로 출근하였다. 다행히도 회사 옆 헬스장을 이용하고 있던 나는 24시간 헬스장에서 깔끔히 샤워를 할 수 있었으며 그날 나는 업무시간 이후 자정까지 행해지는 팀 회의를 했다고 한다. 다시 일상이다. 하지만 또 떠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에 다시 고군분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