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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May 23. 2016

꿈의 배낭여행

배낭여행자들의 천국, 카오산로드를 맛보다

오후 늦게서야 어렵사리 카오산로드 근처에 도착했다. 프랑스 아저씨는 어느 정류장에선가 홀연히 사라졌고, 남은 네덜란드 여행객과 멕시코 여행객과 나는 카오산 메인로드를 향해 걸었고, 숙소를 예약했냐는 말에 

"아니, 안 했는데"

라고 당당히 말했다. 6개월 차 여행객인 네덜란드 친구는 여행 시작을 방콕에서 했고, 때문에 일전에 묵었던 싼 호스텔에서 묵을 예정이라고 했다. 멕시코 친구는 미리 예약을 했다며 바우쳐를 꺼냈는데 거기가 거기였다. 네덜란드 친구가 가는 곳이 멕시코 친구가 가는 곳, 그래서 아무런 계획이 없던 나는 

"그럼 나도 너희랑 같이 갈게"

그리고는 'FEEL AT HOME'이라는 구석진 곳에 위치한 숙소에 방을 잡았다. 사실 비싼지 싼 건지~ 좋은지 나쁜지 뭔지도 모르고 6인실에 250 바트라길래 그냥 알겠다고 하고는 배낭만 던져놓고 나왔다.

환전 소동에, 카오산로드까지 오는데 만만치 않은 체력을 소비했던 나는 당장 시원한 맥주가 시급했다.

이것이야말로 'Emergency!!', 긴급상황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된 거 또 그들과 함께~ 허기진 배도 채우고~ 목도 축이러 출발~~!!



여행 막바지였던 네덜란드 친구는 돈이 없었고, 그래서 싼 곳을 찾아다녔다. 장기 배낭 여행자였던 그들은 서로의 여행담을 나누었고, 그들을 바라보는 나는 너무나 신기했다. 어떻게, 무엇으로 저들은 여행을 다니는가. 

내 머릿속에 늘 있던 궁금증. 20대 초반이었던 네덜란드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엔지니어 일을 하며 안 먹고 안 쓰고, 일을 하면서도 대학 때와 똑같이 생활비를 쓰고 나머지 돈을 모두 모았다고 했다. 30대 초반이었던 멕시코 친구는 밤낮 가리지 않고 식당에서, 창고에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돈을 모았다고 했다.

그들은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장기간의 여행이라는 값진 시간과 경험을 얻고 있었다.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다. 배낭 메고 여행 가서 낯선 외국인 여행자들이랑 먹고 마시고 얘기하고 그들과 어우러지는 그런 여행. 정말 자유로운 배낭여행. 여행을 시작할 땐 설레었지만 외로웠고, 새로운 이들을 만났을 땐 어려웠지만 기뻤고, 그들과 약간의 대화를 나눈 뒤에는 즐겁고 뿌듯했다.



전갈 튀김도 먹어보고~ (하나에 2달러? 너무 비싸서 하나 사서 3명이서 나눠 먹었다. 근데 맛이... 무맛... 그냥 텅 빈 강정 느낌? 속이 꽉 차 있지 않아 시시한 맛이었다.)



이건 진짜 제일 맛있었다. 바나나 크레페? 맛있다고 얘기는 들었었는데~ 진짜 너무 맛있었다. 나중에 라오스 가서 먹었는데 그건 너무 달고, 식감도 딱딱하고~ 아무튼 바나나 크레페는 방콕이 진리!!



저녁을 먹은 뒤에는 편의점에서 맥주를 샀다. 네덜란드 친구가 자기가 좋은 곳을 알고 있다며 맥주 마실 장소를 찾아갔는데, 그곳은 다름 아닌 다른 게스트하우스 마당. 몇 개월 전 왔다더니~ 자기 집인 것 마냥 참 편하게 안주하더라. 자리를 잡고 놀고 있는데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나 둘 사람이 나오더니 자연스럽게 합석을 했다. 영어를 좀 더 잘했다면 좋았겠지만~ 나름 만족스러운 내 인생 첫 방콕에서의 꿈의 배낭여행이었다.

내가 사진을 찍자고 하니~ 옆에서 놀려대듯 한마디를 했다. 한국 사람들은 꼭 사진을 찍는다며~ 사진 찍자고 하면 다 한국 사람이라며~ 그래도 나는 굴하지 않고~ 그 순간을 남기고 싶었다. 남는 건 사진이니까.



나를 제외한 여행객들이 모두 몇 개월에 걸친 장기 여행자들이었다. 학생부터 직장인까지 직업도 다양했으며, 국적도 다양했다. 스쳐 지나가는 듯한 여행... 왜 난 이것밖에 할 수 없을까? 아마도 도전할 용기와, 저들만큼의 준비에 대한 노력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그들의 얘기를 들으며 나도 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어느 누구도 안될 거라고, 힘들 거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너도 할 수 있어."
"내년쯤엔 할 수 있지 않을까?"

"왜 못해? 너도 해!!"

한국에서 내가 아는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했다면, 그들 중 절반 이상은 

"이제 나이 생각해야지~"

"정신 차리자."

"정착해야 되지 않겠니?"

라는 말들을 내뱉었을 것이다. 

마음대로만은 되지 않았던, 하지 못했던 하루였지만, 포기한 것보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던 나름 뿌듯한 여행의 시작이자 방콕과의 만남이었다.  


역시 인생은 알 수 없는 것... 전혀 예상치 못한 하루를 보냈다.
비록 먹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하고 싶은 것도 하진 못했지만
지금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사람들과 먹고 마시고 많은 얘기를 나눴다.
이렇게 밖에 나오니 조금 더 성장한 내가 보이는 것 같다.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도 전보다 많이 사라진 듯하고
조금 더 수월하게 말할 수 있었다. 내가 변하긴 했구나.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했던가?
조급해하지 않으니 예상치 못한 일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여행의 시작이 흥미롭다.

 
-2015.5.1 일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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