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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Jun 11. 2016

발길 닿는대로 느낌 가는대로

내려 놓으면 모든게 술술 풀린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먼저 라오스에 다녀온 친구의 조언에 따르면 '비엔티엔에 가서 한인쉼터를 찾아가라. 거기에 가면 방비엥에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라고 했다. 방콕에서 상쾌한 아침을 맞은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라 비엔티엔으로 향했다. '한인쉼터'만을 생각하며. 비엔티엔 공항은 매우 작았고, 타이 항공 경유편이라는 일반적 스케줄이 아닌 루트였기 때문에 한국인 관광객도 없었다. 공항에서 환전을 하고 한인쉼터로 가려고 했는데...아...!!... 또 다시 깊은 깨달음의 소리...

나는 한인쉼터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한인쉼터를 가겠다면서 거기가 어딘지, 어느 동네에 있는건지 알아보지도 않고 그냥 오다니. 내가 그곳에서 안내소에 물어볼 수 있는 단 하나의 말은 'Korean shelter'... 그나마 생각하고 생각해서 얻은 이 말 하나... 어딘지를 알아야 택시라도 탈 거 아닌가요. 목적지를 잃은 나는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 딱 하나 있던 한국인 관광객을 찾아가 시내로 가면 찾아갈 방도가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저 좀 내리는 곳에 떨궈달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6살쯤 되는 어린손자를 데리고 여행온 할머니, 할아버지셨는데 여행을 많이 다니신건지 너무나 자연스럽게 환전을 하고 택시를 잡고 예약도 없이 책자에 나온 호텔들 중 대충 골라서 목적지를 말씀하셨다. 너무나 감사하게 덕분에 어려움 없이 공짜로 시내까지 나올 수 있었다. 내리긴 내렸는데 또 어디로 간단 말인가. 택시 아저씨한테 물었더니 한국 식당을 하나 알려주신다. 뭐 대충 방향만 알아듣고 가는데 길도 휑하고, 그나마 있는 사람한테 물었더니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다고 하고...뭐 어쩌나. 또 걸었지.

그때 마침!! 짠!!하고 한국 식당이 나타났다. 그리고 식당 테라스에 한국인 아저씨 3분이 얘기를 나누고 계신다. 아저씨들이 다행히도 쉼터를 알고 계셨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사고와 행운의 연속이라고 해야할까. 나 스스로도 깜짝깜짝 놀라는 실수들을 저질렀지만 생각보다 수월하게 풀려 나갔다.


어렵사리 도착한 쉼터에는 몇명의 한국 관광객들이 있었고, 나는 곧장 방비엥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내가 도착한 시간은 1시 30분쯤? 그런데 이미 방비엥으로 가는 마지막 벤이 만석이란다. 그러면 터미널은? 터미널에 가서 로컬버스를 타면? 그건 가능은 하지만 언제 출발할지, 언제 도착할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정말 바람 잘 날 없구나. 나름 계획이라면 계획이었던 방비엥으로의 이동. 이 시점에서 나는 또 다시 결정을 해야했다.

아무런 확신도 없는 터미널까지 갈 것인가... 비엔티엔에서 하루를 머물 것인가...

내가 또 무리한 일정을 강행하진 않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비엔티엔에서 1박을 하기로 결정!!

그와 동시에 다시 쉼터 아저씨께 묻는다.

"아저씨 숙소 좀 알려주세요~."

막무가내. 아저씨도 당황하신다. 그리고 거기 좀 앉아 보라신다. 

"아가씨 몇살이에요?"
"서른이요." 
"요즘 서른 왜들 이러니. 큰일났네."

나는 그저 웃는다. 알고보니 아저씨가 지내는 게스트하우스에 지금 나와 동갑내기 여자 2명이 투숙하고 있는데 그들도 어디로 튈지 몰라 보호관찰대상이란다. 그런데 서른살 불안한 아가씨 하나 더 추가요~~

4박5일 일정에 루앙프라방까지 올라가겠다니 만류하셨지만 나는 이미 루앙에서 비엔티엔으로 오는 라오항공 티켓을 끊어놓은 상태. 내가 진짜 제대로 잘 해 논건 항공권 밖에 없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의 라오스 일정은 비엔티엔 1박, 방비엥 2박, 루앙프라방1박 이렇게 결정이 되었고, 지도 두 장을 들고 오셔서 관광지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시간도 애매하고, 밖은 너무 뜨겁고, 일정에 없던 비엔티엔에 머무르게 된 나는 이제 숙소며 이동수단도 해결됐겠다~ 라오스의 맥주가 궁금해졌다. 

"아저씨, 여기 근처에 맥주 마실데 있어요?"

"지금 이 땡볕에 나가서 맥주 마시면 뒈져. 사와서 여기서 먹어."

"네~"

그러시다면 그렇게 하지요. 그리하여 나는 근처 마트에 가서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사고 쉼터에 있는 얼음을 추가하여 시원하게 에어컨 바람 맞으며, 와이파이 빵빵 터지는 곳에서 한가로운 오후를 보낸다. 시원하고 나른하고 이 곳이 무릉도원. 이시간 이후로 나는 나갔다 들어왔다, 나갔다 들어왔다, 하루종일 이 주변을 배회하며 해가 지고 숙소에 데려다 줄때까지 죽치고 앉아있는다. 아저씨께서 저녁에 숙소 데려다 줄때까지 여기 있으라고 해서 말 잘 듣는 나는 또 그 말을 잘 따르며 하루를 보냈다. 나의 비엔티엔은 한인쉼터다. 이 곳을 기점으로 나의 라오스 여행이 완성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 날 오후에 방비엥 '주막'이라는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방문하셨고, 쉼터 아저씨께서 그곳에 예약을 잡아주셨다. 나에게 선택권이란 없었고, 해주시니 그렇게 할 뿐이고, 방비엥가서 혼자 어떻게 놀거냐고 걱정을 하시며 내일 가는 길에 일행도 붙여주시겠다고 하셨다. 이렇게 갑자기 모든 일정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맥주도 한 잔 하고 간단히 허기도 채웠으니 주변을 슬슬 거닐어볼까하여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 왕궁까지는 안가고 정말 그냥 주변만 거닐었다. 생각보다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사람도 별로 없고, 딱히 눈에 띄는 건물이나 식당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동양적이면서 서구적인, 이국적인 느낌이 드는 동네였다.

간단하게 동네를 돌고 다시 쉼터에 와서 쉬고 있는데 혼자 아무 생각없이 하루종일 쉼터에 죽치고 앉아있는 내가 불쌍하셨는지 아쩌씨께서 저녁 먹으러 가자고 하신다. 오예~!! 그래서 나는 쫄래쫄래 아저씨를 따라 일식당 입성!! 두둥!! 라오스에서 일식당이라니~~ 아이 씐나!! 한참을 고민하다 까츠나베를 고른다. 오~~ 맛있어!! 완전 맛있어~!! 사진 찍어서 엄마한테 보내주고~ 딸내미는 건강히 잘 살아 있다고 안부를 전해준다.     

어김없이 다시 쉼터로 돌아와서~~ 살짝 발만 찍고 앞에 열린 야시장 구경을 하러간다. 동남아 야시장이 다 그렇듯 별로 구경할 건 없지만 나는 이런 시장이 너무너무 재밌다. 자질구레한 물건들 싸다고 사봤자 집에오면 구석에 쳐박아 놓겠지만 큰 돈 들이지 않고 즐기는 나만의 기쁨이랄까? 코끼리 인형 하나를 살까말까 들었다놨다 하다 괜시리 비싼것 같단 생각에 결국은 사지 않았는데,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나를 위한 기념품을 하나도 사지 않았더라. 지금 와서야 미련이 남는다. 꼭 여행이 끝나고 나서야 하나씩 깨닫는 사실들. 다음 여행 땐 꼭 나를 위한 기념품을 사와야지. 

쉼터를 중심으로 유유자적한 하루를 보낸 나는 드디어 '철수네'라는 조금 외곽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실려간다. 숙소에 도착하니 주인 아저씨께서 맞아주셨고~ 저녁 9시 전. 이르다면 아직 이른시간. 숙소 뒤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메콩강변에 식당이며 바들이 늘어서 있다고 분위기 좋으니 한번 가보라고 하신다. 나는 고민을 한다. 외진 밤길을 혼자 걸어가자니 무섭긴한데... 안 가자니 아쉽고... 그래서 다시 직진!! 가방만 놓고 또 나갑니다. 멀리는 안가도 주변 배회는 참 잘한다. 배도 부르고~ 맥주나 한잔 할까 해서 들어간 노천 바. 그런데 갑자기 사치가 부리고 싶다. 비싸지만 그래봤자 우리나라에 비하면 싸니까~ 사치스럽게 모히토 한잔 주문!! 

하지만 대실패!! 달고 맛없어. 그냥 맥주나 마실걸. 그래도 분위기가 있으니까~ 그 맛으로 한잔하며 메콩강 밤바람을 맞는다. 

가볍게 한잔하고~ 숙소에 들어가서 씻고 나오니 쉼터 아저씨 등장이요~~!! 

"한잔 해야지?"

"네~!!" (웰컴~)

아직 끝나지 않은 나의 하루. 쉼터 아저씨, 게스트하우스 아저씨, 방비엥 '주막' 게스트하우스 아저씨, 동네 아저씨랑 이렇게 둘러앉아 맥주를 한잔씩 한다. 시원하니 좋구만. 방비엥 게스트하우스 주인 아저씨께서 낮에 쉼터에서 나를 보고 깜짝 놀라셨다고 한다. 쉼터에서 술먹는 사람은 처음 봤다며...하하하!! 뭔가 업적을 이룬 느낌이군. 아직 숙소에는 투숙객이 나밖에 없었다. 대부분 심야 비행기로 도착하는 스케줄이기 때문에 자정이 넘어서야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남자 셋, 여자 둘 손님이 체크인을 하고 술자리에 합류를 한다.  몇살이니~ 어디서 왔니~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한 명이 나에게 묻는다. 

"언제 오셨어요?"
"저요? 오늘 왔는데요?"
"아... 한달은 계신줄 알았어요...여기 사시는 줄..."


아~~~ 웃겨!!!! 내가 너무 자연스러웠나~ 나도 오늘 왔는데. 하여간~ 나이먹고 늘은건 능청 뿐. 자연스러웠다니 성공. 게다가 항공권 얘기를 하는데 내가 구매한 타이항공과 진에어 항공권을 비슷한 가격에 구매했단 말에 또 한번 승리한 듯한 느낌. 사실 항공권을 너무 비싸게 구매한 것 같아 마음 한쪽이 살짝 시렸는데 이 얘기를 듣고 나니 위안이 되었다. 이 여행~ 느낌이 참 괜찮군. 한참을 얘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검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원피스에 힐까지 곱게 차려입은 여인 한명이 어둠속에서 캐리어를 끌며 조용히 나타난다. 일순간 얼음!

이건 뭐지... 

사연인 즉슨, 아가씨가 예약을 했는데 주인 아저씨가 누락을 했고, 그래서 픽업도 못하고, 여차저차 다른 한국사람들 가는데 껴서 중간에 내려 새벽 1시가 넘은 야심한 시각에 홀로 찾아왔다고 한다. 근데 남은 침대가 없네?? 그래서 나는 가장 먼저 체크인하여 더블침대를 얻었지만 더블침대를 함께 온 2명에게 넘기고, 나와 늦은밤 도착한 그 여인이 각각 싱글 침대를 이용하게 되었다. 등장부터 심상치 않았고, 여자여자한 냄새를 풍기는 그녀에게서 나는 뭔가 두려움을 느꼈다. 그렇게 라오스에서 첫 날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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