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타고난 기질의 발견 그리고.. 변화
중앙대 연극학과는 입학과 동시에 선배들이 혹독하게 가르친 구호가
'동기사랑, 나라사랑' 이었다.
연극은 단체예술이기에 '나'보다는 전체를 생각하라는 교육을 우선시 받았다.
그러다보니 '나'라는 개인보다는 '우리'라는 전체를 생각하며
학과의 규율과 전통 그리고 배려를
먼저 배웠고
'배우가 되기 전에 인간이 되라'는 정신을
세뇌시켰다.
하지만 한예종은 그와는 정반대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내가 전공했던 아동청소년 극에서의 중요한 모토가
'나로부터의 출발' 이었기에,
한예종에서의 학교 생활은 '전체' 혹은 '규율' 보다,
자연스러운 '나'에 집중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두 학교의 너무 큰 간극 속에서 적잖은 혼란을 겪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마치 엄격한 질서와 집단 중심의 세계에서
갑자기 완전한 개인의 자유가 주어진 세상으로 넘어온 느낌이었다.
한예종의 자유로운 분위기는 매일매일이 낯설고,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특히 예종 전문사 1학년 1학기때 받은 첫수업이 '창조적 움직임'이라는 수업이었는데
배움에 대한 갈증이 컸던 나는 사실 한예종에 대한 기대감이 매우 큰 상태였기에
무언가 대단한 걸 배울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는 음악을 트시더니 그냥 느껴지는 데로 움직이라고 지시 할 뿐이었다.
'느껴지는데로?'
뭘 느껴야 하지....
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뭘 어떻게 움직이라는 건지..
가르쳐주지도 않고....
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 외에 연기를 전공하지도 않은
그렇다고 예술계 전공도 아닌 동기 언니들, 선배들은
마치 행위 예술가들처럼
음악에 집중하며 눈물도 흘리고,
나비도 표현하고,
점프도 하면서 집중하여 표현하는 것이었다.
난 그 후 한달동안 정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며
강의실 벽에 붙어 앉아 참관수업을 받고 있었다.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한달을 지켜보던 교수님께서
조심히 내 옆으로 앉으시더니 조용히 물으셨다.
“왜요? 왜 안움직이세요?”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모르겠어요.”
교수님은 나의 손을 잡고 조심스레 중앙으로 이끌어주셨고
“눈을 감고 그냥 음악만이라도 들어보세요.
연기를 배우면서 처음이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왜?'를 물어 본 것이..
'그냥 닥치고 해!!' 에 길들어져있던 나는
온전히 내가 느끼는 게 무엇인지를 생각해본 것도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느껴지는 데로
팔을 뻗고 음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학부에서도 배우훈련 외에 무용과 움직임은 지속적으로 배웠지만
선생님의 동작을 따르는 훈련뿐이었지
내면에서의 무언가를 느끼고 끄집어 낸 적은 처음이었기에
'보여주기'에 길들여져있던 나에겐 너무 낯설었고 학기가 끝나도록 불편하기만 했다.
예종은 모든 수업이 '왜?' 로 일관되는 느낌이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니?
왜 그게 좋은거야?
왜 그렇게 표현한거야?
그게 너한텐 어떤 의미야?
왜? 왜? 왜?
심지어 많은 실기 수업에서 제출해야하는 수업일지를 작성하느라
밤새도록 잠들지 못하고
'난 왜 이 활동이 재미있었지?'
'왜 불편했지?'를 고민했어야 했다.
연기 전공이 아닌 교육연극을 전공하다보니
연기에 대한 부담감은 덜 했지만
1년내내 '나'와 마주하는 무수한 수업들 속에서도
표현을 해야 한다는 그 불편함은 사실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2학년이 되었다.
2학년 1학기 수업에서도 즉흥 움직임 수업은 계속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코메디아 델 아르테' 수업이 있었다.
가면을 이용한 즉흥 수업이었는데
여러 가지 표정을 가진 하얀 가면을 쓰면
그 표정에 맞는 동작이나 제스처를 표현해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가면을 하나 썼을 뿐인데 너무 편하고
즐거웠고 보는 동료들도 내 우스꽝스런 제스처연기에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리고 교수님께서 수업 후 피드백을 주시는 데
“주아가 의외로 샤이하구나.. 가면을 쓰니 완전 다른 사람같은데?”
나는 그 말이 뭔가 뒷통수를 때리는 느낌이었다.
부정하고 싶었다.
교수님은 평소와 다른 적극적인 내 모습에 대한
칭찬과 격려 차원에서 한 피드백이었지만
집에 오면서도 '샤이' 라는 단어가 계속 마음에 걸렸고..
그 말이 계속 나를 마주하게 했다.
샤이...
내가 부끄러워하고 있다고?
연기를 배우면서 부끄러운 감정에 대해 생각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그냥 연기가 어렵다고 생각했었을 뿐.
그리고 여러 선생님들도 연기에 대해서 지적만 하실 뿐이었지.
너 부끄러워 하고 있구나..라는
어찌보면, 지극히 단순한 문제를 그 누구도 짚어주지 않으셨다.
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거기에 맞물려
미국 즉흥극단을 만들고 연극게임을 창시한 비올라 스폴라의 '연극게임' 책 서문에
“연기의 시작은 스스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라며 자의식을 먼저 없애는 것 부터 하라는 글이
또 한번 내 뒷통수를 때렸다.
그렇다.
나는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연기가 어려운 것도 연극을 만드는 과정이 어려웠던 것도.
즉흥 움직임에서 꼼짝을 하지 못했던 모든 것이
사실은.. 내 기질..
낯을 많이 가리고 누군가를 의식하는 성격
자기 중심적 성향보다는 이타적인 성격이 강하다보니
막상 무엇을 보여주려 할 때는
내 자신의 감정과 느낌보다는 외부로 부터 오는 시각에 대해
극도로 긴장하고 부끄럼을 많이 타는 성격 탓이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나의 기질을 파악하고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부끄럽고 어색하고 불편한 것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냈다.
그리고 스스로 억압되어 있는 무의식을 벗어나 자유로워지기 위해
일부러 더 나를 불편한 상황으로 계속 내 던졌다.
또한 '보여주기'식의 연기가 아니라 내 내면에 집중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인물의 내러티브와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2학년 2학기에 다시 난 무대에 섰다.
물론 아동청소년극 전공이다보니 관객이 아동이긴 했지만..
아동극답게 1인 다역으로 여러 역할들을 변화 무쌍하게 해냈고
일본에서 온 연출가 선생님은 내 연기가 너무 좋다며 엄지척을 남발하였다.
학기말 교수님들의 평가에서도
난생 처음으로
“넌 왜 배우를 안하니?”
“이렇게 플레이풀한 친구가 배우를 해야지 왜 교육을 하려해?”
라는 칭찬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나'의 발견과 변화는 내 한예종의 석사 논문으로 이어지기도 했고
내가 액팅코치를 하면서 숱하게 많은 배우들을
큰 요인이기도 했다.
<4화 예고>
나의 타고난 기질과 성향은
내 '슈퍼목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