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배우가 되고자 했을까?

꿈을 향한 방황 속에서 놓친 나만의 단 한 줄

by 슈퍼 미고

<꿈으로 포장된 방황의 시작>


막상 원대한 꿈을 안고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20년간 이어진 나의 대서사극 속에서 발견된 ‘슈퍼 목표’ 이야기를

어떻게 정리하고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고민이 깊다.
무슨 이야기부터 시작할까?
‘슈퍼 목표’의 개념부터 설명할까?
아니면 내가 방황했던 이야기부터 시작할까?

<내 인생의 뮤즈 오드리 햅번 : AI로 만든 이미지>


일단 2화부터는 내가 ‘슈퍼 목표’를 발견하게 되기까지의

여정을 먼저 이야기해보기로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슈퍼목표'를 찾기 위해선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는 작업이 필수적이기에

내가 나의 '슈퍼목표'를 찾기 위해 마주했던 긴 여정을

함께 공유해보고 싶어서이다.





우리는 ‘꿈’이라는 것을

막연히 미래를 나아가는 데 당연히 가져야 할 무기로 인식하고 있다.
꿈이 없으면

마치 인생의 루저가 되는 듯한 사회적 압박 속에 내던져지고,
그 압박 속에서 꿈과 진로를 착각하며

수없이 쫓기고 방황한다.

그리고

진정한 고민이 아닌 누군가의 추천으로,

그냥 단순한 계기로 결정하며

결국..

기나긴 방황 끝에 원점으로 돌아온다.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어..."라며..


나는 주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꿈'이라는 카오스 속에서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너무 많이 봐왔고,
나 또한 그 무리 속에서 헤매던 전형적인 유형이었다.




어른들은 쉽게 묻는다.


“넌 커서 뭐가 되고 싶어?”
“넌 꿈이 뭐야?”


그 전에 물어야 할 것이 있다.


'넌 뭐 할 때 가장 신나?'
'뭐가 가장 하기 싫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야?'
'어떤 사람이 좋아?'


막상 나를 알 수 있는 질문은 던지지도 않고 꿈을 묻다니…


그렇게 나의 방황과 꿈을 향한 원정은 시작되었다.



< 대학만 가면 된다?>




우리 세대의 부모님들은 ‘대학 = 성공’이라는 인생 공식을 믿으며,

자녀의 기질이나 성향, 성격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오직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한 교육에만 맹목적으로 투자하셨다..


나 또한 부모님의 과도한 교육열에 일찌감치 공부와는 담을 쌓았고,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시절은
여러 학원들의 광고와 상술에 혹한 엄마의 이끌림에

학원 유목생활을 하기 바빴다.


사실 어릴 때부터 나는 책을, 특히 소설을 좋아하는 문학 소녀였다.

고등학교 시절, 나와 제일 통하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아는!!

유일한 어른이 있었다.

바로 독서실 건물 2층에 있었던 동네 책방 주인 아주머니였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주인공 희도처럼

나는 풀하우스와 로맨스 소설에 빠져

신간이 나오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렸다.

주인 아주머니와 나는 좋아하는 만화와 소설의 취향이 같아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끈끈한 동지애가 있었다.

덕분에 신간이 나오면 제일 먼저 그 소식을 알려주셨고

첫 개시를 할 수 있는 특권도 주셨다.

그래서 독서실은 말 그대로, 홀로! 고요히! 자유롭게!

엄마의 눈을 피해 환상 속에 푹 빠질 수 있는,

나만의 **‘판타지 유토피아’**였다.



그리고 내가 열정을 불태웠던 게 있었는데

바로 동아리- ‘도서부(사서부)’ 활동이었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규율이 엄격하기로 유명했던 사립 여고였다.

대학 진학률 외에는 학생들의 전인적 성장 따위엔 관심 없었던 우리 학교는

단 3개의 동아리 (방송부, 도서부, 편집부)만 인정하였기에

동아리 부원이 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였으나

무언가를 하고자 마음먹으면 무조건 해 내야만 하는 근성 덕분에

도서부원이 되어 교내 도서관에서 사서활동을 하며

책을 마음껏 볼 수 있었다.


수업시간엔 잠을 자거나 소설책으로 지루한 시간을 보냈고

주말엔 독서실에 가방을 던져 놓고

엄마 몰래 부산 시내 고등학교 도서부 연합에서 개최하는
독서토론 모임에 참여하면서

그렇게

청춘을 버텨내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고등학교 2학년,

진학 상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가 되었다.

나는 진로에 대해 친한 친구들에게 묻곤 했다.


"나 대학 어디 갈까? 나 뭐하지?"
“대학 가서 또 공부하는 건 정말 끔찍하다.”


그때 한 친구가 내게 이렇게 제안했다.


“너도 연극영화과 지원해봐.

옆 반 수향이는 연기학원 다닌다는데,

넌 끼도 많고 얼굴도 예쁘잖아."


나는 처음엔 흘려들었다.

딱히 하고 싶은 것도, 내가 뭘 잘하는지도 몰랐던 나는

그냥 중상위권의 놀기 좋아하는 평범한 아이였다.

집에서는 공부 못하는 걱정거리였으며,

친척들에게는 어릴 적 꽤 똘똘했던 내가 '공부를 못한다는' 사실은

숨김거리였다.


초등학교 때는 학교에서 나름 외모로 유명했지만,

중·고등학교 시절엔

체육부장을 맡을 만큼 활동적이고 남성적인 성향이었기에,
외모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당시엔 ‘배우는 예쁘고 잘 생긴 애들만 하는 거’라는 편견도 있었고,
무엇보다 지방에 살던 내게 '배우'라는 직업은
그저 TV 속, 딴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 같았다.


그런데…
그 친구의 말이 이상하게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은근슬쩍 수향이를 찾아가
연기학원에서는 뭘 배우는지,
연극영화과는 어떻게 준비하는 건지 슬쩍 물었다.

그리고,
최고의 톱스타 이민우와 김희선이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수석과 차석으로 입학했었던

방송을 본 게 기억이 났고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대해 알아보았다.

갑자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래.. 여기다! 내가 가야 할 곳!'


조심스럽게 엄마에게 “연극영화과에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엄마는 처음엔 놀란 듯했지만, 곧 호의적으로 바뀌셨다.

그리고,
서울권 대학 진학의 가능성을 본 부모님은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물심양면으로 나를 지원해주셨다.


결국 나는 고3 때 중앙대 연극학과에

예비 1번이라는 쓰디쓴 고배를 마시긴 했으나,

재수를 해서 100: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99학번으로 중앙대학교 연극학과에 입학했다.

그 당시엔 정말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듯한 기쁨이었다.


하지만—

정작 ‘왜 그 길을 가려 하는지.',

'배우가 된다는 게 어떤 것일지"에 대한 질문은
누구도 한 적이 없었다.

학교 담임 선생님도, 연기를 가르치는 선생님도, 부모님도..

꿈을 묻기 전에 반드시 필요한,
**“왜?”**라는 질문없이

그저 “대학만 가라!”는 말뿐이었다.


내 예상컨대, 대한민국 대부분의 고3들은 이렇게 진로가 결정된다.

성적에 따라, 선생님의 추천에 따라, 부모의 강요에 따라..


내 인생을 결정지은, 나의 평생의 진로는
고작 친구가 무심히 던진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사실.. 어떻게 보면
그 말 한 줄이, 내 인생의 방향키를 돌려주었고,

어쩌면 또 운좋게도 나는 내가 원하는 분야에서

지금까지 버티고 살아남은 행운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정작 중요한 건 따로 있다.
내 기질은 어떤지, 뭘 할 때 가장 신나는지,
나는 누구인지..
그 누구도, 단 한 사람도

나 스스로도!! 물어보지 않았다.

"넌 왜 그걸 하고 싶은데?"
"너가 진짜로 원하는 건 뭔데?"

"배우는 어떤 직업인데?"


이런 질문 하나 없이,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질문인지 아무것도 모른 채

나는 미지의 세계에 들어선 것이다.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대학을 갔지만...>


나는 정말 열심히 했다.
그저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고,

졸업하면 당연히 배우가 되는 줄 알았다.

그 시절 군대보다 기강이 무섭다는 중앙대 4년 동안

온갖 기합과 집합,

그리고 선배들의 조롱과 괴롭힘을 견디며 버텼고,

나름 주인공도 맡으며 배우가 되기 위한 길을 걸었다.


하지만…
나는 연기가 항상 두려웠고 즐겁지 않았다.
연극을 하고 무대에 서는 것은 재미있었으나,

그 과정은 너무나도 힘이 들었다.
연기 발표 수업 시간에는

교수님 눈에 띄지 않으려고 동료들 뒤에 숨어 있었고,
쟁쟁한 연기파 동기들과 선후배들 사이에서도

당당히 연기하는 동료들을 보면

타고난 거 같아 부럽기만 했고..

결국 그저 그런 배우지망생 중 하나로

전락해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다.

사실.. 나는 배우가 되겠다는 명확한 꿈보다는

그저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으로 연기를 배운 것이었고

대학을 간 이후로도 학교 수업만 겨우 따라 갔을 뿐

진정한 '연기'를 배우고 내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프로 배우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단 한번도 스스로 궁금해하거나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연봉 200만원의 극단 생활 >



졸업 후, 대부분의 연극영화과 졸업생들이 그렇듯

소속사 미팅과 영화 오디션을 전전했고,

대학 선배의 감언이설에 속아 들어간 대학로의 극단에서도

여기저기 이끌려 다니며 이용만 당했다.


극단 첫 출근 날 극단에서 제공했던 저녁은

흰 쌀밥과 유일한 반찬, 김치였다.

난 그 기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설마, 설마… 새로 온 신입 단원을 길들이려고

몰래 카메라를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재미있게 상황을 받으려 했지만… 모두 진지했다.

행여나 남은 밥을 혹시 자신이 떨이 처리할까,

그 밥마저 5분 안에 순삭하고 각자 설거지를 하고는

개인 연습으로 들어가버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렇게..그냥..일상이 되었고

사실, 나는 그 속에서도

최선을 다했다.


아동극을 하루 3번씩 주 5일 공연하고

주말에는 지방을 돌며 무대 셋업/오프를 반복하던 탓에

연골은 닳아버렸고,

지하 연습실은 물이 새어 바닥 매트 사이로 스며들어

양말은 항상 젖어 있었고..

그때 맡았던 지하 곰팡이 냄새가 역해서

한동안 대학로 극장도 가지 못했었다.


그리고 나는 건강상의 이유로 9개월간의 극단 생활을 접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그때 9개월 동안 총 받은 돈은

고작 200만 원도 채 되지 않았다.


<그렇게, 배우를 포기하다.>


극단을 나온 후 나는 또 길을 잃었다.

다시는, 절대로 무대에 서지 않으리라..

'배우'는 여기까지..

그래서 성우시험을 보기도, 레크레이션 강사 자격증을 따기도 하는 등

숱한 방황을 했다.

그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에서 교육연극을 공부하는

아동청소년극 전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막연히 어린 꿈나무들에게 더 양질의 연극을 교육하여

연극계를 더 밝게 바꿔보겠다는 큰 포부로 지원하여

어렵게 합격증을 손에 쥘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인생의 전환점을 앞둔 중요한 순간 앞에서도

나는 여전히 스스로에게 깊이 묻지 않았다.


“너는 진짜 뭘 원하니?”


나조차도 나를 들여다볼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마치 표류하는 배처럼,

나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알지 못한 채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열심히 노만 저으며

막연한 '성공?' '생존?' 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흘러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길은 내 '슈퍼 목표’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과연 나의 '슈퍼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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