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LO’ 붐이 일어나면서 사람들은 나 자신의 행복을 그 무엇보다 중요시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 내 가족보다도 상사와 직장이 우선시 되어져 온 우리나라에 필요한 변화라고 본다. 하지만 변화구처럼 급하게 변하다보니 그 본질의 의미가 잘못 전해진 경우도 더러있다. 예를 들면, 직장에 대한 책임감이다. 어떤 직종이건 뭔가 내가 받는 댓가에 비해 희생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면 놓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 버리려고 한다. 심지어 교사직에 임하면서도 일이 힘들거나 마음에 맞지 않으면 갑자기 연락두절이 되거나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불과 몇 년전, 내가 교사하던 시절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고 있어서도 안되는 불문율 같은 것이었다. 책임감 있는 교사로서 1년을 함께 하겠다고 결정했을 땐, 1년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아이들을 만나러 오겠다는 약속인 것이라 생각했다. 매일 아침이면, 선생님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말하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달려오는 아이들이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책임감의 룰(Rule)은 간혹 의외의 경우에서 회의감을 가져오기도 한다.
아플 때가 가장 힘들었다. 가령, 39도의 고열에도 난 유치원을 나가서 아이들을 맞이해야만 했다. 대부분이 아이들에게 옮은 것이지만 아파 곧 죽어가면서도 그 와중에 혹여나 내가 다른 아이들에게 옮길까봐 마스크를 쓰고 조심 또 조심했다. 교사의 목소리가 조금만 이상하더라도 “선생님 감기걸리셨나봐요, 빨리 나으셔요. 아이들도 있는데..” 라고 걱정의 탈을 쓴 눈치를 주는 부모들도 더러 있었다. 사실 회사나 정부기관에서 운영해 회사 형태로 복지가 제공되는 연차/반차가 존재하는 어린이집도 있다. 대형 직장 어린이집이 아니고서야 당일 대체 교사가 있을리 만무하다. 따라서 쓰러져 의식이 없는 것이 아니고서는 유치원에 출근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유치원교사로서 겪는 일상의 안타까움은 다른 상황에서도 존재한다.
난 방학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이유는 은행일을 보기 위해서이다. 물론 급한 일이라면 아이들을 보내놓고, 원장님께 양해를 구해 잠깐 외출을 할 수 있지만 혹시나 아파서 병원 가야할 상황을 대비해 자잘한 은행일은 1년에 두 번있는 방학에 몰아서 했다. 혹, 큰 맘 먹고 은행을 나갔다 오기로 했다고 하더라도 아이들이 집으로 가는 시간이 대략 오후 3-4시. 은행이 닫는 시간도 오후 4시쯤이므로 부랴부랴 서두르지 않으면 가서도 문이 닫힌 은행문을 보며 야속하다고 생각하며 터덜터덜 돌아와야 했다. 은행에 가기 위해 약 6개월가량을 기다리는 삶을 살고 있음에도 유치원 방학이 너무 길다고 줄여달라는 불평이 가득하니 참 아이러니하다.
하루 중 내가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대상은 만 3세~만 7세 어린이들이다. 해가 뜨기도 전에 유치원을 가서 밤이 깜깜해져서야 원을 나선다. 주말 유치원 당직이 없는 날엔 친구들도 만나고 바깥 구경을 하겠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어린이들과 대화만 하게 된다. 나도 모르게 어린이들 말투에 전염되어 ~했다요 라는 어설픈 어미를 붙이고 있는 나를 자각할 때면 문득 문득 생각했다. 보통의 어른처럼, 어른답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