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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ubless Dec 02. 2018

비행이니까 괜찮아. : 24시간 먹방체류기

02. 비행을 여행처럼 : 베이징(Beijing)

자신이 받은 비행일정(Roster)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 회사내 홈페이지에서 승무원끼리 쪽지처럼 메시지를 보내 로스터를 바꾸자고 요청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 이를 로스터스왑(Roster Swap)이라고 한다. 물론 무조건 바꾸고 싶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다. 시스템에서 서로가 서로의 비행에 적합한지 테스트 후, 모든 조건이 일치할때 스왑요청은 보낼 수 있다.


돌아오는 비행은 MLE-CMB(몰디브-콜롬보) 멀티섹터(multi-sector). 이 비행의 경우, 몰디브로 4시간 정도 가서 승객들 일부를 내려주고 그곳에서 콜롬보 가는 승객을 마저 태워서 1시간 남짓되는 거리의 콜롬보에서 24시간 체류를 하게된다. 돌아오는 경우도 같은 방식.


이 비행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승객들이 타고 내릴 때마다 안전상의 이유로 기내 수화물 확인 및 안전 체크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특히, 기내 수화물 확인은 겨우 온 힘을 다해 닫은 수화물 선반들을 다시 다 열어서 짐의 주인을 확인 후 다시 다 닫아야 한다는 점에서 체력적으로 힘들어 승무원들 사이에서 기피되는 비행이기도 하다. 나 또한 기도하는 마음으로 로스터가 나오자마자 보내뒀던 스왑요청. 거듭 거절메시지로 돌아오기에 거의 포기했었는데 마지막 순간에 스왑 요청이 받아들여졌다고 메시지가 왔다.


Duty Change Notification
DXB-PEK


베이징이다!! 급 바뀐 로스터 덕에 여름 옷을 부랴부랴 빼고 두꺼운 옷으로 바꿔 담았다. ‘베이징하면 만리장성이지’ 하고서 이번에 가봐야지 했는데 랜딩하니 무려 2도에 달하는 기온. 게다가 같이 비행한 어느 누구도 추워서 가지 않겠다고....승무원의 계획은 늘 이렇다. 날씨를 체크하고 함께 갈 누군가를 미리 계획하여 가는 여행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 승무원식의 여행인 것이다.


딱히 가자고 조르고 싶은 동료도 없었기에 자금성(forbidden city)이나 혼자 다녀올까 했더니, 이런.. 월요일마다 문을 닫는다고 한다. 이제 내게 남은 플랜은 없다. 그렇다면 먹방이다!!!! 무언가 마음대로 되지 않아 스트레스 받을 땐 뭐다??!? 매콤한 음식이 진리인 것이다. 부랴부랴 저녁을 먹으러 나가본다.


첫 번째 타겟은 마라샹궈(麻辣香锅)!!!

특유의 저릿한 매운 맛을 좋아하는 나는 비슷한 맛이나는 볶음밥을 만들어 온 중국크루에게 어떻게 집에서 이런 맛을 낼 수 있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랬더니 중국 음식은 한자로 뜻만 잘 풀이해도 요리 방법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마라샹궈의 마는 저릴 마(痲). 마 라는 글자가 의미하는 것은 ‘사천산초’. 우리가 알고있는 그 산초기름에 산초이다. 라는 매울 랄(辣). 이 글자가 의미하는 식재료는 바로 ‘사천고추’. 샹은 향기 향(香). 산초와 고추의 향이라는 의미이다. 궈는 노구솥 과(锅) 솥 혹은 냄비로 해석할 수 있다.

조합해보면, 맵고 혀가 마비 될 정도로 얼얼한 맛을 내는 산초와 고추가 어우러진, 알싸한 향이 나는 냄비요리 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비행직후 먹는 마라샹궈와 맥주의 조합이란?!!!

마라가 들어간 음식으로 유명한 곳은 한국에서도 이미 유명한 하이디라오(海底捞). 중국 슈퍼에 가면 이 브랜드에서 나온 조리패키지도 쉽게 볼 수 있다. 호텔에서 조금 멀었기에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다는 호텔 건너편 식당을 찾아갔다. 중국은 늘 주문이 문제다. 다행히 점원은 친절했고, 말을 하는 번역기와 인터넷으로 검색한 사진을 이용해 주문을 도와줬다. 인내심이 대단한, 친절한 사람들... 이런 순간 가끔 기내에서 답답하다고 나도 모르게 욱한 감정이 올라왔던 내 모습에 대해 반성하게 된다. 특히, 개인적으로 아침식사 서비스가 제일 힘들다. 잠에서 비몽사몽 깬 승객들이 식사를 할건지, 무엇을 먹을 건지에 대한 내 물음에  멀뚱멀뚱 쳐다보며 대답도 안하고, 다음 승객으로 넘어가지도 못하게 할때 참 난처하다. 게다가 잠꼬대하듯 작게 웅얼거리는 말은 정말 알아듣기 힘들다. 흠.... 인내심의 한계가 찾아올 때, 오늘 만난 점원을 꼭 떠올리기로 다짐해본다.


여기서 잠깐!! 중국은 생각보다 발전했다(?). 일상의 대부분이 핸드폰 하나로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교통, 편의시설 뿐만 아니라 가게, 식당에서도 지폐를 받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들어가기 전에 지폐를 받는 곳인지 확인하는 편이 추후에 돈을 지불할 길이 없어 황당한 일을 미연에 방지하는 방법이다. 내가 무작정 마라샹궈를 먹으러 들어간 저 곳도 주문을 도와달라고 했더니 번역기를 통해 건넨 첫 마디가 “지폐가 있습니까?”였고, 점원이 가진 폰의 어플을 이용해 대신 결제를 하는 방식으로 도와주었다. 휴- 큰일날뻔..

손이 추워 미처 찍지 못한 버블티 : 대만 대표 버블티 사진으로 대체.

매운 것을 먹었으니 입가심은 버블티(Bubble Tea)로!! 마라 콤보로 인해 감각을 잃어버린 듯한 내 입술을 되찾아주는 일등 공신이다. 배가 부르니 오늘은 이만, 내일의 먹방을 위해 잠을 청하기로 한다.


날이 밝았다. 웨이크업 콜(Wake up call)은 오후 8시경. 밤새 비행을 해야하기에 잘 시간을 남겨두면 오후 3시 정도까진 시간이 있는 셈이다. 아침 겸 점심으로 훠궈(중국식 샤브샤브:Hot pot)를 든든하게 먹고 들어가 자기로 한다. 역시나 주문은 어렵다!! 다행히 이번엔 영어 메뉴도 있지만 한국에서 자주 접하지 않는 재료들의 영어 이름을 알기는 쉽지 않다. 영어 실력의 한계가 이런 곳에서 느껴질 줄이야.


탕은 당연히 마라탕으로 선택! 들어갈 재료가 문제다. 이번엔 친절한 사장님이 직접 실물을 주방에서 가지고 나와 보여주신다. 두 가지 정도를 묻다가 그 수고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난 눈에 딱 보이는 모듬 야채와 소고기를 골랐다. 이런 내가 안타까워보였을까? 사장님은 나에게 보여주려고 가져온 버섯과 두부껍질 한 그릇씩을 서비스로 주셨다. 이런 고마운 사람..... 내 사랑 훠궈님을 맛보기도 전에 감동의 도가니!! 먹으면서 또 한 번 감동~ 역시 중국에서 먹는 훠궈가 진리로구나.

훠궈(Hot pot) - 샤브샤브(xiapuxiapu)

먹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4시간 체류 동안 두 끼 정도밖에 먹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줄 까르푸 쇼핑!! 비행기에 가져가서 기내에서 먹을꺼다. 비행기에 맛있는 음식을 가지고 올라타는 것만으로도 일할 힘이 나는게 바로 현실-승무원의 소소한 행복.

좌) 요거트 / 우) 대추맛 요거트
좌) 옥수수 박힌 소시지 / 우) 월드컵 한정판 코카콜라
하이디라오 패키지
대륙의 스케일만큼이나 다양한 pocky & pretz 맛

양 손 가득히 먹을 것을 사오고서야 24시간 베이징 먹방 체류가 끝이 났다. 맛있는 것이 많은 아시아 비행은 늘 위험하다. ‘두바이로 얼른 날아가 운동을 해야지.’ 급 반성하게 되는 현자타임이 찾아왔다. 그래도 처음에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았지만 결국 든든하게 채워진 배와 꽉찬 비행 가방을 보며, 왠지 모르게 뿌듯해진다. 두바이 가서도 먹을 것이 많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만리장성도 자금성도 보지 못하고 돌아가는 베이징이지만 괜찮아. 비행으로 온거니까 괜찮아. 다음에 날 좋~~을 때 와서 보러가면 되지?! 승무원 식의 위로를 하며, 신나는 마음으로 비행하러 꼬우~!!!



* 중국 여행시 주의할점!!! 중국은 가짜 지폐가 꽤 많이 돌아다닌다. 그래서 호텔의 경우, 은행에서 가져온 돈의 시리얼 넘버가 적힌 종이를 이중으로 체크하여 승무원들의 체류비로 지급하고 있다. 특히 가짜 시장에서 잔돈을 가짜로 주거나 내 돈의 진짜 여부를 확인하겠다고 하면서 가져가 순식간에 바꿔치기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특별히 조심하도록 하자. 간혹, 승무원 동료들 중에는 돈에 작게 싸인을 해 두어 바꿔치기를 방지하기도 하더라.





로스터스왑(Roster Swap) : 승무원들 간에 비행 혹은 휴일(Day off)을 바꾸는 것.

웨이크업 콜(Wake up call) : 로비에서 만나 공항으로 떠나기 1시간 전에 승무원들이 묵는 호텔 방으로 전화 알람을 주는 것. 최소한의 그루밍(Grooming) 준비 시간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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