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승무원의 일상 이야기
대부분의 승무원에게는 작은 노트가 있다. 용도는 비행 시작 전 브리핑 룸(Briefing Room)에서 오늘의 비행에 관한 정보를 적고, 기내에서는 서비스 중간에 고객님의 요청사항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하기도 하며 응급상황 발생 시 중요한 정보를 전달, 기억의 목적으로 사용된다.
물론, 나에게도 작은 핑크색 노트가 있다. 하지만 내 노트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비밀노트이다. 위의 일반적인 사용과는 다른 두 가지가 더 적혀있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는 오늘 비행에서 제일 기억에 남은 승객에 관한 짧은 메모. 예를 들면, ‘두바이를 처음 간다던 사랑스러운 볼프강 커플, 일기장에 나와의 일화를 적어준 할아버지, 아들과 싸워서 속상한 엄마 승객, 내게 생긴 꼬마 투어가이드-플로렌스’ 등... 이런 형식이다. 이 기록은 내가 알게 모르게 비행하면서 만난 인연들을 잊지 않기 위해 적기 시작했다. 내가 그들을 잊지 않고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었던 것도 이유였지만 먼 훗날 혹여나 그들을 다시 마주쳤을 때, 내가 선사한 특별한 추억이 가물가물한 몇 백번의 비행 중 하나로 남아있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사실 미국처럼 긴 비행에서 안전상의 이유로 비행 중에 어떠한 것도 읽지 못할 때, 비행정보를 보는 척하며 그간의 비행들을 읽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두 번째, 그 날 비행에서 배운 것 그리고 시니어(Senior)들에 대해 기록한다. 여기서, 시니어들이라 함은 부사무장, 사무장을 일컫는다. 주로 적는 내용은 내가 본받고 싶은 점, 그리고 크루들을 힘들게 하는 행동이나 언어들이다. 사실 약 2만 명에 달하는 많은 승무원의 인원 덕분에 일회성의 비행이 되기 쉽지만, 매번 바뀌어지는 팀에서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시니어 승무원들이 만드는 분위기였다. 되돌아보면 시니어 승무원의 작은 배려와 유쾌한 분위기들이 100개에 달하는 휠체어 승객도 기다리게 했었고, 300명의 승객 중 150개가 넘는 승객들의 스페셜 밀*( Special meal) 전달도 비실비실 실소를 지으며 가능하게 했다. 그러한 의미에서 나는 같이 일하는 팀으로 하여금, 초인적인 힘이 나오게 하는 그 마법과도 같은 분위기 형성의 비법에 대해 늘 메모하기 시작했다. 사실 딱히 거창한 것은 아니었지만, 매일 닭인지 생선인지, 오믈렛인지 스크램블인지 묻는 일상에서 무언가를 배워갈 수 있다는 것이 좋아 길들여진 나만의 비행 습관이다. 시니어 크루들로부터 배우고 싶은 부분과 배우고 싶지 않은 부분을 적고, 다시 비행하고 싶은 이들에겐 별표를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이들에겐 엑스표를 작게 그려둔다. 비행을 스왑*(Swap)하진 못해도 마음의 준비 정도는 할 수 있다.
오늘도 적는 나만의 비행 노트. 앞으로 몇 장의 노트를 더 적게 될 진 모르지만 부디 엑스보다는 별표가 많이 적히는 비행이 많길 바라며... 매일 매일 성장하는 승무원 Jennifer가 되어보렵니다. 오늘도 나와 같이 비행하는 모든 이들 다 안비 즐비(안전한 비행, 즐거운 비행)!!!!
•스페셜 밀(Special meal) : 일반식과는 다른 기내식. 종교, 건강, 선호 등의 이유로 비행 전 최소 24시간 전까지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다. 이는 서비스 시간에 일반식과는 다르게 우선적, 개인적으로 전달된다.
•스왑(Swap) : 비행을 서로 바꾸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