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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싸우면 다행

07. 비행을 여행처럼 : 아테네(Athens)

by Jjubless
아테네 플라카지구

비행이 끝나면, 크루들은 마음이 바쁘다. 셔틀버스 시간에 맞춰 나가서 조금이라도 빨리 집에 가서 씻고 잠에 들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특히나 4번의 비행으로 일주일을 두바이 밖에서 함께 보낸 경우에는 맘이 두 배는 더 바빠지는 것 같다. 발을 동동 거리며 짐 가방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는데 부사무장이 말한다.


얘들아, 나가서 집에 가지 말고 기다려. 사진 찍고 가자!!!”


4년 반 만에 처음이었다. 듀티가 끝난 상태에서 버스를 타지 말고 기다렸다가 사진 한 장을 찍고 가자는 말은. 그것도 10년 이상을 비행해, 족히 1000번 이상의 이•착륙을 했을 부사무장이 먼저 제안한 건 너무나도 놀라울만한 일이었다.

아테네, 플라카지구

내 가방이 제일 늦게 나왔다. 나가자마자 나는 사실 놀랐다. 어느 한 명 가지 않고 기장님부터 막내들까지 모두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내 모습이 보이자마자, 다들 “드디어 다 모였어” 하며 날 반겼다. 사실 누군가 사진을 찍자고 했어도 다시 볼 일 없을 확률이 80% 이상인 우리 회사에서 그냥 못 들은 척하고 집에 가면 그만이다. 그런데 다들 알게 모르게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플라카 계단(plaka stairs)

우스갯소리로 일주일간 안 싸우면 다행이라는 비행에서 우리는 웃으며 내렸다. 일주일간 호텔 방을 전전하며 기다리고 기다렸을, 내 침대에 들어가는 순간을 지연시키는 큰 선택을 하면서까지 우리 모두는 사진 한 장을 남겼다.


두바이-아테네, 아테네-뉴저지, 뉴저지-아테네, 아테네-두바이. 매일 출근하는 기분으로 체력적으로는 너무 힘들었지만 우리는 비행 내내 서로를 웃으며 다독였다. 일주일간 서로를 웃음 짓게 하기에 충분한 센스 있는 농담을 건네었고, 크루 대 크루로 할 일은 잘하는 프로페셔널한 일원으로 서로를 신뢰했다. 기장-사무장-부사무장-크루 이와 같은 체인 아래에서 그 신뢰를 받은 모든 이들은 스스로 할 일을 찾아하며 그 신뢰에 충분히 보답했다. 비행기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무슨 일이 생겨도 함께 해쳐나가야 할 팀으로서...이런 팀 분위기면 참 일할 맛이 나겠다 싶었다.


딱 그런 비행이었다. 사진 한 장쯤은 꼭 남겨 기억해두고 싶은, 그런 비행이었다.

DXB-ATH-EWR 15.11.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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