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bai Crew Benefit : 01. 비행말고 여행!!
승무원을 준비하던 시절을 회상해보면 승무원이 되고 싶은 이유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답변은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물론 면접에 가서 ‘여행을 좋아해서 입니다.’라고 솔직하게 답하긴 어렵겠지만 말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비행 다니면 여행도 공짜로 하고 좋겠다’ 라고 한다. 사실 비행다니는 것이 여행이라고 생각해서 승무원이 된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이건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소리에 불과하다.
현실-승무원의 일상은 비행과 여행으로 나뉜다. 물론, 항공사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우리 항공사의 경우 보통의 비행시간(5-8시간)에 주어지는 레이오버(Layover)에서 체류시간은 24시간 정도. 이 마저도 도착해서 문이 열리는 시간부터 측정이 된다. 서둘러 손님들을 보내고 포스트 랜딩튜티(Post Landing Duty)라고 칭하는 몇 가지 정리를 하고 나서야 호텔로 향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비행전후의 숙면/휴식시간을 빼면 체감상의 체류시간은 반나절이 안되는 셈이다. 보통의 경우, 호텔 근처의 슈퍼마켓을 간다거나 도시 중심가 쪽을 거닐다 맛있는 밥 한끼를 사먹고 돌아오는 것이 전부이다.
물론 긴 비행(13~16시간)을 하고 난 뒤에 주어지는 48~51시간의 레이오버(Layover)나 간혹 계절, 기상상황, 수요 등의 이유로 비행시간에 비해 체류시간이 긴 비행도 분명 존재한다. 다만 로스터에 나왔을 때, 신이나 짐을 챙길 정도로 드문 경우일 뿐이다.
그렇다고해서 비행의 장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취항지가 다양한 회사 덕분에 내가 한국에서 살았다면 여행으로 가려고 생각해 보지 않았을 것 같은 곳(세네갈, 우간다, 인도의 코친 등..) 을 짧게나마 둘러보고 올 수 있다. 짧은 겉훑기식의 둘러봄이지만 나름 그 곳이 주는 분위기, 사람들, 음식 등에 대해 경험해 볼 수 있어 이는 다음 휴가 여행지 선정으로 이어지는 사전조사가 되기도 한다.
남들이 말하는 공짜 여행은 아니지만 승무원이라는 직업의 큰 혜택 중 하나가 여행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첫번째는, 근무시간이 비교적 자유로와 휴가를 신청하거나 비행을 바꾸는 로스터 스왑(Roster swap)을 통해 상사 눈치볼 거 없이 Off 를 만들어 여행을 계획하기 용이하다는 점. 두번째는 당연히 직원할인가로 이용가능한 저렴한 비행기 티켓값이 되겠다. 비행기 티켓 혜택에는 1년에 한 번 나오는 무료 왕복티켓, 항공료의 50%를 지불하는 대신 일반 승객들과 함께 체크인(Check-In)이 가능한 ID50 티켓, 항공료의 10%만 지불하는 대신 승객이 모두 체크인한 후, 남은 좌석만큼만 시니어리티(Seniority) 순서로 받아들여주는 ID90 티켓, 그리고 이벤트성의 이유로 추가로 선물처럼 주어지는 SRC 티켓이 있다. 올해의 경우, Woman’s day 기념으로 회사 사장님이 한 장씩 주셨다. SRC 티켓의 경우, 공항수수료만 내면 되는 대신 티켓 중 우선순위가 가장 낮은 ID90 보다도 우선순위가 낮아 보통 긴 장거리 비행에서 승객이 매우 적게 탈 때, 사용하는 것이 이득이다.
이렇게 따지고보면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다른 보편적인 직업에 비해 여행에 있어 시간적, 물질적 지원이 매우 잘 되어있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두바이에 사는 승무원으로서 지리적인 위치도 좋아 3-5일 오프만 있어도 가까운 유럽의 한 두개 도시는 다녀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말했다. ‘여행은 언제나 돈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다.’라고. 사실 ‘여행은 열정이 반이다’ 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좋은 혜택이 있음에도 비행만으로도 힘들어 일년에 한 두번 정도를 계획해 나가는 승무원들이 있는가 하면 2일이건 3일이건 비행이 없는 날만 생기면 어딘가로 떠나는 이들 또한 있기 때문이다. 열정과 체력이 두 그룹의 중간 쯤인 나 또한, 후자의 친구들을 보면 쉴 틈도 없이 내일은 없는 사람들처럼 비행과 여행을 연달아 하는 그들이 참 대단하다 싶다.
지금 이시각에도 인스타 혹은 다른 사람들의 여행에세이들을 보며 ‘부럽다. 내 인생에 저런 곳을 가는 날이 올까’ 라는 생각이 드는 이가 있는가? 그렇다면, 강력하게 부추겨보고 싶다. 오지않을 것만 같은 순간을 내 눈 앞에 가져다 두는 절차는 생각보다 쉽다. 비행기 표를 끊는다. 짐을 싼다. 그리고 떠난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여행은 시간적•물질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적•물질적 여유 보다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큰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레이오버(Layover) : 비행을 하고 난 비행지에서 체류하는 경우를 일컫는 말.
포스트 랜딩튜티(Post Landing Duty) : 비행이 끝나고 승객들이 나간 후 이뤄지는 비행 뒷정리. 그 예로는 담요 수거, 해드셋 정리, 기내 고장/파손 여부 확인, 기내사용 물품 정리 등이 있다.
로스터 스왑(Roster swap) : 비행이나 Off를 다른 승무원과 바꾸는 것을 일컫는 말. 우리 회사의 경우, 회사 웹사이트에서 비행/Off에 적합한 승무원을 찾아 쪽지를 보내듯이 비행스왑 신청 메시지를 보내고 상대방에서 확인하여 수락하는 형식으로 이루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