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stop!! Qurantine for 2 weeks!!
그저 저 먼 아시아 쪽에서 조금은 독한 감기일 거라 생각했던 코로나는 그냥 지나가는 바람이 아니었다. 무서운 태풍에만 이름을 붙이듯 생각보다 큰 규모와 무서움 덕에 금세 COVID-19라는 정식 이름이 붙여졌고, 전 세계로 순식간에 퍼졌다.
두바이 주변 국가들 중 확진자수가 하루에 적게는 백 단위, 어떤 곳은 천 단위 이상을 찍기 시작했다. 늘어나는 사망자만큼 두려움도 퍼져갔고, 마스크 따위 없이도 나만은 절대 안 걸릴 것처럼 행동하던 이들의 근자감은 빨리 정상적인 일상이 돌아오길 바라는 기도로 차츰 바뀌어갔다. 세상이 공포에 휩싸이고 더 이상 ‘마스크는 이픈 사람들만 쓰면 된다’는 비논리적인 국제기구 WHO의 말이 가뿐히 개소리라며 무시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 시점, 3월 18일 드디어 우리 항공사는 전 노선에서 마스크와 장갑을 낄 수 있게 허락해 주었다. 사실 매우 늦은 대응이다. WHO의 의견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를 마스크 하나 없이 3월 중순까지 비행을 하도록 했다는 건 바이러스의 심각성에 대해 제대로 몰랐음이 확실하다. 상황은 확실히 심각했다. 마스크와 장갑이 허용된 그 날 아침, 스페인에 사는 친구와의 대화로부터 끔찍한 소릴 들었다. 스페인에서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들을 배치할 영안실도, 무덤도 빠르게 마련할 수 없어 큰 아이스링크장을 임시로 시체보관소로 쓰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소식을 전해 들으며 우리 인간이 이렇게나 미약한 존재였던가, 뭘 위해 나라들은 분쟁하고 싸웠을까 생각하며 작은 바이러스가 가져온 재앙 같은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주변 국가들은 생각보다 처참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하나둘씩 국경을 닫기 시작했다. 자고 일어나면 5-6개의 나라의 국경 차단 및 비행정지 소식이 회사 메일에 와 있었으며, 덕분에 승무원들은 한 치 앞을 모르는 스케줄에 애꿎은 회사 어플만 새로고침을 반복해서 눌러댔다.
매일 국경을 닫겠다는 소식이 쏟아지며 승무원들 사이에서 ‘우리가 가는 비행 지를 세면 열 손가락 안에 들지 않을까?’와 ‘대체 남은 나라가 어디야?’라는 질문이 화두에 오를 무렵 UAE의 큰 결정에 대한 소식이 한 통의 메일로 통보되어 왔다.
3월 25일 이후로 모든 여객 비행을 중단하고 범국민적인 2주간의 자가격리 기간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23일 영국 비행으로부터 돌아오는 길에 소식을 들었고, 비행지에 따라 빠르게는 23일이, 혹은 25일이 잠정적 중단 전 마지막 비행이라고 했다. 급작스러운 마지막 비행기 소식에 티켓값은 급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승객들과 승무원들은 너도나도 티켓 구하기에 열을 올렸다. 상상도 못 했던 ‘lock down’이라는 게 현실이 되었고, 당혹감과 더불어 못 돌아와도 그만이지 할 만한 배짱이 없었던 나는 25일을 두바이에서 맞이했다. 그렇게 마지막 인천 비행은 떠나갔고, 2주간의 격리 기간이 시작되었다.
격리가 시작되고 처음 며칠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사용’에 대한 권장들이 암암리에 있었고, 웬만하면 배달로 해결하되 너무 필요한 경우 슈퍼나 약국 정도만 빨리 다녀오는 걸 권장했다. 첫 주가 채 지나기도 전에 할머니 시대에서나 있었을 법한 통금이라는 제도가 시행되었다. 시간은 밤 8시부터 새벽 6시까지. 그리고 무시무시한 벌금도 생겨났다. 도보 중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지 않으면 30만 원부터 실내 마스크 미착용은 60만 원, 모임 형성 300만 원, 의사 권고에도 약/진료 미복용/거부 시 1500만 원 등. 원래도 집순이였지만 갇혀서 못 나간다고 생각하니 벌써 답답해지는 기분이었다. 2주간 먹을 식량 구비를 핑계 아닌 목적 삼아 슈퍼 가는 길, 마지막으로 초록 잔디를 밟아두었다. 이 일을 겪고 보니 일상의 평범함/소중함이란 생각보다 참 감사한 것이었다. 슈퍼를 핑계 삼아 사람을 피해 공기를 쐬는 기회, 그마저도 첫 번째 주말엔 전 도로 및 공공장소 방역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금-일까지 밖으로 나오는 것을 금했다. 철저하게 집순이가 되어갔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승무원들 중엔 활달한 성격을 가진 이들이 많다. 낮밤 없는 비행 스케줄로 인해 밀린 잠을 자는 것도 하루 이틀. 집에만 꼭 붙어있어야만 하는 자가격리 시간은 그들에게 견디기 매우 힘든 시간이었다. 무료해져 갔다.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1. 갖은 핑계로 밀어두었던 다이어트/운동 챌린지가 시작되었다. 운동을 하고 SNS에 친구들을 태그해 같이 운동하자고 꼬드겼다. 나름 소통하는 재미와 더불어 왠지 뿌듯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2. 요리를 시작하다!! 심심해서 4만 번 저어 만든다는 달고나 커피가 한국에서 유행하다가 이곳까지 넘어왔다. 달고나 커피를 시작으로 각자 예쁜 집밥 만들기, 홈베이킹, 카페를 연상하게 하는 음료까지 세계 곳곳을 다니며 모아둔 재료와 식기들로 승무원답게 작품 같은 음식들을 만들어 인증했다. 두바이에서 곡물/건강 셰이크만 마셨던 나 또한 난생처음 가지를 사서 가지 밥을 해 먹었더랬다.
3. 비디오 채팅. 두바이는 정부에서 대부분의 기업을 운영하는 시스템이라 통신사 역시 정부 산하에 있는 것과 다름없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은 두바이에서 가족들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하는 영상통화는 하나의 사업 수단이기에, 카카오톡부터 스카이프 등 웬만한 영상통화가 다 막혀있는 것이 두바이이다. 애플에서 핸드폰을 사도 페이스타임이 없다는 사실. 하지만 무료하고 고국 걱정이 많은 승무원들은 그 많은 영상통화 어플을 다 깔아보고 시도해보았나 보다. 가족,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결국 무료 화상 어플을 찾아내게 만들었다. 그 소식은 알음알음 퍼져나가 가족들의 안부를 확인하기도 하고 여러 명이서 게임을 하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는 데 사용되었다.
4. 취미활동. 어느 직업군이든 그렇겠지만 승무원이라는 직업군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예체능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간 못다 펼친 취미활동 및 꿈을 펼치기라도 하듯 자신들의 재주를 뽐내기 시작했다. 당장 전시회를 열어도 좋을 만큼 멋들어진 그림을 떡하니 그려내는가 하면, 함께 사는 친구들과 요즘 유행하는 노래의 안무를 연습해 K-POP 아이돌 저리 가라 할 영상을 만들어 올리기도 하고, 휴대용 마이크를 연결해 순식간에 노래방 분위기를 내기도 했다. 또한 각종 DIY 가구 데코레이션이나 십자수, 코 바느질, 옷 만들기 등 하루가 멀다 하고 SNS를 통해 올라오는 취미활동 뽐내기를 보며 참 재주도 많다 싶었다.
5. 학업 및 학습 (자기 개발). 우리 항공 승무원 가운데에는 고등학교 졸업을 하자마자 온 친구들부터 대학교를 다니다가 도중에 온 친구들도 꽤 많다. 그런 친구들은 비행으로 인해 다 끝내지 못한 과제 및 시험들을 준비했다. 또한 두바이는 세계적으로 명망 있는 외부 대학들이 캠퍼스 형식으로 많이 들어와 있어서 비행을 하면서 대학원을 수료하는 친구들도 꽤 많다. 또 상당 부분의 승무원 친구들 가운데에는 ‘요즘 TV 대신 유튜브의 시대’라는 트렌드에 맞추어 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스킬을 갈고닦기도 했다. 나의 경우 DUO LINGO라는 어플을 통해 예전부터 배워보겠다고 생각만 하던 스페인어를 더듬더듬 배우기 시작했으며, 그간 못 읽었던 책들을 다운로드하여 읽어보기로 했다.
2주간의 자가격리기간. 창문 밖으로 보이는 청명한 하늘만을 바라보며 다시 나가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제 거의 끝이 보인다. 다시 연장이 될지, 비행을 시작하게 될지 아직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게 사실이며, 뉴스로 보이는 지구 곳곳은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답답해 감옥처럼 느껴질 것만 같던 2주간의 격리는 알게 모르게 그간 피곤했을 승무원들 모두에게 충분한 휴식을 주었으며, 무언가 미루며 배우지 못했던 것들을 배우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밤인지 낮인지, 무슨 요일인지도 모른 채 날짜와 비행시간만을 외우고 다니던 우리에게 매일 찾아오는 ‘아침의 커피 한 잔’을 선물해주었다.
덧붙여 매 비행 바뀌는 동료로 인해 스케줄, 사는 집 등 같은 반복된 질문을 하며 동료들과의 대화가 가끔은 무료했을 우리들을 이제는 집 안에서 청소기를 돌리며 우스꽝스러운 춤을 곁들이는 우리로 만들었다. 별거 아닌 일상에서 웃음 포인트를 찾아내어 웃는 법을 다시 상기시켜준 것이다. 어찌 보면 다시는 없을 재앙과도 끔찍한 COVID-19라는 태풍을 지나고 있지만, 어쩌면 나에게도 지구에게도 귀한 쉼을 주는 시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속 한편으로는 바라고 바라본다. 하루빨리 이 태풍이 지나가고 다시 예쁘고 건강한 지구 안에서 많은 사람들과 웃으며 행복하게 지낼 시간들이 다시 찾아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