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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씨 Feb 21. 2019

뭐, 침대를 공유하자고

 카우치서핑의 추억

"우리는 서로 매일 어깨를 스치며 살아가지만 서로를 알지도 못하고 지나친다. 하지만 언젠가는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 <중경삼림> 중


'현지인 집에서 공짜로 머물 수 있다고?'


홍콩 여행을 앞두고 내 머릿속은 온통 카우치서핑 생각뿐이었다. 카우치서핑이 인연이 돼 결혼까지 하게 된 국제커플 이야기를 접한 게 결정적이었다. 카우치서핑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만남이라고 해야 할까. 간단하게 설명하면, 호스트로 불리는 집주인이 여행자에게 여유 있는 방을 경제적 대가를 바라지 않고 제공해주는 서비스다.  현지인의 집이 궁금했다. 호텔, 호스텔과 다른 홍콩의 색깔을 경험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자연스럽게 현지인과 친분을 쌓을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여행을 좋아한다는 공통분모가 남편까지는 아니어도 친구 정도의 인연으론 발전되지 않을까 했다. 덤으로 여행 경비도 아끼고 싶었다.(오해할까 봐 부연하자면 연인을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한 5% 정도 혹시나 하는 마음은 부인하고 싶지 않다.)  



로또가 당첨되려면


로또 당첨을 바란다면 기도를 할 게 아니라, 먼저 로또를 사라고 했다. r 카우치서핑 사이트에 접속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관해 작성했다. 나는 외향적인 사람이에요. 저는 조용한 편이에요. 저는 수다를 즐겨요. 나는 오픈마인드를 가졌어요. 저는 제 주장이 뚜렷해요. 나는 음악을 사랑해요. 나는 모험가에요. 각기 다른 색채를 띠고 있는 자기소개글을 한참 흥미롭게 읽은 뒤였다. 한 사람을 딱 한 줄로 소개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나를 한 단어로 규정한다면 어떤 단어가 어울릴까. 질문은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과거 기억을 소환하기로 했다.  복수의 친구들이 종종 나에게 긍정적이라고 했던 게 떠올랐다. 가끔보다 드물게 내 방을 굴 삼아 한없이 어둠고 침침한 아우라를 뿜어내던 나도 스쳐 지나갔다.  '긍정'을 키워드로 살리기로 했다. 빈도수로 보나 대외적인 이미지로 보나 또 호스트에게 선택받을 수 있는 호감을 형성해야 하는 취지로 보나 긍정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물론 개성은 포기했다. 수월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관문 하나를 통과했다.  그다음으로 호스트가 돼 주길 바라는 이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와 불협화음을 내지 않을 것 같은 호스트를 선택한 후 "내가 너희 집에서 머물러도 되겠니?"라는 내용을 적었다. 대여섯 명의 홍콩 여자 아이에게  보냈다. 입사지원서를 낸 것도 아니고, 소개팅에 나간 것도 아닌데, 긴장이 됐다. 마지막은 간택되길 바라면서 기다리는 일이었다. 결과는 음,  처참했다.  고작 한 명만 다른 일정이 있다며 어려울 거라고 답변을 줬다. 나머지는 무반응이었다. 악플보다 더 무서운 게 무플이라는데, 그들은 그 무서운 선택을 했다. 물론 매일 접속하게 되는 포털사이트처럼 친숙한 매체가 아니라는 점은 알지만 선택받기 위해 쓴 시간과 노력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쿨하게 넘길 수만은 없었다. 한쪽 문이 닫히면 한쪽 문이 열린다고 했던가. 비록 내가 선택한 호스트들은 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이 전부는 아니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들로부터  러브콜이 잇따랐다. 100% 남자들이 보낸 관심이라는 점이 석연치 않았지만 말이다. 그리고 하이라이트는 서론도 없이 워밍업도 없이 "내 침대를 공유해줄게."만 적은 러브콜이었다. 처음엔 기가 막혔다. 그러다 불쾌해졌다. 찰지게 욕 한 판 적어서 답장하고 싶었지만 쫄보인지라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지금 같으면 신고라도 누르는 건데 아쉽다.) 그리고 게리가 있었다.



주저하고 있을 때, 과한 호의를 만나다


카우치서핑엔 레퍼런스가 있다. 실제 호스트 집에 머물렀던 게스트들이 호스트와 호스트 집에서 머문 경험을 밝힌 건데,  게리에겐 무려 100건이 넘는 호감 가는 후기가 있었다. 친절했다. 필요한 정보가 적절히 제공돼 유용했다. 그 인연이 계기가 돼 한국에선 막걸리를 먹게 됐다. 등등의 내가 카우치서핑에서 기대하는 바들이었다.  좀 끌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림돌은 그가 남자라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게리에게 선뜻 예스를 던질 수가 없었다. 근데 게리가 자꾸 쪽지를 보냈다. 나는 내가 주저하는 이유를 설명하기로 했다. 사실 다 괜찮은데, 네가 남자라는 것이 걸린다고. 그럼 알았다고 더 이상 연락을 안 해올 줄 알았다. 근데 게리는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내 불안을 잠재우려고 노력했다. 우선, 친구 한 명을 소개해줬다. 얼마 전에 본인의 집에서 숙박을 한 한국 여자 아인데, 그녀와 대화를 나눠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내가 머물지도 모르는 그곳에 먼저 머물렀던 부산 여자와 채팅을 하게 됐다.


"안녕하세요. 제가 카우치서핑이 처음인데, 주변에서 하도 안 좋은 얘기를 해서요. 어떠셨어요?"

"무슨 안 좋은 얘기요?"

"남자 호스트 집에서 제가 숙박을 하는 거에 대해서요?"

"그런 얘길 왜 다른 사람한테 하세요."

"아, 전 공유하는 걸 좋아해서요. 근데 정말 소파에서 자나요?"

"아니오, 전 소파가 불편해서 그 아래 이불 깔고 잤어요. 그리고 게리네 집에 머무는 거 전 괜찮았어요."




<게리네 소파 사진. 소파에선 대만 아이가, 바닥에서 내가 잠을 잤다>



그리 유쾌한 대화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내가 상상하는 최악은 그 집에서 일어나지 않을 거 같았다. 그런데도 내 마음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재차 머뭇거리자 게리는 또 다른 대안을 제시했다.  네가 정 불편하다면 대만 여자 아이 한 명을 더 초대하겠다고. 내가 잘 곳을 그것도 더 편하게 이용하라고 호의를 베풀어주는데, 고맙기는 커녕 부담스러웠다.  그런 내 마음이 너무 간사했지만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여자 친구를 위한 노력이라고 받아들이기엔 나에겐 과했다. 납득하기 어려웠다. 내적 갈등이 고조됐다. 카우치서핑에 대한 호기심은 충족하고 싶은데, 그나마 받은 제안 중엔 게리가 제일 나은데, 게리가 남자라는 게 여행 전까지 내내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내 마음을 어지럽혔다.



용기 반, 무모함 반으로 카우치서핑을 해봤다




출발 이틀 전, 찜찜함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로 이틀간 머물겠다고 밝혔다. 도박하는 기분이었다. 용기 반, 무모함 반이었다. 홍콩 여행 일정은 안중에도 없었다. 마치 카우치서핑을 위해 홍콩을 가는 사람 같았다. 게리는 이메일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메일이 도착했다. 게리네 집에서 지켜야 할 규칙과 집 찾아오는 방법 등 내가 알아야 할 것들이었다.  규칙은 납득할 만한 것들로 이뤄졌다.  호스트가 출근할 때 같이 집을 나서야 한다. 늦어도 밤 11시까진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음식물 먹는 건 안 되고, 요리도 금지한다. 등등



출발 날이 왔다. 비행기는 정해진 궤도를 무사히 통과해 홍콩에 날 내려줬다. 홍콩은 처음이었다. 낯설었다. 게리가 알려준 대로 공항에서 옥토퍼스카드를 사서 버스에 올랐다. 거기까진 잘 해낼 수 있었다. 근데 종점에 내려서 집까지 찾아가는 길이 어려웠다. 랜드마크에 위치한 호텔도 아닌 데다 5년 전이니까 구글 지도도 잘 몰랐을 때였으니까 그럴만했다. 하지만 나는 집을 찾아야 했다. 그러려면 지도를 보고 길 찾는 일에 내가 서툴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오랜 헤맴 끝에 인정하기 싫은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꽤 오랜 시간의 지체가 있은 후였다. 사정에 밝은 현지인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하지만 내가 물어본 현지인들은 현지 사정에 밝을지 몰라도 지도를 읽는 덴 미숙했나 보다. 결국 행인의 핸드폰을 빌려 게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근처인 것 같아. 혹시 날 픽업 올 수 있겠니?"가 내가 바라는 바였다. 하지만 게리는 택시를 타라고 했다. 택시에 올랐다.  정확히 1분 후에 택시는 멈춰 섰다.  그렇게 게리를 만났다. 그리고 게리는 짧고 강렬한 첫인사로 날 맞이했다.   "안 똑똑해"



어쨌든 나는 그 집에서 혼자 여행 중인 대만 여자아이와 이틀을 보냈다. 나의 이틀은 이랬다. 첫날, 인사를 나누고 출근길이던 게리를 따라 서둘러 집에서 나왔다. 아니 나와야 했다. 뭐, 여행 온 거니까 미적거릴 이유는 없었다. 괜찮았다.  대략 그의 근무시간 만큼 혼자 홍콩을 누비고 다녔다. 그리고 저녁엔 게리가 자주 간다는 국숫집에서 대만 여자 아이와 저녁을 먹었다. 호스트와 게스트가 로컬을 경험하는시간이었다. 다음 날엔, 아침에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나갈 준비를 했다. 게리가 일정을 물었다. 동물원을 얘기했다. 비가 오니까 실내가 낫지 않겠냐고 게리가 조언을 했다. 그래서 오션스파크로 장소를 옮겼다.  태풍이 강타한 날이었다. 보고 싶었던 돌고래쇼는 취소가 됐고, 몇몇 놀이기구도 운행중단이 된 오션스파크였다. 하지만 그 덕분에 수족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청아한 파란색이 사방을 둘러싸고, 그 안에 진귀한 물고기들이 유유자적 수영하는 모습은  얼마나 오래 지켜봤는자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해낼 수 있을 정도다.  포브스(Forbes)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7대 놀이 공원 오션스 파크는 그렇게  잊을 수 없는 모습으로 내 기억에 각인됐다. 저녁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게리와 먹기로 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대만 여자 아이 대신 게리의 여자 친구와 함께 한다는 것. 여자 친구가 사 온 포장 음식을 집에서 나눠먹었다. 제로게임도 했다.  고마움의 표시로 한국에서 챙겨 온 선물도 전달했다. 휴대폰 충전기와 라면 등이었다. (참고로 대만 아이는 감자칩 한 봉지를 줬다고 했다. ) 그리고 마지막날은  대마여자 아이와 셋이서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난 호스텔로 이동했다.   




카우치서핑 이후

여행을 다녀온 후, 드문드문 게리와 안부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한 2년이 지났을까.  게리가 연락을 해왔다.   한국에 놀러 갈 계획인데, 우리 집에 머물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정중하게 어렵다고 했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데, 부모님이 편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진짜였다. 하지만 부모님의 핑계는 비겁했다. 사실, 내가 내 사적인 공간에 타인이 와서 보내는 이틀이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대신 일정을 맞춰 얼굴을 보기로 했다. 그래서 우린 광화문에서 만났다. 여자 친구도 함께 왔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한복 입기 체험을 경험하게 해 줬다. 그들은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또 내가 좋아하는 오렌지 비앙코도 소개해줬다.  장미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 하던 여자 친구가 실망하긴 했지만 게리는 맛있다고 했다. 그리고 게리 커플이 찜해 놓은 명동 삼계탕집에 갔다. 늦은 점심이었다.  원래 어린이 세트를 먹으려고 간 건데, 주문 가능 시간을 놓쳐서 삼계탕을 먹었다. 게리 커플은 아쉬움이 큰 지 삼계탕을 먹는 내내 어린이 세트가 찍힌 사진을 SNS로 계속 보여줬다. 그렇게 우린 카우치서핑 덕분에 친구가 됐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나의 카우치서핑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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