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씨 Jun 25. 2020

한강, 힙지로, 그리고 서점

 '청량한' 여름 보내는 법






나는 여름에 태어났다. 하지만 여름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밖은 너무 뜨겁고, 안은 너무 춥기 때문이다. 애초에 지금, 여기에 좀처럼 만족을 못하는 내 기질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웃으며 보내는 '청량한' 시간들이 있다. 그 세 가지를 소개해본다.





따릉이 타고 한강 가기


 




서울시 자전거 공유 서비스 "따릉이"를 타고 한강까지 달리는 것이다. 집에서 한강까지 약 40분이 소요된다. (처음엔 한 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갈수록 시간이 단축되고 있다.) 가는 길에 오르막길을 만난다. 땀이 그야말로 삐질삐질 흐르는 구간이다. 하지만 그 시간을 불평하지 않고 인내하면 내리막길을 맞이할 수 있다. 페달을 밟지 않아도 관성의 힘으로 나아가는 구간이다. 마치 여름을 비웃는 듯한 상쾌하면서도 시원한 바람을 선물로 받을 수 있는 시간이다. 물론 너무 짧아서 아쉽지만 그래서 더 애틋하고 소중한 건 아닐까. 그렇게 달려 한강을 마주한다. 그럼 완주의 기쁨이 온몸을 휘감는다. 이게 끝이 아니다. 편의점에 간다. 그리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서, 완샷 한다. 그럼 '아, 살만한 세상이구나'라는 미소가 절로 떠오른.






힙지로에서 만수르처럼 시맥 마시기




 



힙지로에서 부자처럼 시맥(시원한 맥주)을 즐기는 것이다. 요즘 노가리 세 글자만 봐도, 힙지로가 떠오른다. 커피 한약방, 십 분의 일 등 이색적인 곳도 많지만 그래도 만선 호프로 대표되는 노가리를 곁들여 시맥을 즐길 수 있는 곳이 힙지로의 정수라고 당당하게 외쳐본. 을지로 노가리 골목이 괜히 서울 미래 유산으로 지정된 건 아닐 터이니. 그곳에서 두부김치, 떡볶이, 어묵탕, 노가리, 쥐포 등 한국적인 정취 그윽한 안주를 만수르처럼 원 없이 시키면, 맥주 추가를 안 할 래야 안 할 수가 없다. 근데 더 대박은 그렇게 실컷 먹고 마셔도 세상 착한 가격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좋아하는 사람들과 욕 한바탕 쏟아부으면 아, 살만한 세상이구나 싶다. (뮌헨 호프, OB비어 등 숨은 보물 같은 힙지로의 맛집을 정복하는 재미는 덤이다.)






여름엔  서점




 



여름엔 서점이라고 밝혀본다. 적당히 시원한 온도,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음악, 그리고 양서가 공존하는 최고의 피서지다.  개인적으로 마련된  의자가 아닌, 후미진 곳에 '철퍼덕' 앉아서 읽는 책 한 권이 피서지의 운치를 더한다고 주장해보겠. 휴가의 비일상성을 채워준다고나 할까.  그러려면 몸을 압박하는 청바지나 타이트한 티셔츠보단 루즈한 티셔츠에 레깅스를 입고 가길 추천한다. 그럼 오롯이 책에만 집중할 수 있다. 문화인으로서의 지적 욕구가 충족되는 건 보너스다. 단점은 사계절 중 유독 여름 서점의 인구 밀도가 높아서 인기 관광지를 찾은 듯한 어수선함과 피로함이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도 그렇게 책 한 권을 정주행 하면 비록 코로나 19가 기승을 부려도, 폭염이 미친 존재감을 드러내도  아, 살만한 세상이구나 싶다.








 

올여름에는 살만한 세상이라는 느낌을 더 많이  더 자주 만나고  싶다. 더 욕심낸다면 여름을 조금은 좋아해 보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스타벅스 서머레디백 vs 커피값 130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