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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모아 Aug 31. 2024

[11화] 민우 이야기 – 지난여름, 한밤의 손님

<연재소설> 비밀의 부부

독한 수제 막걸리를 급하게 마셨더니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린다. 마실 때도 힘들고, 마신 후에는 더 힘든 알코올을 왜 모일 때마다 마시는지 모르겠다.


모임이 끝나고 집에 도착했을 때 꿉꿉한 고양이 냄새가 코를 찔렀고,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비위가 상해서 집에 들어서자마자 거실의 모든 창을 활짝 열었다. 겨울바람이 집안으로 빨려 들어오며 고양이 털이 부유하기 시작했다.


간혹 김치에서도 나오고, 깎아 놓은 사과에도 붙어 있고, 검은 외투에도 염치없이 달라붙어 안 떨어지는 이 털들.


진영이는 고양이 냄새를 전혀 못 느끼고, 집 안 구석구석 날아다니다 여기저기 달라붙는 털도 성가시지 않은가 보다. 그녀가 신경 쓰는 건 오직 하나, 창밖의 누군가가 우리 집 안을 들여다볼 수도 있다는 아주 작은 가능성뿐이었다.


창문을 열려면 집 안의 전등을 끄던지, 볼레(블라인드)를 울타리 높이까지 내리라는데, 나는 가능한 모든 창을 활짝 열어 털 하나라도 더 밖으로 내보내고, 환한 조명 아래 털이 없는 걸 확인하고 싶어서 그 요청을 들어줄 수 없다.


동시에 길고양이처럼 온 동네를 휘젓다 가끔 집에 돌아오는 윗집 흰둥이처럼 우리 고양이들도 저 열린 창으로 탈출해 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나의 이런 바람은 2년간 단 한 번도 실현된 적 없고, 오히려 욕만 먹고 끝나곤 했는데, 오늘은 유배달 때문에 과하게 마신 막걸리 탓인지 진영이와 크게 다투면서 해서는 안 되는 말까지 해버렸다.


나라고 욕실을 훔쳐보던 놈이 누군지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다.


어쩌면 더 궁금하고, 더 화가 난 건 나 일지도 모른다.


진영이는 범인이 누군지 전혀 감을 못 잡고 주변의 모든 남자를 의심하며 불안해하고 있다면, 나는 대충 누구일 것 같다고 추측하면서 그 대상에 분노하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내가 의심하는 그놈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어떻게 해야 다시 모습을 드러낼까. 만약 내가 생각하는 놈이 범인이 맞다면 나는 그놈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나의 둥지를 흔드는 그 어떤 것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진영이와 냉전 중인 요즘은 집이 편치 않아 수업을 마치고 퇴근할 때면 마흑쉐 드 노엘(Marché de Noël, 크리스마스 마켓)에 들어 몬트리올에서 즐겨 먹던 푸틴(감자튀김에 그레이비소스를 올린 음식)을 먹곤 한다.


노트르담 성당 앞에 줄지어 선 크리스마스 상점 사이를 걷는데 추로스 점포 주인이 막 튀긴 추로스 조각을 내게 내밀었다. 맛이 괜찮아서 추로스와 핫초코를 주문했다.


그는 웃으며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핫초코를 담아 주었다. 추로스와 달리 핫초코 맛은 굉장히 이상했다. 워머에서 장시간 보관해 둔 핫초코상했나 보다.


내가 불쾌한 표정으로 주인을 바라보자, 그는 어깨를 한번 추켜올리더니 음료값으로 냈던 3유로를 말없이 돌려주었다. 핫초코가 상한 걸 이미 알고 있었나 본데 사과 한마디 없다. 불어를 잘 못 해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보면서 불어와 영어를 섞어 항의했다. 상한 걸 알면서 판 것이냐, 몰랐으면 지금이라도 맛을 봐라. 그리고 앞으로는 맛을 확인하면서 팔기 바란다 등의 얘기.


여기까지 말하고 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황당한 표정을 짓는 주인과 고개를 빼고 나를 유심히 바라보는 주변 상인들 앞에서 어떤 말로 이 원 맨 쇼를 갈무리할지 망설이고 있을 때, 주인이 “Sorry”하며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요새 별일 아닌 일에 쉽게 흥분하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니 마음 한구석에 유배달에 대한 분노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추로스 주인처럼 그가 그냥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도 화가 사그라들진 않았겠지만 아무 설명 없이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통에 나는 온갖 상상을 하게 됐고, 나날이 분노도 커지고 있다.


올해 4월, 수업에 들어가려는데 진영이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고양이 셋이 모두 심하게 구토하고 설사한다며, 혼자서 세 마리를 데리고 나가기 힘드니 급히 집으로 와 달라고 했었다.


나는 강의를 해야 해서 옆에 있던 후배 강사 유배달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대신 가 달라고 부탁했었다.


유배달은 세 살 때 프랑스 가정에 입양되어 힘든 사춘기를 보낸 후, 모국인 한국에 대해 알고 싶어서 한국학을 전공하고, 한국어에 관심이 생기면서 2년간 한국에서 살다 프랑스로 돌아와 나와 같은 어학원에서 일하게 된 인턴이었다.


그는 흔쾌히 진영이와 고양이들을 병원에 데려다주었고, 진료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집에 바래다주었다.


고양이들은 이틀 정도 입원이 필요했다. 생고기를 뼈째 갈아 채소를 섞고 비타민과 영양제까지 넣어 만든 생식이 문제였다. 더워진 날씨에 해동하던 먹이가 상해서 고양이들이 지독한 장염에 걸린 것이다.


그날 이후 유배달은 부쩍 고양이와 진영이의 안부를 묻더니, 자기도 유기묘 한 마리를 입양했는데 동물 기르는 게 여간 힘든게 아니라며 죽는소리를 했다.


그는 고양이 사육에 대한 정보를 온전히 진영이에게 의존했고, 진영이가 나가는 유기묘 보호 센터에서 자원봉사도 시작했다.


물론 그전부터 한국인들 모임에서 종종 만나 이물 없이 지내긴 했지만 공통의 관심사가 생기면서 둘은 급속도로 친해졌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난 도저히 낄 수 없는 그들만의 세상 속에서.


뭔가 좀 과하지 않나 신경 쓰이기 시작한 올 7월, 유배달이 휴가차 한국에 갔고, 그가 우리 주변에 없다는 사실에 내 맘은 오랜만에 편해졌다.


그러다 8월, 나도 한국에 가게 되어 한 달간 집을 비웠는데, 출판사 계약을 핑계로 대긴 했지만, 이상 고온 현상으로 섭씨 40도를 웃도는 날이 많아진 이곳- 연식이 오래된 탓인지 외관상 문제인지 에어컨 설치가 금지된 건물이 많고, 가전제품 매장에도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많지 않은 이 나라--에서 냉방기 하나에 의지해 고양이 세 마리와 부대끼며 여름을 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장기간 집을 비우는 일이 빈번한 만큼 혼자 남을 진영이가 걱정되긴 했는데 다행히 진영이가 고양이들을 위해 가정용 CCTV를 달면서 불편했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해결되었다.


전기료 절감을 위해 외출할 때만 켜기로 했지만 건망증 때문에 기계는 늘 켜져 있었고, 그 덕에 나는 진영이가 거실을 왔다 갔다 하는 모습, 고양이와 놀아주는 모습, TV 보고 청소하는 모습 등 그녀의 안부를 틈틈이 핸드폰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안 봤으면 좋았을 법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무더운 8월의 어느 밤, 화면 안으로 성인 남자가 성큼 들어왔다. 양손에 선물을 한 아름 안고서.  


--


진영이는 어릴 적 외톨이였던 그녀에게 내가 친절했던 건 동정심 때문이었고, 그녀와 사귀고 결혼한 이유 역시 끊을 수 없는 정, 아니 친구로서의 의리 때문이었다고 확신했다.


내가 아무리 사랑을 표현해도 그녀는 믿지 않았다. 그저 그녀에 대한 배려심일 뿐 사랑일 리 없지 않냐고 생각할 만큼 그녀의 자존감은 낮았다.


그건 그녀의 언니인 선영이 누나도 똑같았다. 그래서인지 두 자매는 주변에서 쉽게 찾기 힘든 나쁜 남자가 연애를 걸어도 감동하며 고마워했고, 그 덕에 꽤나 피곤한 인생을 살았다.


사실 진영이가 내게 특별한 사람이 된 건 초등학교 3학년 때, 진영이가 내 마니또가 되면서부터였다.


그녀는 내게 주먹만 한 포터블 전등을 선물했었는데 까만 눈동자 아래로 잉크가 번져 다크서클이 생겨버린 조악한 플라스틱 눈사람이었다. (스위치를 켜면 등불이 빨간색에서 파랑, 초록, 보라, 노란색으로 변하다가 다시 빨간색으로 바뀌는 전등이었다.)


그 선물을 받은 날도 나는 온종일 다락방에 있어야 했는데 그 전등은 암흑 속에 갇힌 내게 큰 위로가 되었고, 그 후로도 다락방에 갇힐 때마다 나를 지켜주는 등불이 되었다.


우리 아버지는 대구에서 알아주는 부잣집 5대 독자였고, 나는 대가 끊길 뻔한 집안에서 태어난, 아니 집 밖에서 태어난 아이였다.


나에게 차갑기만 한 어머니를 친어머니로 알고 컸으니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와 살기 시작했을 것이다.

자유로운 영혼의 사진작가였던 아버지는 집에 거의 들어오지 않았고, 어머니는 사사건건 꼬투리 잡아 나를 캄캄한 다락방에 온종일 가두었다.


나는 어머니가 다른 어머니들과 다른 것이 슬펐고, 집에 들어가는 것이 무서웠다.


집에서는 밥은커녕 물도 못 마셨기에 학교에서 주는 급식과 우유를 남들보다 많이 먹었고, 그걸 본 내 마니또는 게임이 끝난 후에도 자기 우유를 항상 내 자리에 갖다 놓았다.


3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한 날, 내가 학교에서 영양실조로 쓰러지면서 담임선생님이 나를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하셨고, 집에서는 대부분 캄캄한 다락에 갇혀 지낸다는 사실을 안 후 나를 구해주셨다.


그 이후 나는 대구 할아버지 댁에서 살게 되었는데, 전학 가는 그날까지 진영이는 급식으로 받은 우유를 내게 주었다.


3년이 지나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나는 다시 서울로 오게 되었다.


그때는 이미 우리 집안에서 나의 위치가 어머니보다 훨씬 견고하다는 것, 말하자면 어머니는 대체 가능한 가족 구성원이라면 나는 절대로 대체될 수 없는 핵심 인물이란 걸 알게 된 후였고, 어머니의 사랑 따위는 필요 없을 뿐 아니라 과거의 어머니가 나에게 했던 이중적인 태도도 따라 할 수 있을 때였다.


아버지와 집안 어른들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 길 만이 내가 살 길이었기에 나는 열심히 공부하고 운동하고 바르게 생활했으며, 특별한 이유 없이 무작정 나를 아껴주는 고모들과 할아버지, 할머니께는 친근히 대하며 나만의 요새를 만들어 갔다.


내 힘이 강해질수록 어머니는 지난날의 나처럼 시들어갔다.


서울로 돌아온 후 1년쯤 지나 진영이를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그녀는 더 이상 내가 알던 밝고 명랑한 소녀가 아니었다.


크게 상처받아 본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상처가 그녀의 눈에 있었는데, 그녀가 그렇게 변해 버린 건 아빠가 식탁 의자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엄마를 내리치면서 죽여버릴 거라고 소리치는 걸 본 이후라고 했다.


그녀는 눈사람 전등은 기억하지 못했지만 내게 우유를 준 건 기억하고 있었다.


“왜 나한테 우유를 줬었어? 먹기 싫었어?”


“나도 먹고 싶었지. 근데 너한테 더 필요해 보였어.”


“왜?”


“늘 배고파 보였거든. 너희 집이 그렇게 부자인 줄도 모르고.”


“억울해?”


“억울하지. 그 우유만 내가 먹었어도 더 클 수 있었을 텐데. 너 키 큰 거 다 내 우유 덕인 줄 아셔.”


그녀는 아직도 지독히 어두웠던 내 어린 시절을 모른다. 그 지옥 같은 암흑에서 날 지탱해 준 단 두 가지가 모두 그녀가 준 것이란 사실도. 내 첫사랑이자 어린 시절 어머니였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은 내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가족이란 것까지도. 앞으로도 그녀가 알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CCTV 화면 속으로 들어온 남자는 유배달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사 온 선물을 진영이에게 내밀었고, 둘이 함께 박스를 풀었다.


유배달은 갈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바닥에 앉아 진영이와 장난감 기차와 레일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고양이들이 관심을 보이며 끝없이 방해하는 통에 완성하는 데 한 시간쯤 걸렸고, 완성한 후에는 기차 화물칸에 과자를 담아 둘이 나눠 먹으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움직이는 기차로 달려드는 고양이들이 결국 기차와 레일을 망가뜨리자 둘은 고양이들을 안고 한껏 웃었다.


진영이가 바라는 가족의 모습이 이런 거겠구나 싶었지만, 아무래도 나는 앞으로도 유배달처럼은 못 해 줄 것 같고, 그날 내가 목격한 영화같이 아름다운 장면은 고양이 문제로 진영이와 다툴 때마다 내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되며 내 화를 돋울 것이 분명했다.


진영이는 CCTV가 켜져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둘은 밤늦도록 라면을 먹으며 담소를 나눴고, 어느 순간 분위기도 끈적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진영이가 훌쩍였고, 마주 앉아 있던 유배달이 기다렸다는 듯 진영이 옆자리로 옮겨 앉았다.


대화를 들어야 했다.


이어폰을 연결한 후 볼륨을 최대한 올리고 정신을 집중했지만, 진영이가 코를 훌쩍이는 소리밖에 안 들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유배달이 진영이의 귀에 뭔가를 속삭인 후 울고 있는 그녀를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진영이는 그의 행동이 전혀 거슬리지 않는 것 같았다. 놀라지도, 밀어내지도 않았다.


더 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마이크를 켜려는데, 유배달이 슬그머니 그녀의 배에 오른손을 올렸다. 자기가 무슨 축복을 내리는 사제나 되는 것처럼.


그냥 순간적인 기분에 키스했다면 오히려 이해가 쉬웠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이렇게까지 기분이 더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 하필 배였을까. 아이들 얘기를 극도로 꺼리는 진영이가 유배달에게 우리 세 쌍둥이 얘기를 했다는 건가.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아이들이 있었던 곳을 함부로 만지게 둬서는 안 된다. 그런 무례한 행동을 하도록 내버려 두다니... 역시 김진영답다.


위로야 받을 수 있지만 이런 방식은 곤란하다. 좋아하는 일을 함께하며 웃다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것. 이거야말로 진심으로 감정을 공유한 거니까.


내가 그날 밤 둘의 모습을 보고도 못 본 척 끝까지 지켜본 걸 안다면 진영이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분명히 황당한 표정으로 나의 의도를 물을 것이다. 그리고 별일 아닌 듯 그날 일을 자세히 해명할 것이다. 그러면 나 역시 별일 아닌 거로 넘어가는 척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분노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그녀는 내가 말해 주지 않는 한, 내가 왜 그날 그 모습에 이토록 화가 났는지, 근래 들어 왜 이렇게 예민해져서 자주 화를 내는지 모를 것이다. 내가 띠동갑인 유배달과 그녀의 관계를 의심하는 것, 유배달이 그녀에게 특별한 감정이 있다는 것, 그녀 역시 애써 외면하고는 있지만 유배달에게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 그런 모습에 내가 몹시 질투하고 있다는 것. 나를 화나게 하는 이 모든 이유가 그녀의 기준에선 절대 있을 법한 일이 아니기에 그녀 스스로는 깨달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 모든 사실을 절대로 말해 주지 않을 참이다.


내 예상대로 유배달이 다녀간 다음 날 진영이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지난밤에 있었던 일을 상세히 얘기했다. 그가 한국에서 고양이 선물을 사서 인사차 들렀고, 흥분한 고양이들이 조립한 기차와 레일을 다 부쉈고,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 함께 라면을 끓여 먹었으며, 유배달이 생부모를 찾다가 실패해서 홧김에 개명까지 했다는 얘기를.


“혹시 영진 씨한테 우리 세 쌍둥이··· 얘기한 적 있어?”


“아니. 왜?”


“알더라.”


“그래?”


“미선 언니가 얘기했나?”


“그럴지도.”


“제발 진지하게 들어줄 수 없어?”


나는 지금 이성을 잃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 중이야, 하고 대꾸하려다 꾹 참았다.


“뭘 자꾸 추측해. 그게 뭐 별거라고.”


“별거지! 우리 애들을 키우는 이유가 내 아픈 과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거 싫단 말이야. 이게 왜 그거랑 연결돼야 해?”


어떻게 그게 연결이 안 될 수 있는지 따져 묻고 싶지만, 이 주제로 또 설전을 벌이는 건 너무 지겹다.


“내가 되게 불쌍한가 봐.”


“왜?”


“······ 그냥 그런 것 같았어.”


생각에 잠긴 듯 잠시 멍해 있던 진영이는 결국 유배달이 그녀의 배를 만진 건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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