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사업이 기울면서 한국으로 급히 돌아오게 된 열 살, 4년이나 떨어져 살던 아빠랑 같이 살게 된 게 좋기도 하고, 싫기도 했었다.
싫은 이유는 엄마가 웃음을 잃었기 때문인데, 아빠와 함께 사는 건 우리 모두에게 힘든 일이었다.
애초에 우리가 캐나다에 간 것도 영어 교육 때문이라기보다는 아빠랑 따로 살려는 방편이 아니었나 싶을정도로.
한국에 돌아온 후 엄마는 아빠의 폭력을 7년쯤 견디다 이혼에 성공했고, 2년 뒤 돌아가셨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언니는 내게 때로는 엄마, 때로는 아빠가 되어주었다. 그러더니 결혼을 해서도 자기 딸에게 아빠 역할까지 해 주고 있다.
나는 우리 집안 여자들의 불행은 배우자를 잘못 고른 데서 시작됐다고 확신했고,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 봐왔고, 가장 믿을 만했던 사람, 그러니까 민우만이 불행으로부터 나를 지켜줄 것이라 확신했다. 내 생각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크리스마스이브.
이렇게 혼자 운하를 걷는 사람은 나뿐이다.
프랑스 남부 지방은 이례적인 폭우로 집이 물에 잠기고 사람이 떠내려가고, 알프스 산은 폭설로 눈사태 경보가 발효 중이라는데, 내 앞을 흐르는 벨(Vesle) 강은 고요하기만 하다.
문득 엉덩이가 반 이상 보이던 낚시꾼이 떠오른다.
그는 그날 물고기를 낚았을까? 지금은 뭘 하고 있을까?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아니면 나처럼 혼자 있을까? 혹시 듀끌로 씨처럼 망상에 잠겨있지는 않을까?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방 쇼(vin chaud)를 살까 고민하다 그만두었다. 요즘 나는 사형 날짜가 임박한 죄수처럼 내내 불안하고 긴장한 상태다.
이렇게는 나와 못 살겠다니. 내가 알던 박민우는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닌데.
남편의 화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해 보았다.
애들에게 쏟는 정성이 유난스럽고 비합리적이라 했으니 그가 원하는 정도로 조정하는 안, 여행과 식사 등 부부를 위한 시간에 충실하겠다는 안, 한국어 교원 자격증을 따서 취업하겠다는 안 등.
생각하면할수록 내가 지킬 수 없는 제안임을 스스로 느끼며 우리의 간극이 생각보다 더 크다는 걸 재확인하게 되었고, 임시방편 용 각서같이 의미 없는 이런 제안으로는 남편을 설득할 수 없음을, 아니 어쩌면 우리의 파국을 앞당기기만 할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둠이 점점 노을을 집어삼키고 있다.
시계를 보니 한국은 이미 자정이 넘었다.
언니는 예닐곱 시간이 지나야 전화할 것이다.
벤치에서 일어나 강으로 다가가 바람이 만드는 윤슬에 손을 얹어 보았다.
조깅하던 사람이 가던 길을 멈추고 물가에 쪼그려 앉은 나에게 다가왔다. 도움이 필요하냐고 묻던 남자는 내가 괜찮다고 하자 환한 미소로 엄지를 치켜 보이곤 자리를 떠났다.
어둠 속으로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도움이 필요하냐고 묻던 듀끌로 씨가 떠오른다.
‘막을 수 있었는데...’
어둠을 머금은 검은 강물 안으로 손을 쑤욱 넣었다.
물속에 잠긴 손이 유독 하얗게 도드라져 보인다.
얼마 전 명화 전집에서 본 밀레이의 <오필리아>가 떠오른다. 초록색 수초와 여러 종의 꽃들이 떠 있는 강가에서 아름답게 죽어가던 오필리아의 모습. 죽음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
‘듀끌로 씨의 마지막은 어땠을까.’
짙은 색의 수초들이 손가락 사이를 현란하게 드나든다.
얼음같이 차가운 물. 손이 이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아버지의 마지막은...? 양우석, 그놈의 마지막은...?’
애써 눌러 온 죄책감이 순식간에 터져 나왔다. 나는 잔디에 엎드려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고 울음은 아주 오래 계속되었다.
충격에 빠져 현실을 회피하는 순간이 지나면 찾아오는 죄의식의 시간. 이 감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짙어지고 무거워진다.
지난 후회도 아직 털어내지 못해 가슴 가득 품고 사는데, 이 죄책감은 또 얼마나 오래도록 내 삶을 짓누를지.
나의 부족함 때문에 누군가 죽고, 누군가 망가지고, 나 역시 두려움 속에 산다면 내 삶에 의미가 있을까?
이 악순환을 막아야 한다는 모종의 책임감 같은 것이 발동했다.
그러려면 이곳, 내 앞에 흐르는 이 강에 오필리어처럼 누워야 하고, 하려면 지금 당장 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누군가에 의해 물 밖으로 건져지자마자 찬 겨울바람에 젖은 몸이 경련하듯 떨렸고, 살갗은 갈기갈기 찢어질 듯 아팠다.
나를 구조한 남자가 코트를 벗어 내 몸에 두른 후 둘러업으려다놓치면서 나는 땅에 머리를 부딪쳤고 잠시 정신을 잃었었는지 눈을 떴을 땐 파란 경광등이 번쩍이는 빨간 앰뷸런스가 눈앞에 있었다.
앰뷸런스에서 군청색 제복을 입은 세 명의 응급 요원들이 들것을 막 내리고 있었다.
발을 헛디디어 강물에 빠졌고 잠시 놀랐을 뿐 별일 아니라고 말했지만 할리우드 배우 라이언 레이놀즈를 닮은 응급 요원이 불안해하는 나에게 담요를 둘러주며 몇 가지만확인한 후 귀가를 돕겠다고 했다.
나는 결국 그의 부축을 받으며 앰뷸런스로 향했다.
“병원까지 갈 필요는 없는데...”
“걱정 마세요. 앰뷸런스에서 간단한검사만할 겁니다.”
내 뒤로 겁에 질린 표정으로 땀을 뻘뻘 흘리는 열댓 살 된 소년이 검정 뿔테 안경을 쓴 응급 요원의 질문에 답하며 걸어오고 있었다.
앰뷸런스 안으로 들어가자 숏 커트를 한 여자 의사가 내 검지에 산소포화도 측정기를 끼우고, 체온을 잰 후 청진하더니, 맥박을 체크하고검지를 눈앞에 들어 손가락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눈동자만 움직여 보라고 했다. 그러더니 나를 구해준 소년에게 내가 갑자기 쓰러진 것인지, 넘어지면서 머리를 어딘가에부딪히지는 않았는지, 완전히 의식을 잃었었는지 등 목격 장면을 물어보았다. 도대체 언제부터 나를 지켜보고 있었는지 소년은 상황을 자세히도 묘사했다.
“바닥에 엎드려서 엉엉 울더니 갑자기 강물로 뛰어들었어요.”
진지한 표정으로 소년의 진술을 듣던 라이언 요원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니요! 앉아있다가 일어서는 데 갑자기 어지러워서 빠진 거예요. 물이 너무 차가워서 순간 몸이 굳었고 숨이 쉬어지지 않아 꼼짝할 수가 없었어요.”
나의 진술에 소년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의사는 젖은 몸을 심하게 떨고 있는 나를 보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이 일로 병원에 갈 수는 없다. 민우가 알면 절대로 안 되기 때문이다. 다시는 이러지 않을 거라고 맹세했는데... 그가 알면 안 그래도 떠날 구실을 찾는 그의 등을 떠미는 격이 될 것이다.
“어서 가야 해요. 아이들만 집에 있거든요.”
의사와 라이언은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어리게 보고 계속 마드모아젤(아가씨)이라고 부르다 아이가 셋이나 있다는 말에 놀라는, 뭐 그런 가벼운 수준의 놀람이 아니었다. 나는 이내 괜한 말을 했구나 후회했다.
의사는 아이들의 나이를 묻더니, 열 살 이하의 아이들을 밤에 홀로 두는 건 아동 방임으로 학대에 대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꺼내 집에 설치해 둔 가정용 CCTV 화면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생각 없이 아이들을 내버려 두고 나오진 않는다는 증거를 보여주어야 했다. 아이들은 잘 자고 있었고 요원들의 표정도 다시 온화해졌다.
드디어 앰뷸런스가 우리 집 주소로 향했다.
아파트 건물 앞에 도착하자 의사는 청진기를 목에 걸면서 오늘 밤에는 안정해야 하며, 무슨 일이 있으면 반드시 응급실로 와야 한다고 당부했다.
라이언 요원이 나를 아파트 입구까지 부축해 주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내 뒤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잘 자요. 마담(madame)!”
집으로 들어온 나는 꽁꽁 언 몸을 녹이기 위해 뜨거운 물에 목욕하고 따뜻한 보리차를 끓였다.
몇 시간 전에 겪은 소동을 떠올리니 헛웃음만 나왔다. 이 기막힌 일을 누구와 공유할 수 있을까. 떠오르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쓸쓸하다.
배가 고파 라면을 끓여 먹고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기다리던 전화다.
“네가 먼저 전화를 다 하고 웬일이니?”
엄마 목소리를 꼭 닮은 언니였다.
“민우 만났지?”
“응. 어젯밤에.”
“한국에 언제까지 있을 거래?”
“서로 그런 얘기도 안 하는 거야?”
“······”
“나도 몰라.”
“또 언제 온대?”
출국하기 전에 조카 혜린이를 만나곤 하니 그날이 출국 전날일 것이다.
“몰라. 다시 온다는 말 없었어.”
“알았어.”
“아버지 돌아가신 얘기도 안 했다며? 민우가 무척 놀라더라.”
“······”
“왜 자기한테 얘기 안 했냐고 원망했어.”
원망이라···
엉킨 실타래의 첫 매듭이 나여서 모르는 척해야 하는 일들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사람들은 짐작도 못 할 것이다.
“한국에 언제 와? 보여줄 것도 있고. 할 말도 많아.”
“무슨 말?”
“만나서 할 얘기야.”
내가 말해보라 재촉하자 언니는 민우 명의의 통장이 아빠 유품에서 나왔다고 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런 게 있을 줄상상도 못 했는데. 나는 대충 통장의 정체를 얼버무리고, 통장뿐 아니라 아빠의 그 어떤 것도 민우와는 상관없다고, 아니 민우는 아빠를 단 한 번 만난 적도, 스친 적도 없다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통장을 가지러 조만간 한국에 가야겠다.
머리가 복잡한데 언니가 더 복잡한 주제로 화제를 돌렸다.
“이번에 민우가 정말 예전 같지 않았어. 생전 안 먹는 술을 마시질 않나. 무척 힘들어 보였어. 진영아. 이제 제발 정신 좀 차릴 수 없니?”
나는 언니에게 다시 연락한 것을 이내 후회했다. 그동안 연락 끊고 지낸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는데, 맘이 급해서 잠시 잊었었다.
“내가 뭘?”
잠에서 깬 아이들이 내 품으로 달려들었다.
“네 SNS 보면 온통 고양이 얘기뿐이더라? 실제로도 그렇다며? 인생 한가득 그 길고양이들만 안고 산다며?”
노란 구슬 같은 눈동자를 깜빡이는 내 아이들.
“그렇게 부르지 말아 줘.”
“그럼 어떻게 불러? 너처럼 애들 이름으로 불러? 난 그렇게는 못 해! 그 이름이 어떤 이름인데!”
나는 스웨터 아래로 손을 넣어 7개월간 세 아이를 품었던, 임계치 이상으로 부풀었다 꺼져버린 내 배를, 터진 풍선의 고무 잔해처럼 늘어나 버린 내 뱃가죽을 만졌다. 영광 없는 상처.
“셋으로도 부족해? 무슨 윗집 고양이까지 키운다는 거야? 게다가 뭐? 반려동물을 친자로 입양하는 제도를 위한 캠페인을 벌이겠다고? 정신 나갔어?”
그게 왜 정신 나간 짓이라는 건지 나는 정말 모르겠다.
“햇님이 달님이 별님이 잃고 네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잘 알아. 근데 그건 민우도 마찬가지잖아.”
고집 피우지 않고 의사 선생님 조언에 따랐다면 그중 한 명이라도 내 품에 남아 있을까. 그랬다면 나는 후회 없이 행복했을까.
수없이 되물어도 나는 잘 모르겠다.
확신하는 건 다시 똑같은 상황에서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난 변함없이 셋 모두를 선택할 것이란 것뿐.
떠난 아이들을 되찾기 위해 지난 몇 년간 부단히 노력했지만, 폐가가 되어 버린 내 자궁에 아이들은 다시 오지 않았다.
마음을 접고 한국을 떠나 이곳에 왔을 때 우리 집 테라스로 이 아이들이 찾아와 주었다. 나의 노력으로는 도저히 가질 수 없었던 엄마라는 자격을 내게 허락해 준 세 아이들.
“차라리 아이를 입양해!”
차라리··· 이 단어를 좋아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민우는 너 지키려고 다 포기하고 프랑스로 간 거야. 시술로 만신창이가 된 네가 죽을까 봐 거기까지 데려갔는데, 넌 어쩜 그깟 고양이 타령만 하고 사는 거니?”
눈물이 흘러나온다.
내가 가장 아끼는 두 사람이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는 것이 서글프고 나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사실도 괴롭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은데, 아무래도 그럴 수 없을 것 같아 절망적이다.
“다시 네 삶을 찾아보라고 다 버리고 간 건데, 길고양이들한테만 매달리면 어떡하니? 애들 이름 붙이고, 집은 온통 고양이용품에, 민우는 안중에도 없고, 한국에 못 나오는 것도 다 고양이 때문이라며?”
나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제발 보통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자. 응?”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기 직전에 들려온 언니의 말에 어젯밤 꿈이 떠올랐다.
노을이 어슴푸레한 저녁 시간, 나는 파비엔 집 앞에 홀로 서서 창 안을 바라보고 있다.
장작이 타는 벽난로 앞에 모여 앉은 파비엔 가족들. 남편은 따뜻한 차를 따르고 있고, 큰아들과 작은아들은 커다란 트리 앞에서 체스를 두고 있다. 어린 딸아이 로즈에게 새로 산 구두를 신겨보는 파비엔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고...
아이의 발이 이렇게 커버린 줄 몰랐다는 말을 하며 신발을 바꾸러 가는 날이 나에게도 올까?
나는 나만의 평범한 일상을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남들에게는 기이해 보이는 내 보통의 하루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