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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모아 Sep 12. 2024

[23화] 민우 이야기 - 장인과의 인연

<연재소설> 비밀의 부부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 어르신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죄송합니다.”


어르신은 말없이 나에게 막걸리가 가득 든 잔을 건넨 후 마시기를 기다렸다. 나는 막걸리를 단숨에 들이켰다.


“편히 앉아.”


“아닙니다.”


“내가 불편해.”


나는 잠시 망설이다 하는 수 없이 다리를 풀고 앉았다. 막걸리를 따라 어르신 앞에 놓았다. 일부러 사람이 없는 곳을 찾은 건지 술집 안에는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 사위가 조용했다.


“진영이와 어떤 사인가?”


“제가 많이 좋아합니다.”


어르신은 내가 따른 막걸리를 한숨에 비워내고 다시 나에게 술잔을 넘겼다.


“그 사진과 영상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상관없습니다."


"상관없다고?"


"네, 진영이 잘못이 아니니까요.”


깊은 한숨을 몰아쉰 그가 내 앞에 놓인 잔을 도로 가져가 한숨에 마셔버렸다.


“놈이 진영이 앞에 다시 나타나는 일은 없을 거야.”


무슨 의미일까. 놈을 어떻게 했다는 건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알기 두려웠지만 알아야 했다.


“어떻게··· 하신 건가요?”


“자네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나의 두려움을 감지한 걸까. 그는 태연한 눈으로 나를 주시했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걱정할 필요 없다는 듯.


“어디에 있나요?”


“알려주면 찾아갈 건가?”


“······”


“그럴 수 있었다면 날 찾아오진 않았겠지.”


주전자가 비자 그가 술을 더 주문했다.


“나를 어떻게 찾았나?”


“진영이 핸드폰에 이름 없이 저장된 번호가 있기에 이상해서 전화를 했고, 흥신소임을 알았을 때 진영이가 이미 일을 맡겼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찾아갔었습니다. 처음 뵌 순간 아버님이라는 걸 알 수 있었고요.”


어르신의 얼굴에 희미한 기쁨이 어렸다.


“그리 닮았나?”


“네.”


“내 얘기를 들은 적 있나?”


“아니요. 없습니다.”


나는 진영이가 아빠를 얼마나 원망하고 증오하는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진영 엄마를 놓아주지 않으려고 했었네.”


“······”


“그러다 어느 날 맘을 바꿨지. 왜였는지 아나?”


“······”


“진영이가 날 죽이려 했거든.”


“······?”


“제 엄마를 지키려고 목숨 걸고 덤비더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그날은 실패했지만 머지않아 성공했을 거고 그랬다면 그 앤 평생 그 짐을 안고 살았겠지.”


고1 때 진영이가 그런 행동을 했었다고?


상상이 가지 않았다. 아빠 때문에 집에 들어가기 싫다는 하소연은 종종 했었지만 분노에 차서 욕을 하거나 폭력적인 모습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지금도 거미 한 마리 죽이지 못해 창밖으로 놓아주는 사람인데...


갑자기 통토끼를 칼로 내리치는 진영이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모르는 진영이 모습은 도대체 얼마나 더 있을까.


“딸을 살인자로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


"이건 내가 정신을 차린 요즘, 놓아주길 잘했다 생각하면서 든 마음이고. 그 당시 헤어진 이유는 제 엄마만 생각하며 죽일 듯 달려드는 딸도, 나를 벌레 보듯 하는 마누라도 지긋지긋해져 버렸기 때문이었어. 카바레를 운영하는 아빠 때문에 딸들이 손가락질받는다고 난리 쳐서 캐나다까지 보내줬는데. 내가 무슨 짓까지 하면서 그 많은 생활비를 보내는지, 한국에서 혼자 어떻게 지내는지는 궁금해한 적도 없던 사람이 돈을 못 보내기 시작하자 왜 돈을 안 보내냐고 닦달하고 원망만 하더군. 돈을 못 보내서 한국에서 같이 살게 된 후로는 하루하루가 전쟁이었어. 서로 악만 남아서 둘 중 하나는 죽어야 그 전쟁이 끝날 것 같았지. 사실 내 잘못이 크긴 했어. 사업도 망하고 조직에서도 내쳐지고 가족들에게도 외면당하니 서럽고 억울한 마음에 내가 진영 엄마를 많이 괴롭혔거든. 이혼하자는데 어찌나 화가 나던지. 아주 오랫동안 오기로 버티다가 다시 일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을 때 이혼 서류에 도장 찍어 줬어. 고생 좀 해 보라고 맨몸으로 쫓아냈지. 한 푼도 안 가지고 나간다는 것이 내 이혼 조건이었거든. 그런데도 가 버렸어. 조금 버티다 돌아올 줄 알았는데 아무도 안 돌아왔어. 괘씸해서 나도 잊고 살았지. 정나미가 다 떨어져 버렸거든.”


새 막걸리 주전자가 도착하자마자 그는 다시 한잔 마셨다.


“집을 나가던 날, 진영이가 날 보면서 한 번만 더 엄마 근처에 오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하더군. 그땐 실패하지 않고 꼭 성공할 거라고. 천생 내 딸이야.”


어르신의 입꼬리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진영이를 떠올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지 아비한테도 죽을 각오로 달려들던 애가 스스로 죽으려 했다고?”


"......"


어르신은 다시 막걸리를 한 사발 가득 따라 울컥울컥 마셨다. 목이 메는 소리를 감추려는 듯했다.


“······ 놈을 어떻게 하신 건가요?”


“다시는 내 딸을 괴롭히지 못하게 했지.”


그러니까 어떻게. 대체 어떻게 했냐고 묻는데 말을 빙빙 돌리기만 했다.


그는 눈을 돌려 옆 벽면에 걸려있는 족자를 바라보았다. 첩첩이 겹쳐진 산 위로 내려앉은 구름. 수묵 풍경화였다.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다. 산속에 버렸다는 건가? 나는 그의 시선,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내가 한 일이네. 왜 자네가 가책을 느끼려 하나?”


나는 결국 이번에도 교묘하게 사람을 해치고 말았다. 어르신의 화를 돋우기 위해 사진을 확대해서 프린트했었다. 어쩌면 나의 예상보다 훨씬 더 잔인하게 결론이 났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또 하나의 짙은 어둠을 품게 되었다.


“죄송합니다.”


할 수 있는 말이 이것뿐이었다.


어려서부터 나는 내가 악 그 자체일 수 도 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머리와 가슴을 점령한 잔인한 생각들이 터져 나올 때면 행동으로 옮기지 않기 위해 펜을 들었다. 그렇게 나는 소설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걸로 해결이 안 되는 순간이 면 나는 나도 모르게 글로 써야 할 일을 행동으로 옮겼다.


“괜한 오해는 말게. 설마 죽이기야 했겠나?”


이 말이 사실일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는 그 말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머릿속으로 잠시 그가 되어 보았다.


당장은 겁에 질려 다시는 안 그러겠다 약속하고 물러가도 시간이 흘러 증오가 증폭되면 앙심을 품고 다시 해치러 돌아올 수도 있는 위험한 인간을 그냥 혼만 내고 놓아줬을까. 나라면 과연 두 발로 걸을 수 있고 말도 할 수 있는 상태로 놈을 보내주었을까.


“앙심 품고 돌아올 수도 있겠군요.”


확인해야 했기에 나는 짐짓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떤 위험도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여차하면 내가 다시 나서야 하니까 제대로 알아야 했다.


“그러지는 못할 거야.”


또다시 애매한 대답. 그는 나에게까지 모든 걸 철저히 숨기고 있었다.


“그래도 죽지 않았으면···”


“단속 잘해 뒀어.”


어르신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더 애매한 대답으로 내 입을 막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제대로 된 답을 듣기는 어려울 듯했다.


그렇다면 나는 놈이 언제든 나타날 수 있을 거라는 가정을 하고, 만에 하나 나타날 경우에 대비해 수많은 계획을 짜야했다. 살면서 문득문득 찾아올 불안. 내가 벌인 일에 대한 대가였다.


나는 준비해 온 돈 봉투를 어르신 앞에 내밀었다.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뭐 하는 짓인가?”


두툼한 두 손으로 단숨에 내 목을 비틀 기세였다. 그는 돈 봉투를 내 앞으로 되돌려 놓았다.


“덕분에 노릇 한 번 했어.”


넘칠 듯 찰랑거리는 막걸리잔도 내 앞에 도착했다. 감히 돈으로 매길 수 없는 마음으로 한 일임을 잘 알기에 나는 두말하지 않고 봉투를 거둬들였다


“진영이는 죽을 때까지 이 일을 몰라야 하네.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진영이랑 살 건가?”


“네. 그럴 겁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이 일은 나 혼자 한 일이야. 내가 묻고 가. 자네는 진영이만 행복하게 해 줘.”


“... 네.”


“나 어떤 사람인 지 알지? 죽어서도 지켜볼 거야.”


어르신은 내 앞의 술잔을 도로 가져가 또 한숨에 들이켰다.




이 많은 얘기를 그대로 한다면 선영이 누나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처형은 해야 할 말을 한마디도 못한 채 소주만 마시던 내 손에서 잔을 빼앗았다.


“그만 마셔.”


“핸드폰 봤어?”


“응. 아버지 건 줄 알았는데 진영이 핸드폰이더라. 병원에서 잃어버렸다던 그 핸드폰이지?”


나는 핸드폰을 열어 보았다. 다행히 염려하던 사진과 영상은 모두 삭제되어 있었다.


“어쩌다 핸드폰에서 아버님 번호를 찾게 되었고, 진영이를 괴롭히는 놈을 혼자 해결할 수가 없어서 찾아갔었어. 그놈 만날 때 사용하시라고 이 핸드폰을 드렸고. 아버님이 녀석을 불러내서 단단히 겁을 주고 떼어 내셨어. 진영이는 지금도 모르는 얘기야. 아버지가 도운 걸 알면 난리 칠 게 뻔했으니까.”


“그놈을 어떻게··· 했대?”


누나의 눈빛이 흔들린다.


지금 누나가 느끼는 두려움을 나도 잘 안다. 장인어른을 만났던 날, 나 역시 같은 심정이었으니까. 내가 주도한 일임에도 미치도록 불안했었다. 실행 과정도, 그 결과도 모르니 온갖 상상과 가정을 하며 불안에 갇혀버렸다. 심지어 지금까지도. 미제 사건이 해결되어 범인이 잡히는 뉴스가 보도될 때마다 나도 언젠가는 잡혀가겠지, 생각하며. 이 감정은 죽을 때까지 내 영혼을 갉아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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