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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모아 Sep 18. 2024

[에필로그] 배달 이야기

<연재소설> 비밀의 부부

“아버지가 많이 아파요.”     

     

내가 대뜸 내뱉었을 때, 잠시 어리둥절해하던 여자는 안고 있던 고양이를 내려놓으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유 선생님, 몇 년도에 태어나셨댔죠?”  

        

내가 연도를 말하자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뭔가를 헤아리더니,  

         

“아빠가 널 알아보시긴 하셨니?”  

        

하고 물었었다.  

         

그때부터 나는 진영을 누나라 부르기 시작했다. 쉽게 입 밖으로 나올 것 같지 않은 단어였는데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누나가 나를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동생으로 받아들인 것처럼. 형제자매라는 게 이런 건가?       

   

나를 키워 준 양부모님은 좋은 분들이셨다. 다만 가족이 모일 때면 묘하게 나 혼자 커다란 풍선 안에 갇힌 듯 누구에게도 다가갈 수 없던 것이 슬펐고, 언제부턴가 나는 자식이라기보다는 그분들의 선함을 증명하는 트로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을 뿐이다.      

    

자식을 자기 목숨보다 사랑하는 부모를 볼 때면 궁금했다. 과연 저런 게 보편적인 부모의 사랑일까, 아니면 일부 자식들에게만 허락되는 행운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냥 그래야 한다는 사회 통념에 길들여진 행동일까.


나의 생부모는 어느 쪽 일까? 나를 버린 걸 후회하고 있진 않을까?    

  

생부모 찾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건 딱 그 정도 호기심이었다. 뭐 대단한 목적이나 바람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것이 내 인생을 이렇게 송두리째 바꿀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어머니 이름으로 등록된 김이순이란 이름과 생년월일로는 어머니를 찾을 수 없었고 공교롭게도 (다행인지 불행인지) 경찰서에 등록된 DNA에서 일치하는 DNA를 찾게 되었다. 그렇게 만난 생부는 나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어 보였다. 기뻐하기는커녕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적어도 처음엔 정말 그랬다. 그 느낌이 오래가지는 않았지만.    

      

예상치 못한 경로로 만나게 된 아버지는 말기 암으로 투병 중이었고, 삶을 조용히 정리하고 싶으니 방송에 출연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사실 내가 방송을 극구 거부한 건 아버지 간청 때문이 아니라, 범죄자가 내 생부라는 사실이 수치스럽고, 그를 찾은 게 후회되었기 때문이었다. 자기 신상정보 대신 생부의 정보만 남긴 어머니를 찾는 것도 부질없어 보였다. 내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만한 부모가 아닌 게 분명했으니까.           


이미 방송을 안 하기로 했다는 걸 몰랐던 아버지는 당신이 조용히 죽어야만 딸이 안전할 수 있다며 나에게 길고 긴 사정을 설명했다.

        

저런 범죄자도 부성애가 있다는 말인가? 그 딸은 그의 희생을 숭고하게 생각할까? 호기심이 다시 발동했다. 그리고 연기로라도 해 보고 싶었다. 한 가족의 일원으로 살아보기.        

  

아버지가 말한 딸, 김진영은

부모님이 이혼한 후 아버지와 연을 끊고 살다가 10년 전에 갑자기 아버지를 찾아왔었는데, 그녀의 전 남자친구 양우석이 실종돼서 경찰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박민우가 아버지를 찾아온 지 대략 두 달 정도 지났을 때였다. 그녀는 6년 만에 만난 아버지에게 다짜고짜 돈을 지불할테니 양우석을 찾아달라 했. 그때까지도 진영은 박민우가 아버지를 찾아와서 양우석을 없애 달라고 부탁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양우석 실종 사건에 아버지와 박민우가 연관된 걸 알게 된 그녀는 모두 자기가 한 일임을 자백하는 유서를 남기고 생을 마감하려 했었다. 아버지는 죽든 말든 마음대로 하는데 경찰이 찾아오면, 자기는 박민우가 사주했다고 사실대로 진술할 거고 사주한 증거도 모조리 제출한 후 형량을 협상할 거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게 바로 누나가 죽지 못하고 박민우 옆에 남은 이유였다.           


아버지는 누나가 어떻게 지내는지 확인하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고 했다. 아버지 부탁으로 누나를 찾았지만, 아무리 지켜봐도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아이를 낳았다고 들었는데. 아이를 모두 잃고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는 걸 알게 됐을 즈음 윗집 남자가 변태성욕자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신경써야 할 사람은 박민우가 아니라 윗집 변태였다.     


누나와 조금 가까워졌을 무렵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나는 바로 한국으로 돌아갔다. 임종 직전의 아버지에게 누나는 아이들을 키우며 남편과 잘 지낸다고 전했고, 아버지는 “고맙다, 미안하다” 두 마디를 마지막 숨과 함께 내뱉으셨다.    

  

누나는 장례식에 오지 않았다. 설득하다 애원하다 정말 누나 안중에는 박민우밖에 없는 거냐 비난해도 소용없었다.     

 

장례를 치르고 프랑스로 돌아왔을 때 예상과 달리 누나는 심적으로 무너져 있었다. 심한 죄책감으로 모든 불행의 원인을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아이들이 떠난 거나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신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 말해줘도 누나는 나아지지 않았다.    

  

내가 프랑스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박민우도 돌아왔고, 나를 경계하고 있음을 거침없이 표현했다. 그의 의심이 시작되기도 했거니와 마침 할 일도 마쳤으니 예정대로 바람처럼 사라질 생각이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한 가지 해결하 떠날 계획이었다. 윗집 변태에 관한 이야기와 CCTV 때문에 하지 못했던 아버지 이야기를 누나에게 꼭 전해야 했으니까.         

  

누나는 울타리 뒤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고 흠칫 놀랐다.      

     

“할 얘기가 있어요. CCTV 없는 곳에서.”       

    

누나는 잠시 망설이다 울타리에 난 쪽문을 열어주었다. 내가 테라스 안으로 들어섰을 때 누나가 물었다.       

    

“갑자기 떠나는 건 나 때문이지?”


나는 잠시 망설이다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누나는 박 선생님이 아무것도 모르길 바라잖아요. 그럼 내가 떠나야죠.”        

  

쪽문을 닫고 돌아선 누나의 눈이 순식간에 빨개졌다.      

     

“정말 그 위험한 데로 갈 거니?”          


지금껏 내가 마주한 수많은 눈 중에 나를 저런 눈으로 바라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설마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는 건가? 격한 파동이 가슴 깊은 곳에서 일렁였다.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낼 때도 썰물처럼 밀려와 나를 혼란스럽게 했던 그 파동이···.      

     

배우들이 연기에 몰입하다 보면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기도 한다는 게 이런 걸까? 나는 어느새 김 씨 일가의 진짜 막내가 되어있었다. 충혈된 눈에 눈물이 차오르기 전에 무슨 말이든 해서 누나를 안심시키고 싶어졌다.  

     

“박민우 선생님이 사주한 증거 따윈 애초에 없었대요. 그냥 누나가 죽을까 봐...”         

 

나는 말을 끝맺을 수가 없었다. 누나가 결국 울음을 터트렸기 때문이다. 누구를 향한 눈물일까.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 남편에 대한 안도감? 아니면 나에 대한 걱정?         

 

“다 나 때문이야. 네가 생모를 못 찾는 것까지 모조리 다.”  

        

“신경 쓰지 마요. 그렇게 절실했던 건 아니었어요.”   


“혹시 아버지 집에 도자기 가마가 남아 있었니?”          


“도자기 가마요? 그게 뭔데요?”  

        

누나는 초조한 듯 손만 만지작거렸다.          

 

“놈을 어떻게 했냐고 물었을 때, 지옥 불에 타 죽어 마땅한 놈이라 그렇게 했다고 하셨어.”    

      

“네?”   

       

“영원히 쓸모없는 존재로, 뼛가루 한 톨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고 하셨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만, 아주 오랫동안 묻어 둔,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얘기를 알아듣지 못할 사람에게 털어놓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나는 조용히 들어주었다. 내놓지 않으면 몸속에서 터져버릴 그 폭탄을 꺼내놓도록.

         

“그 방법을 제시한 것도 민우였을까?”

          

그녀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누나가 원하는 대답을 해 주고 싶지만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다 끝났으니 이제 아버지를 찾아가도 되겠지?”      

    

나는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그 어떤 위로보다 그녀의 결정을 지지해 주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이 벌은 대체 언제 끝날까? 정말 끝이 있기는 할까?”   

       

그때 누나의 핸드폰이 울렸다. 박민우였다. 집 앞에 다 왔으니 장 보러 갈 채비를 하라는 전화였다. 나는 윗집 변태 얘기는 꺼내지도 못한 채, 누나에게 작별 인사도 제대로 못한 채, 서둘러 집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얼렁뚱땅 나는 나만의 새 삶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조금의 미련도 남기고 싶지 않아 모든 걸 지우고 끊어버리고.      

    

문득문득 랭스가 떠올랐지만 그건 봄밤에 부는 실바람 정도의 가벼운 회상일 뿐이었고, 나의 가족 찾기 여정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콩고에 도착하자마자 알 수 없는 복통과 불면증이 시작되었고, 12월쯤 증상이 급격히 악화하면서 큰 병원을 찾아 다시 파리로 돌아오게 되었다. 검사 후 결과를 기다리며 일주일 정도 프랑스에 머물러야 했는데, 노을이 어슴푸레 지는 거리를 걷다가 문득 랭스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도 꽤 충동적이긴 하지만, 내 병의 원인이 누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 누나 집 주변을 어슬렁거릴 때는 호기심 반, 부탁에 대한 책임감 반 정도의 감정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오로지 염려하는 마음뿐이었다. 누나가 또 다른 미치광이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 떠났던 것에 대한 미안함과 걱정이 마음을 짓눌렀던 것 같다. 뭐 대단한 남매사이라고 이러나 스스로도 한심했지만 생판 남이었어도 나는 분명 모른 척 살아가진 못했을 것이다.     

      

누나의 윗집은 이사 갔는지 빈집처럼 보였다. 안심하고 돌아서려는 데, 건물의 유리 대문 안쪽으로 센서등이 켜졌고, 집에서 나온 박민우가 2층으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얼마 후 누나도 위층으로 올라가더니 겁에 질린 듯 황급히 계단을 내려와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위층에 누가 있나? 박민우는 왜 위층으로 올라갔고, 누나는 왜 따라 올라갔다가 도망치듯 내려온 걸까? 위층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음이 분명했다.           


건물 입구로 다가갔다. 대문이라 할 수 있는 유리 입구는 여전히 잠금장치가 고장 나 있었고, 나는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누나에게 가 봐야 하나 위층으로 가야 하나 망설일 때 위층에서 소리가 들렸다. 올라가 보니 열린 문틈으로 박민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한 남자가 흐느끼는 소리도 들렸다. 나는 집 안으로 들어갔고, 흥분한 두 남자가 다투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박민우가 몸을 돌려 주변을 두리번대기 시작했을 때 방문 뒤로 몸을 숨겼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그가 집 이곳저곳을 살폈고, 창문 하나를 열어 놓더니 집을 빠져나갔다.     

 

바닥에 쓰러져 울던 남자가 몸을 일으키다 나를 발견했다.        

   

“아직 안 갔나?”   

       

그는 어둠 속에 서 있는 나를 박민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럼 나 좀 도와줘.”     

     

일으켜달라는 말인가?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눈물과 침으로 범벅된 얼굴이 나를 올려보았다.    

      

“뭘 어떻게 도와주면 되나요?”         

 

“불어를 할 줄 아는 거야?”       

   

나는 여기 오면 안 되는 사람이고 박민우에게 들키면 더더욱 안 되니 그냥 박민우인 척했다.  

         

“신이 임하면 어떤 언어도 할 수 있습니다.”    

      

가당찮은 내 대답을 믿는 건지, 그가 어두운 바닥을 더듬어 기어와 내 발목을 잡고 엎드렸다. 찌든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찔렀다.  

         

“제가 이 저주받은 몸과 영혼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가 해온 변태 행각이 떠올랐다. 누나를 지켜보다 우연히 알게 된 그의 실체. 그는 자신도 어쩔 수 없는 병에 지친 환자였고, 구원을 원했다.     

      

술에 취한 몸을 힘겹게 일으켜 앞으로 걸어가던 그가 나에게 손짓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의 손이 허공을 가리켰지만 어두워서 뭘 보라는 건지 잘 보이지 않았다.  

         

“날 좀 잡아줘요. 저 줄에 닿을 수 있도록.”      

    

자세히 보니 변기와 작은 세면대만 있는 좁은 화장실이었고, 천장 조명걸이에 줄넘기가 매어져 있었다. 박민우가 차라리 죽어버리라고 했던 말이 이거였구나, 알게 되었다.          


죽음에 대해서 나는 늘 깊이 생각했었다.      

     

본인은 물론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고 환영받지 못한다면 살 필요가 있을까?

나을 수 없는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안락사를 선택하는 건 합당한가?

죽음은 개인의 영역인가 신의 영역인가?     


아직 확실한 답을 찾지 못했지만 그를 돕고 싶었다. 그가 원하는 건 일종의 안락사 같은 거니까. 심신이 이미 오래전에 망가져서 폭주하는 좀비가 되어버린 그를 도울 사람은 나뿐이니까.    

       

바닥에 뒹굴고 있는 보드카를 집어 그에게 내밀었다. 그는 마지막 술이 될 보드카를 벌컥벌컥 마셨고, 나는 열린 창으로 소음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창문을 닫았다.           


    

    




건물을 빠져나오는데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충격을 받으면 기억의 한 마디가 날아가버리기도 한다는데, 나에게도 그런 행운이 오려나. 그러면 오늘의 그 소리를 잊을 수 있을까. 분명히 돕는 마음으로 한 일이었는데, 내가 그를 도운 건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모르겠다. 그 정도 확신 없이 그의 손을 잡아 준 건가? 술김에 내지른 주사였을 뿐, 진짜로 죽고 싶은 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 오래전 학교 선생님이 한 말이 떠올랐다.     

     

“도울 주제가 되는 사람이나 도울 수 있는 거야.”          


콩고로 돌아가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떨리는 몸으로 밤거리를 정처 없이 걸었다. 수많은 생각과 감정이 온몸을 장악해 버렸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난 그저 누나의 안부를 확인하고 윗집 남자를 조심하라고 말하러 왔을 뿐인데.        

   

뭔가에 홀린 게 분명하다. 역할에 몰입한 나머지 진짜 내가 해결사라도 된 양 일을 저질러 버렸다. 순간적인 판단에 벌인 일이라 현실감도 없었다.

           

경찰을 찾아가서 자백할까? 자수해서 법의 심판을 받고 나면 이 고통이 사라질까? 사람이 만든 법이 주는 형벌을 받고 나면 죄가 사해지긴 하나? 죄는 그 남자한테 지었는데, 법이 내린 벌을 받고 용서받는 게 맞는가? 경찰이 왜 그 집에 갔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지? 누나와 박민우에 대해 말하지 않고 나만의 문제로 정리될 수는 있을까? 자수하면 결국 누나가 알게 될 거고 그러면 또 다른 짐을 그녀에게 지우게 될 텐데...     

      

-이 벌은 대체 언제 끝날까? 정말 끝이 있기는 할까?   

       

누나의 말이 품은 고통이 고스란히 마음에 닿았다.        

   

수많은 질문 속에 정확한 건 단 하나. 끝이 보이지 않는 벌이 이제 나에게도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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