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윗집으로 이사 온 파티광

<연재소설> 땡감이 영그는 시간

by 헤모아

오후 4시가 되자 위층이 조용해졌다.


“벌써 이사가 끝났나?”


“스무 명이 설치더니 빨리 끝냈네.”


시계를 확인한 모에카가 겉옷을 챙겨 입었다.


“가자. 애들 데리러 갈 시간이네.”


모에카와 같이 집을 나서다 이사 온 윗집 주인과 마주쳤다. 갈색 피부에 까만 곱슬머리, 짙은 눈썹의 키가 큰 남자였다.


“미안합니다. 이삿짐 옮기는 소리가 시끄러웠죠?”


2층에서 내려오던 그가 계단에 멈춰 서서 사과했다. 까만 뿔테 안경 때문에 인상이 더 강해 보였다.


“이삿날인걸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내가 대답하자 그는 내 말을 조용히 되뇌며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픽 흘렸다. 그건 전혀 호의적인 웃음이 아니었고, 비웃음에 가까운 못된 웃음이었다. 내가 과민한 건가 싶었는데, 건물 입구를 나서자마자 모에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지? 저 재수 없는 웃음은?”


“그렇지? 저 사람이 기분 나쁘게 웃은 거 맞지?”


“응. 아주 별로였어.”


모에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발음이 후져서 무시하는 건가? 아니면 동양인이라서?”


내 말에 모에카가 우편함으로 가서 남자의 성(姓)을 확인했다.


“성이 <아마두> 라는데?”


“뭐야, 자기도 이민자면서.”


이유 없이 이런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면 후유증이 꽤 오래간다. 특히 그 상대가 자주 봐야 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잊을 만하면 마주치고, 마주치면 다시 비슷한 일이 생기곤 하니까.


새로 이사 온 아마두 씨 가족은 이사 온 당일부터 아래층에 사람이 산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은 것처럼 걷고, 뛰고, 음악을 틀었다. 잊은 게 아니라 일부러 괴롭히려고 작정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게다가 주말만 되면 사람들을 불러 모아 파티를 하는데, 새벽녘까지 이어지는 파티 소음에 잠자기는커녕 집에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이 정도로 크게 음악을 틀고 춤을 추면 렁보 씨 집도 타격이 클 텐데, 왜 가만히 있는 걸까?


극성스럽고 적대적인 아마두 씨에게 홀로 맞설 자신이 없는데, 의지할 사람이 없다. 요즘처럼 기욤이 절실히 생각난 적은 결혼 후 처음인 것 같다.


자정이 넘도록 계속된 파티 소음에 에디가 잠 못 이루던 어느 날, 더는 참을 수 없어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굉음에 가까운 음악 소리가 활짝 열린 윗집 현관을 통해 복도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당 쾅쾅 소리 내며 몇 명이 비틀비틀 층계를 내려왔다. 이미 건물 밖에서는 두 명의 성인 남자가 레슬링인지 씨름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몸싸움 중이었다. 혹시 약을 한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제정신이 아니었는데, 계단을 뛰어 내려온 젊은 남녀가 밖에서 씨름 중인 남자들을 사진 찍고, 웃고, 손뼉 치고 난리였다.


나는 다시 집으로 들어와 창밖으로 난장질을 지켜보았다.


자정이 넘은 시간, 이렇게 야외에서 난동을 부리는데 왜 아무도 나오지 않는 건가.


앞 건물의 창도, 옆 건물의 창도 고요하기만 했다.


이 소음이 불편한 사람이 정말 나뿐인 걸까, 하는 궁금증이 분노를 누를 정도였다. 내가 이상한 건지, 이곳의 다른 사람들이 이상한 건지 알 수가 없다.


한바탕 씨름하던 남자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다시 복도로 나가 아마두 씨 아들을 불러 세웠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는 어깨까지 내려온 검정 곱슬머리를 휘날리며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일전에 아마두 씨가 날 비웃었던 일이 생각나서 불어로 말하기 싫어졌다. 아직도 나는 불어보다는 영어가 훨씬 편했기 때문에 나름 고압적인 자세로 싸워야 할 때면 언제나 영어를 사용하곤 한다.


내가 그를 부르니, 그는 “봉수아(Bonsoir 저녁인사)”하며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지금이 몇 시인 줄 아니? 자정이 넘었는데 너무 한 거 아니야?”


영어로 따지는 날 보며 잠시 당황하던 그는 영어로 더듬더듬 대답했다.


“주말이잖아?”


“그래서?”


그는 영어 단어를 친구들에게 물어보다 결국 불어로 대답했다.


“파티를 할 수도 있지.”


“맞아. 할 수도 있지. 그런데 이렇게 시끄럽게는 안 되지. 너 혼자 사는 곳이 아니니까.”


“별로 안 시끄러운데?”


너무도 뻔뻔한 녀석의 태도에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뒤에 서서 지켜보던 그의 친구들은 수군대며 위층으로 올라갔다.


“아니! 엄청 시끄러워. 건물이 너희 음악 소리로 진동하고 있어.”


“알았어. 조금 줄여볼게.”


“조금?”


“그래. 조금.”


“장난하니? 당장 다 끄고 조용해야 할 시간에 조금 줄여본다고?”


“줄이긴 할 거라고.”


“너 말이 안 통하는 애구나? 그럼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겠네. 나는 분명히 조용히 해 달라고 부탁했고, 안 들은 건 너야.”


나는 문을 쾅 닫고 집으로 들어와 버렸다.


알아들을 수 있도록 천천히 말했어야 했는데 너무 흥분한 나머지 열받은 만큼의 속도로 말을 쏟아내 버렸다.


집에 들어와서도 한동안 가슴이 벌렁거렸다. 두 배로 빨라진 심장 박동으로 가슴부터 머리끝까지 상체 전체가 두근거렸다.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는데 이번에는 위층 테라스 쪽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내 거센 항의에 대한 그의 참신한 대응이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였다. 더 이상 참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화를 꾹 누르고 컴퓨터 앞에 앉아 레지던스를 관리하는 부동산에 항의 메일을 써 내려갔다.


나는 뒤끝이 긴 편이라 한번 갈등이 시작되면 꽤 오랜 시간 스트레스를 받는다. 감정이 상하고 나니 윗집에서 들리는 작은 소음에도 쉽게 예민해졌다.


우리 집은 한국으로 치면 1층이고 기형적으로 길쭉한 직사각형 형태의 집이다.


조금 더 가시적으로 설명하자면 가느다란 직사각형 안에 거실이 있고, 거실 끝에 긴 복도가 이어지고, 복도 끝에 작은 침실 두 개가 붙어 있는 구조다. 이렇게 길쭉한 직사각형이 된 이유는 우리 집 옆으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자동차 통로가 있기 때문인데, 우리 위층은 우리 집과 주차장 통로를 합한 면적을 반으로 나누어 두 집이 사용하고 있다. 둘로 나눈 대신 복층으로 되어있어서 평수로 따지면 우리 집보다 넓다.


이렇게 세 가정이 사는 우리 건물은 오른쪽 옆으로 다른 건물이 붙어 있는데, 옆 건물은 복층 구조로 된 집이 두 가구씩 있는 4층짜리 건물이다. 나 혼자 층간 소음을 해결하기는 역부족 같아 이웃들과 협동하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합벽 건물이라 벽이 붙어 있으니 옆 건물에도 소음이 전달될 게 분명했다.


우리 집 거실과 벽을 공유하고 있는 옆집에는 브라질 부부가 살고 있는데, 그 집은 복층이라 1층은 우리 집과, 2층은 <아마두>씨 집과 벽을 공유하고 있다. 그 집은 남편이 자주 해외 출장을 가서 부인인 알렉산드라가 혼자 아이들과 생활하는 시간이 많다고 들었다.


나는 알렉산드라를 새 학년이 시작된 올 9월에 알게 되었는데, 그녀 역시 모에카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다.


모에카는 애들 학교로 전학 오는 거의 모든 이민자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시내 투어를 시켜주며 정착에 필요한 갖은 도움을 주곤 한다. 누가 시킨 일이 아니고 스스로 원해서 하는 일인데, 나 역시 모에카의 오지랖 덕분에 그녀와 친해졌었다. 에디를 낳은 직후 부쩍 바빠진 기욤은 육아에 거의 참여하지 못했고, 2년간 나 혼자 에디를 책임지다 심신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번아웃이 오기 직전, 에디를 데이 케어에 맡기게 되었다. 시설에 간 첫날, 자지러지게 우는 에디를 두고 돌아설 수 없어서 문 앞을 서성이고 있었는데, 모에카가 눈물을 글썽이는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어주었다. 그때부터 그녀의 아들 나엘과 에디는 함께 시설에 다니게 되었고, 나는 모에카와 그녀의 남편 필립에게 의지하며 외로운 결혼생활을 버텼다.


어쨌든 나의 부탁으로 모에카가 알렉산드라를 집으로 초대했고, 나는 나와 함께 층간 소음에 맞서 싸워 줄 아군 만들기 작전에 돌입했다. 그런데 시작하자마자 난관에 봉착했다. 문제는 언어였다. 알렉산드라는 영어는 아주 조금 알아듣는 정도였고, 불어도 생활에 필수적인 회화만 가능한 정도라 속 시원하게 대화할 길이 없었다. 그래도 처지가 같은 외국인 신분이라 그런지, 아니면 구글 번역기 덕분인지, 대략적인 내용을 주고받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핸드폰으로 단어를 찾고, 손짓·발짓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이민자로 사는 삶의 설움을 토로하다, 드디어 그날 만남의 목적이었던 윗집 소음 문제가 화두에 올랐다.


“음악을 꼭 그렇게 크게 틀어야 하나? 내가 크게 튼 음악이 남에게는 소음이 된다는 걸 모르나 봐요. 알렉산드라 집은 시끄럽지 않아요?”


“글쎄요. 가끔 소리가 들리기는 하는데 그 집이랑 닿는 쪽은 거실이고, 침실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별문제 없어요.”


같은 건물이 아니라 진동이 덜 할 수도 있다. 사실 소리도 문제지만 우퍼에서 증폭된 소리의 파장이 만드는 진동이 더 문제였다. 골을 울리는 저음이 몇 시간씩 웅웅 울릴 때면 건물의 벽도 미세하게 진동하는데, 이 진동은 멀쩡한 사람도 부정맥 환자처럼 심장이 두근거리게 만들곤 한다.


본론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알렉산드라가 중학교에 다니는 큰아들이 일찍 하교하는 날이라며 먼저 일어났다. 그녀는 우리보다 여덟 살이나 어린데 에디보다 다섯 살 많은 큰아들이 있었다. 놀랍게도 알렉산드라의 엄마도 16살에 그녀를 낳아서, 우리보다 고작 여덟 살 많다고 했다. 알렉산드라의 큰아들이 스무 살에 자식을 낳는다면 알렉산드라의 엄마는 오십 대에 증조할머니가 되는 셈이다.


“오십 대 초반에 증손을 보는 기분은 어떨까?”


찐득한 비즈(bises)를 한 후 문을 나서는 알렉산드라의 뒷모습을 보며 모에카가 말했다.


“별 느낌 없겠지. 브라질에서는 그게 일반적인 걸 수도 있으니까.”


“육아라는 커다란 과제를 일찍 끝낸 거니까 효율적인 건가?”


“비효율적인 거지. 젊을 때만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못 했을 거 아냐.”


“맞아. 게다가 반드시 해야 하는 과제도 아닌데.”


어쨌든 알렉산드라와 합심해서 윗집과 싸워보려 한 내 계획은 물 건너갔다. 보아하니 그녀는 싸울 의지가 전혀 없었고, 싸움은커녕 문제의식조차 못 느끼고 있었다.


“같은 건물이 아니라도 건물끼리 붙어 있는데 그 소음이 거슬리지 않는 게 말이 되나?”


“브라질 사람이잖아.”


모에카가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그녀의 말에 거리에서 삼바를 추며 노래 부르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이혼보다 층간 소음이 더 큰 고민이 된 요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비슷한 하소연을 하게 됐고, 내 말을 들은 사람들 모두 비슷하게 반응했는데, 그들은 모에카처럼 “브라질 사람이라 그렇겠지.” 혹은 “성이 아마두라고? 그쪽 문화가 원래 좀 그래.”라고 대답했다. 선입견에 의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생각했지만 나도 그냥 고개를 가만히 끄덕이며 긍정했다. 관습과 문화에 따라 소음에 대한 관점과 이해도가 다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선입견의 해악이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돌아왔다. 에디가 심각한 표정으로 방에 앉아 있는 걸 보니 학교에서 또 일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기분이 안 좋은 이유가 뭔지 살살 캐보니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에디가 공부를 잘하는 걸 너무 당연시하는 게 문제였다.


“나도 노력해서 잘하는 건데, 내 성적이 좋으면 다들, 쟤 엄마는 한국 사람이잖아, 그럼 쟤도 반은 한국인이니까 잘하는 거지, 이래. 내가 공부 잘하는 게 왜 엄마가 한국 사람이라서야?”


달리 생각하면 칭찬일 수도 있기 말이기에 아들의 기분과는 상관없이 난 좀 으쓱했다. 한국이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인 랭스가 언제 이렇게 달라졌나, 한국에 대해 아이들까지 알 정도라면 이제 좀 살 만하겠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름 칭찬으로 들을 수 있는 얘기에 에디는 왜 이렇게 기분이 상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차분히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냥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인데 뭐.”


“그게 뭐가 웃겨? 하나도 안 웃겨!”


사실 상대는 농담으로 한 말이지만 인종과 문화에 대한 차별로 느껴질 때면 기분이 몹시 상하는 건 사실이다. 기분 나쁘지만, 웃자고 한 말에 얼굴을 붉히기도 애매한 게 더 문제다.


“그렇게 기분 나빴어?”


“그럼. 엄청 나쁘지.”


“왜?”


“내가 공부를 못 하게 되면, 너는 왜 한국인인데 공부를 못해? 이럴 거 아냐!”


“그건 너무 앞서갔다.”


“아니! 내가 축구할 때 실수라도 하면, 아시아 애들은 역시 축구를 못해, 이렇게 말한단 말이야!”


내 유전자는 에디에게 그다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 거로 보이는데 이런 말을 듣는다니 조금 놀라웠다. 억울하기도 했다. 에디가 축구를 못 하는 건, 프랑스인 아빠가 몸으로 놀아 준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인데.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 주려고 나 혼자 수영장이며 축구장이며 공원이며 뛰어다닌 시간이 떠올랐다. 함께 살아도 가족으로서 공유해야 하는 시간 없이 나 혼자 아등바등해야 했던 바로 이 점이 나를 지치게 했고, 억울하게 했고, 이혼을 결심하게 했다는 사실 또한 상기되었다.


“그러게. 그건 좀 너무했네.”


에디를 위로하는 말인지 내 푸념인지 모를 말이 튀어나왔다. 말로는 더 위로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에디가 좋아하는 음식을 해주기로 했다. 에디는 날 닮아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풀리는 아이다.


“새우 크림 파스타 해 줄까?”


오늘은 지방을 제거하지 않은 고열량 생크림과 파르마 산 치즈까지 잔뜩 넣은 진한 소스를 만들 것이다.



*


별거를 시작한 후 나는 더 바빠졌다. 예전보다 돈을 더 벌어야 해서 일을 늘렸고, 그만큼 에디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레스토랑 손님을 유치할 수 없어서 샴페인 투어 손님이 줄어들 줄 알았는데, 손님이 되레 늘었다. 모에카의 웹사이트에 한국어와 영어를 추가했기 때문인데, 그걸 완성하기 위해 나는 적잖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했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일한다. 쪼갠 시간만큼 인생도 조각나고 있다. 실패해서 부서졌다는 게 아니라 문자 그대로 연속성 없이 뚝뚝 끊어진다는 의미다. 아무리 아껴 써도 그림 그릴 시간은 터무니없이 적다. 조각난 시간에 할 일을 욱여넣고 정신을 차리려 틈틈이 커피를 원샷한다.


사실 다른 사람(에디)의 인생이 내 삶에 들어왔으니 시간이 조각나는 건 당연하다. 내 시간을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하고 싶은 마음은 말도 안 되는 욕심인 걸 알지만 일에 집중할 시간이 모자란 건 아쉽다.


몸은 예전보다 바쁘지만, 마음은 오히려 편하다. 원망하고 억울해할 이유가 없으니까. 혼자니까 혼자 하는 것과 둘 임에도 혼자 하는 건 느낌이 다르다.


샴페인 투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건물 앞에서 렁보 씨와 마주쳤다. 렁보 씨가 웃으며 나에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혹시 집에 난방이 들어오기 시작했나요?”


“어제부터 조금씩 들어오는 것 같아요. 아직 11월이 안 됐는데.”


“네, 제가 너무 춥다고 부동산에 전화했거든요. 하루 이틀 먼저 열어주는 거야 별일 아니니까.”


“그러셨군요. 덕분에 저희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겠어요. 감사합니다.”


렁보 씨는 웃으면서 몸을 돌렸다. 나는 층간 소음에 대해 물으려 렁보 씨를 붙잡았다.


“저기, 뭣 좀 여쭤봐도 될까요?”


“네, 그러세요.”


“옆집에서 음악을 크게 틀고 주말마다 시끄럽게 파티하는데 시끄럽지 않으세요?”


“들리긴 하는데, 불편한 정도는 아니에요.”


“그럼 제가 예민한 거겠군요.”


“많이 시끄러우세요?”


“전 잠을 못 잘 정도예요. 낮에도 음악 소리 때문에 몇 시간씩 벽이 울리고….”


“조용히 해 달라고 말씀해 보셨어요?”


“네, 근데 주말인데 어떠냐고 하네요. 전혀 미안해하지도 않고.”


“그래요?”


“전 이제 목요일만 돼도 가슴이 두근거려요. 주말을 어떻게 버티나 싶어서.”


렁보 씨의 눈썹이 위로 쑤욱 올라가며 이마에 주름을 만들었다.


“그 정도예요?”


“네.”


“그럼 제가 한번 말해 볼게요.”


“네?”


이분은 언제나 내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 대답으로 날 놀라게 한다. 렁보 씨의 파격적인 호의에 얼떨떨해 있는데 그가 말을 이었다.


“이따 저녁때 한번 찾아가 보죠, 뭐.”


층간 소음은 민감한 주제라 못 견딜 만큼 불편하지 않은 한 굳이 맞서지 않는데 대신 나서준다니 의외였다.


“정말요? 감사합니다. 사실 제가 다시 말해봤자 전혀 바뀔 것 같지 않거든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한번 얘기해 볼게요.”


렁보 씨가 환하게 웃자 입가의 팔자주름이 도드라졌다. 세월이 만든 선이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단 말인가? 저런 곡선이라면 나이 먹는 건 절대 슬픈 일이 아닐 것이다. 전성기를 찍고 내리막을 그리는 주름 앞에서 늘 작아졌었는데 이젠 담대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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