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잘못인가?
"선생님! 배고파요! 간식 주세요! "
오늘도 어김없이 승민이가 교실 의자에 앉기도 전에 외쳤다. 승민이는 수업 때마다 배고프다고 외치며 간식을 달라고 요구한다. 한창 성장기인 아이가 배가 고픈 건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또 학교를 마치고 바로 시작하는 수업이라 점심 먹은 지 몇 시간 지났으니 배가 고픈 것도 이해가 간다. 처음에는 '아이고, 아이가 얼마나 배고프면 수업까지 와서 간식 타령을 할까? '이런 안쓰러운 마음에서 간식을 주었다. 그 이후 가볍게 몇 번 미리 준비하기도 했다. 의도는 단순했다. 간식 먹고 나면 수업에 더 집중을 잘하겠지. 오늘은 미리 준비해 둔 크래커를 꺼냈다.
"애걔! 이게 다예요? "
기껏 준비한 간식이었지만, 승민이는 오히려 야유를 쏟아냈다. 이게 다냐니.... 그동안 참고 참았던 말을 꺼냈다.
"응. 오늘은 이게 다야. 승민아, 선생님이 간식을 준비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니야. 그리고 우리는 간식이 아니라 수업 때문에 만났잖니? "
이쯤 되면 간식을 요구하는 아이가 예의가 없는 건지 배고프다는 게 안타깝다고 간식을 준 내가 잘못한 건지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간식을 준비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초반의 의도와 점점 더 멀어졌다. 아이들은 점점 간식을 주는지 안 주는지, 무슨 간식이 나오는지에 더 집착했다. 어느새 수업하러 오는 건지 간식을 먹으러 오는 건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렇게라도 오는 게 장점인가? 그래. 장점이 될 수도 있겠지. 무엇보다 수업에 오기 힘들어했던 아이들은 간식 먹는 재미로라도 오는 재미가 생긴다. 그래서 수업의 시작 자체가 편해지고 아이들도 수업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다. 또한 간식을 나눠 먹으면서 선생님과도 친밀함을 더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장점들은 수업을 수월하게 이끌어가는 데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매번 어떤 간식을 줄지 고민하는 건 선생님 몫이다. 때마다 적절한 간식을 떨어지지 않게 준비하는 것도 은근히 신경 쓰이는 것도 사실이다. 또 다른 문제는 간식을 먹느라 수업 시간의 일부가 소요된다는 점이다. 특히, 속도가 느려 수업 시간이 촉박한 아이들의 경우 간식 때문에 수업이 지연되면 제때 끝마치지 못하거나 그 시간에 해야 할 일들을 다 마치지 못할 수도 있다. 거기다 간식 다 먹기를 기다리다 못해 수업하다 보면 논술 수업 특성상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거나 본문 읽기라도 할라치면 입에 든 간식 때문에 수업 진행에 방해가 될 때도 있다.
그렇지만 수업 때 제공하는 간식의 장단점을 차치하고서도 진짜 문제는 초반에 생각했던 내 선의와 관계없이 아이들이 간식이라는 배려 혹은 혜택 자체를 당연하게 여기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한 요구를 한다는 데 있다. 비단 아이들뿐일까? 어른들도 그렇다. 상대의 배려를 자신의 권리로 아는 것.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허다하다. 아이들뿐 아니라 친구 사이에서도 호의와 선의로 시작했던 일이 나중에 오히려 불편함을 초래했을 때가 종종 있었다. 누군가를 내 차로 태워주는 일, 만날 때 작은 선물을 하는 일 등등. 그러면 그건 누구의 잘못일까? 따져 묻고 싶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선의의 의도를 가진 사람이 잘못한 건가? 묻기도 어렵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상대방의 호의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그 얘기는 결국 둘 다 잘못이라는 말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결국 간식을 제공한 게 잘못 아닐까?간식을 제공하기로 결정했을 때 상대방이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걸 파악하지 못하고 무작정 자기 뜻대로 선의를 베풀었기 때문이다. '구덩이에서 꺼내주니 보따리 짐 내놓으라 한다'라는 속담처럼 선의를 베푸는 것도 상대를 봐가면서 해야 하는 것이다.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선의를 베푸는 것은 오히려 나를 해칠 칼자루를 쥐여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만약 상대가 오히려 나를 위협한다면 그 즉시 그 선의를 거두어야 한다.
나는 나를 해칠 칼자루를 상대에게 쥐여준 적은 없는가? 혹은 반대로 상대방의 선의를 권리로 생각하고 무리한 요구를 한 적은 없는가? 스스로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관계는 분명 어딘가에 문제가 있는 관계다. 나에게 있든지, 상대에게 있든지. 결국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지하고 어렵더라도 상대와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 결국 나는 수업에서 방해가 된다면 간식은 앞으로 없을 거라고 못 박았다. 나를 지키고, 우리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단호한 대처가 필요할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