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선물

주는 기쁨 vs. 받는 기쁨

by 이주나

어린이날이다. 오는 어린이날을 맞아 일찌감치 학생들에게 줄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내가 챙기는 선물은 크게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이다. 멀지 않은 그때마다 선물이 겹치지 않으면서도 적당한 가격의 유용한 선물을 고르는 것은 언제나 고민이다. 이번에 준비한 어린이날 선물은 캐릭터 낮잠 베개였다. 평소보다 조금 더 단가가 높지만 '아이들이 좋아하겠지?' 기대하며 주문했는데, 예상대로 대성공이었다. 아기자기한 것들을 좋아하는 여자 친구들뿐만 아니라 인형을 좋아하는 남자 친구들, 또 인형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도 부드러운 촉감에 팔베개로 쓰기 편하다며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물론 어린이날 선물이 언제나 성공했던 건 아니다. 학부모 취향의 선물을 골라 정작 아이들에게 실패하기도 하고, 너무 아이들만 좋아할 만한 선물을 골라 학부모 항의를 받은 적도 있다. 또 예상보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사놓고 후회한 적도 있다.

선물을 고른다는 건 어렵다. 특히나 상대방의 취향과 나의 취향 그 중간쯤 점을 찍어야 하므로 더 그렇다. 사실 개인적인 선물은 완전히 내 취향대로 마음대로 고르거나 상대방 취향에 맞춘다. 완전히 양극단을 달려서, 내가 주고 싶을 때 주고 싶은 선물을 주거나 아니면 상대방이 특정한 선물을 사주거나 한다. 그렇지만 평소 대부분의 선물은 상대방이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나에게서 선물을 받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시점에, 상대에게 유용하면서도 나의 성의와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선물을 골라야 할 때가 더 많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줄줄이 소시지처럼 늘어져 있는 5월이 특히 그렇다.



그럴 때 어떻게 고르는가? 상대방이 선물을 특정하는 경우는 차라리 편하다. 그걸 줄지 말지만 결정하면 되니까. 아주 감사한 상대다. 그렇지만 상대방이 분명한 의사표시를 하지 않는 경우라든가, 현실적인 이유로 원하는 선물을 줄 수 없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다른 대안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 그럴 때는 상대방의 취향과 의중, 그리고 관계성과 나의 예산 등을 생각해서 선물을 고려해야 한다.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요즘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그리고 나와는 얼마나 친밀한지, 어느 정도 선의 선물을 골라야 상대방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지, 나는 또 상대에게 얼마나 쓸 의향이 있는지 다방면으로 생각해 봐야 한다. 외려 상대방에 대해서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또 상대방과 친밀해지고 싶은 욕구가 크면 클수록 선물을 고르는 게 더 어렵다. 그럴 때는 머리가 꽤나 아프다. 고민이 지나치면 오히려 취향에 맞는 선물 고르기를 포기하고 남들이 다 하는 일반적인 선물을 고르고 싶다는 유혹에 사로잡히거나 실제로 유혹에 진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물 고르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선물을 고르는 고통보다 주는 기쁨이 더 크기 때문일 것이다. 상대를 생각하고, 상대의 관심사와 취향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고, 이런저런 선물을 생각하면서 상대의 반응을 예상하는 등 그 일련의 과정 자체는 대개 즐겁기 마련이다. 여유가 있다면 더 즐겁고. 아마도 그 이유는 이 선물을 통해 상대방에게 나의 존재를 어필하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망이 머릿속 상상을 통해 구현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 덕분에 여우가 어린 왕자와 약속한 4시가 되기 전부터 행복하듯이 우리도 선물을 준비하면서 행복해진다.



그렇지만 상대방의 반응을 너무 기대하다 보면 생각보다 훨씬 덜 한 반응에 실망할 때가 더 많다. 상대가 더 좋아할 줄 알았는데, 무표정으로 선물을 받기만 한다면 그야말로 '마상'이다. 그동안 선물을 준비하던 기쁨은 순간 잊히고 '괜히 준비했나? 마음에 안 드나?'하는 의문이 마음속에 피어오르면서 '다음에 다시 선물을 주나 봐라.'싶은 결심이 앞설 때도 있다. 그렇지만 다시 묻고 싶다. 그동안 당신은 받은 선물에 얼마나 감사한 마음을 보여줬나요?



생각해 보면 나부터도 떨떠름한 표정으로 받았던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그 이유도 단순하다. 당황해서. 상대가 선물을 줄 줄은 상상도 못 해서 얼떨결에 선물만 턱턱 받았다. 놀라서 기쁨의 탄성이 나올 때도 있었지만 대개는 '어? 이걸? 지금? 나한테? 왜 주지?'라는 생각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할 때가 더 많았다. 그나마 이성의 힘으로 '고맙다'라는 말이라도 하면 다행이다. 혹은 이미 상대방이 무언가 선물을 준비했다는 걸 알고 있을 때,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선물을 받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할 때도 많았던 것 같다. 작년에 아이들이 학교에서 억지로 쓴 것 같은 어버이날 편지가 그랬고. 오직 내가 딱 원하던 선물이었을 때야 비로소 진심으로 기뻐하는 표정을 지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 한마디로 인색했다.



이제부터라도 주는 기쁨은 마음속에 간직하고, 받는 선물을 잘 받으려는 태도를 길러야겠다. 선물을 준비할 때도 기쁘지만 상대방이 충분히 좋아할 때 더 기쁘다. 너무 당연한 일이고 당연한 말이지만, 이제 나부터라도 상대방에게 선물을 주는 기쁨을 더 크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려면 작은 걸 발견하는 큰 눈을 키워야 한다. 또, 선물을 준비하는 과정을 떠올리는 큰 상상력이 필요하다. 과거의 인색함은 그동안 작게 뜬 눈과 부족한 상상력의 탓으로 하고 앞으로는 주는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일단, 선물을 받아야 하는데? 자, 누가 먼저 주는 기쁨을 누릴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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