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별들
도시의 삶은 분주하다.
제시간에 맞춰 지나다니는 사람들로 도로와 거리는 언제나 만원이다. 출퇴근 무렵의 만원 지하철과 버스를 타 본 사람은 서울의 인구밀도를 실감할 수 있다. 서로의 뒤통수를 마주할 만큼 다닥다닥 붙어서 움직이는 모습은 지방에서 서울에 와서 마주한 지하철의 낯선 풍경이었다.
2호선을 타고 출근하던 대학 시절의 인턴생활이 기억난다. 사람들의 출근시간은 고만고만했다. 모두 필사적으로 서로의 등을 밀며 지하철에 올랐다. 온몸이 밀착되어 손잡이를 잡지 않고 사람 사이에 끼여서 내리기 일쑤였다. 특히 지옥철이라 불리는 2호선은 문이 열릴 때마다 헬게이트 안으로 입장하는 듯했다. 모두 비슷한 옷차림에 비슷한 처지의 직장인들이 콩나물시루에 갇힌 것처럼 무표정으로 들어선 곳. 타고 내리는 것부터 사투를 벌여야 하는 평일 아침은 출근하자마자 퇴근하고 싶어 진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공기가 다르다. 하루 종일 분주했던 일상을 반영하듯 피곤함이 배어있는 땀 냄새와 저녁 회식을 마친 사람들의 고기 냄새, 얼큰한 술 냄새 등이 섞여 있다. 어떤 날은 운이 좋아 자리에 앉은 날이면 구두를 살짝 벗고 고개를 기대어 쉴 수 있었다. 한강 다리를 건널 즈음에는 ‘이제 하루가 지났구나’ 하고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가끔씩 지방에서 친구들이 놀러 오면 덕분에 나도 서울 구경을 한다.
요즘 드라마나 예능에서 자주 나오는 핫플레이스를 찾아가 줄도 서고 인증사진을 찍는다. ‘처음엔 나도 그랬지.’ 서울에 온 첫 해에는 주말이 멀다 하고 삼삼오오 친구들과 놀이공원, 한강, 남산 타워에 발도장 찍고 다녔다. 서울에 살아온 지 이제 햇수로 십 년이 넘었다. 자주 다니는 3호선과 6호선 라인은 거의 꿰고 있고 복잡한 명동 거리나 강남역, 종로의 골목들도 곧잘 찾아다닌다. 미디어에 알려진 랜드마크가 아니라도 하루 동안 걸어서 다닐만한 코스도 제법 알고 있다. 한 번쯤 방문했던 음식점과 카페가 있는 나만의 지도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남의 집처럼 낯설게 보이던 도시가 이제는 어디를 가나 하나쯤 추억이 있는 동네가 되었다.
한 번은 며칠 동안 서울을 여행한 친구가 문득 이런 질문을 던졌다. “왜 여기서 살아? 단 며칠이라도 서울에서 사는 거 피곤할 거 같아. 이렇게 바쁘고 복잡한데… 난 못 살겠다”
예상치 못한 얘기에 나의 기억을 더듬어봤다. 난 왜 이곳에서 살게 되었을까.
어릴 때부터 큰 도시로 나가서 살고 싶다는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듯이 더 넓은 곳에서 기회와 가능성을 찾고 싶었다. 꿈을 이루는 가장 빠른 방법은 대학을 가는 것이었고 대학 입학과 함께 스무 살의 독립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에서 내가 할 일과 만나는 사람, 행동반경, 라이프 스타일을 모두 내가 선택하며 살고 있다.
독립은 '물리적' 공간의 분리에서 '경제 자립'과 '정신의 홀로서기'의 과정으로 이어졌다. 혼자 지내면서 희로애락을 홀로 온전히 느꼈다. 20대에는 수 십장의 이력서를 쓰고 떨어졌고, 연애를 시작하고 헤어지는 일도 반복되었다.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누구나 겪는 일이란 걸 알지만 매번 아픈 일이기도 했다. 30대인 지금은 저녁에 집에 와 피곤한 몸을 이끌고 꾸역꾸역 저녁을 차려먹은 후 앉아 있으면 이런 생각도 떠오른다. '내 몸 하나 먹이고 간수하기도 피곤한데 가족까지 챙기며 사느라 엄마 아빠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 혼자 있는 시간은 자연스레 나와 주변의 사건을 이해하는 기회가 된다. '현재의 나'를 이해하고 주어진 삶에 충실하고 싶을 뿐이다. 혼자 있을 때 비로소 나만의 서사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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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가장 활기차 보일 때는 출퇴근 시간이다. 한 시간 사이에 버스, 지하철, 도로에서 우르르 걸어 나오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행선지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긴다. 한 공간에 있지만 서로를 모르는 사람들이 한데 섞여 대로변에 서서 횡단보도의 신호등을 바라본다. 빨간불 파란불로 바뀔 때마다 차들이 지나가고 사람들이 길을 건넌다. 잠시 생각에 빠져 있다가도 옆 사람의 움직임에 나도 재빨리 길을 찾는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열정에 끌리게 되어있어. 자신이 잊은 걸 상기시켜주니까.”
영화 라라랜드에서, 꿈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는 남자 주인공에게 미아가 말해주는 대사이다.
사람 많고 바쁜 도시에서 가끔 타인의 스텝에 맞춰 나도 덩달아 빨리 걸어갈 때가 있다. 거리에서, 직장에서, 퇴근길에서 스치는 사람들의 열기에 힘을 얻는다. 서로 자극을 받으며 하루를 버틸 에너지를 얻는다. 바쁘게 돌아가는 신호등 불빛처럼 기회와 좌절이 공존하는 삶의 터전. 오늘 하루도 누군가에게는 멈춤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출발이었을 시간이었을 것이다.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별들의 도시, 라라랜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별이라는 것을 알까. 이곳에서 매일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성실한 하루를, 서로 함께,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