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에는, 하기 싫은 일도 포함된다
한국무용을 시작한 지 5년이 지났을 즈음 취미반에서 심화반으로 넘어갔다. 박자와 순서를 익히는 것을 넘어 제대로 해보고 싶어 다음으로 나가 보기로 한 것이다. 한 단계를 지나가니 계단식으로 해야 할 수준이 껑충 뛰었다. 매 수업에서 기본으로 추는 음악은 무려 20분. 엔딩이 가까워지면 다리가 떨리고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그래, 나 이거 좋아서 시작했지.’ 좋아서 시작한 일도 하다 보면 힘들다. 얼굴이 땀으로 젖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으니 생각이 많아진다. 즐겁고 재밌어서 시작했더라도 실력을 향상하려면 어쩔 수 없이 인내의 시간을 지나야 하는 것은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춤추면서 중심을 잘 잡으려면 코어가 단단해야 해요.
수업시간 외에 매일 윗몸일으키기 최소 20개씩, 숙제예요”
심화반을 시작하고, 체력 운동이라는 과제가 추가되었다.
무용을 하는데 윗몸일으키기라니…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당황스러웠다. 지금까지 헬스장에서 러닝과 사이클을 했어도 근력운동을 따로 해본 적은 없었다. 춤추는 자세는 조금씩 교정이 되어가는데, 코어와 다리 힘이 부족해서 몸의 컨트롤이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선생님은 매일 윗몸일으키기로 근육을 단련하는 과제가 추가로 내주었다.
매일 최소 20개의 윗몸일으키기는 그리 어렵지는 않았지만 일상에서 습관으로 자리 잡기까지 약 삼 개월이 걸렸다. 첫째 날 ‘이 정도쯤이야’하고 호기롭게 시작했다면 어떤 날은 피곤해서, 어떤 날은 잊어버려서 이런저런 이유로 생략하기 일쑤였다. 춤이 재밌어서 하는 거라면, 윗몸일으키기는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이었으니 쉽게 몸에 붙지 않았다.
"일 년 동안 숙제를 잘해서 무대에서의 자유, 내가 부르고 싶은 음들이 내 목에서 튀어나오고, 내가 하고 싶은 동작들이 나오고. 이 자유를 위해서 일 년간 숙제를 하는 거죠."
예전에 티브이에서 보았던 박진영 님의 말.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정말 하기 싫은 걸 해 내는 게 자기 관리의 핵심이다. 춤이 됐든, 글쓰기가 됐든, 뭐가 됐든 한 분야에 능숙해지려면 울퉁불퉁한 것을 매끄럽게 다듬는 고된 단련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작심삼일이란 말처럼 매일같이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게 결코 쉽지가 않다. 그러나 꾸준함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무대에서 멋진 춤을 소화하는 사람들도 우리가 보는 것은 3분에 불과하지만 그 순간을 위해 하루, 한 달, 일 년의 노력했을 것이다. 수천번의 붓질이 담긴 그림 속에, 손끝까지 연기하는 무용수의 몸짓에, 정교한 음을 소화하는 목소리에 그 사람이 쏟아부은 노력이 압축되어 있어 강렬한 감동을 준다. 한 분야에 정통한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루한 훈련을 ‘매일’을 쌓아온 사람들이다. 그 꾸준함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존경 어린 박수를 보낼 수 있다.
무용 시간에도 거울 앞에 서면 지난 한 주의 내가 보인다. 영상을 모니터링했는지, 연습을 충분히 했는지, 자세는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매번 윗몸일으키기 숙제를 할 때마다 나의 작은 승리를 축하하며,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모습이 되기 위해 꼬박꼬박 해내고 있는 중이다. 하루 20개에서 시작해서 이제 40개로 늘었으니 포기하지만 않으면 어쨌든 나아진다는 걸 안다. 우리의 삶도 하나의 작품이라면, 평소에 차곡차곡 쌓아온 노력들이 모여 빛을 발하는 순간이 찾아올 수 있겠지.
내가 잘하고 싶은 일에는 지금처럼 하기 싫은 일도 포함되어 있다. 그 산을 넘는 방법은 다른 게 없다.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하는 것. 시간의 벽돌을 쌓다 보면 나중엔 더 큰 것이 완성될 테니까. 그것이 자기 관리이고,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