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어도 더운 날에 춤을 추고 있으니 몸에서 나오는 열기까지 더해져 공기가 금방 뜨끈해져 온다. 더군다나 몇 겹이나 되는 속치마에 긴 기장의 한복 치마를 입고 있어 사우나에 온 것만 같다. 그렇다고 금방 땀이 식으면 부상의 위험이 있어서 에어컨은 제습으로만 켜 두었다.
처음에 20분 동안 이어지는 기본동작을 끝내고 나면 헉헉댈 만큼 숨이 차오른다.
그렇다고 오래 쉬지 않고 다음 루틴으로 넘어가는데, 그 잠깐 사이에 냉장고에 있는 차가운 이온음료를 꺼내 벌컥벌컥 마시면서 1,2분의 짧은 휴식으로 얼굴에 땀만 얼른 닦아낸다. 이번에는 연습실의 끝과 끝을 오가며 여러 가지 발 동작을 반복하는 시간. 잘게 쪼개서 걷다가, 투 스텝으로 뛰었다가, 한 발씩 들고 버티기도 하면서 기본이 되는 동작을 몸이 기억하도록 반복한다.
한국무용에서 자주 나오는 동작은 바로 턴. 한 발씩 앞으로 내딛으며 획-하고 빠르게 돌아야 한다. 이걸 연습하기 위해 장구 장단에 맞춰 천천히 4번, 빠르게 4번을 반복하는 거다. 메트로놈처럼 정해진 박자에 따라 돌고, 돌고, 도는데 유독 오늘은 평소보다 어지러워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버렸다. 물을 너무 많이 마셨을까. 아니면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런가. 다른 날에도 어지럽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나도 놀라서 머릿속이 하얘져버렸다.
‘이게 내 체력의 한계인가?’ 평소에 뭐든지 성실, 열심히 하면 된다! 는 신조를 가진 사람인데, 아무리 의지가 있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한 순간이었다. 어지러움 때문에 쓰러질 거 같은 공포가 들었기 때문이다. 삼십 대의 나이, 체력을 생각해서 몸을 사려야 하는 게 않을까, 지금 내가 하는 게 무리는 아닐까 싶은 생각에 온종일 마음이 어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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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숫자에 불과해'라는 말도 있고, '그 나이에'라는 말도 있다. 하나는 너무 이상적이고, 하나는 너무 현실적이다. 이상과 현실, 그 사이에서 고민이 시작된다. 이십 대를 지난 이후부터 체력은 갈수록 떨어지니 그 차이에 비례해 젊음의 패기와 담대함이 줄어드는 것 같다.
이전에는 호기심이 많아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눈을 반짝이곤 했다. 이것저것 해 볼 수 있는 시간적, 체력적 여유도 있을 때였다. 그런데 내가 가진 에너지가 낮아지니 새로운 선택이 한층 조심스러워지는 게 사실이다. 직접 해보면서 부딪히기 전에 머리로 최대한 계산을 해 보는 것이다. 나름 생각의 저울의 재며 이리저리 따지다 보면, 나중에는 ‘이걸 해서 뭐 하나...’ 하는 결론에 다다르기 쉽다.
예전부터 운동을 ‘심신단련’이라고 하는 게 이해가 되었다. 몸과 마음은 함께 움직이는 것, 몸의 근육을 길르면 정신도 단단해진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 ‘그래, 해보자!’ 하고 주먹을 불끈 쥐려면 힘이 필요하다. 이제는 영양제도 챙겨 먹고, 일상적으로 꾸준히 운동을 하면서 근력을 키워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오늘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낀 게 슬프면서도 한편으론 다행이다 싶었다. 이전보다 열심히 움직여야 할 때임을 알았으니까.
자신만의 운동 루틴을 가진 대표적 인물 하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떠오른다. 매일 소설을 쓰기 위해 달리기를 하고, 풀 마라톤도 나가고, 달리기에 대한 에세이도 쓴다. 요점은 '달리기를 하자'가 아니라 평생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육체를 단련을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부분일 것이다.
예전보다 자주 피곤함을 느끼는 나, 피곤하다고 그냥 드러눕지 말고 몸무게 1킬로를 줄일 때까지 조금 더 자주 땀을 흘려 보기로 했다. 인생은 장거리다. 장거리에서 지치지 않으려면 꾸준하게 할 수 있는 '반려 운동' 하나쯤은 필요하다. 그렇다면 혼자서 언제든 할 수 있고, 음악과 함께하는 무용이라면 그래도 웃으면서 땀 흘릴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힘들어도 익숙해지고 나면 연습실을 뛰어다닐 수 있지 않을까. 무용을 하며 기대하는 것은 어떤 큰 무대에 서는 기회보다는 앞으로 40대, 50대에도 건강함을 유지하며 삶을 즐기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