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정 Mar 10. 2024

과정이 즐거워서

예술은 순수하게 몰입하는 경험 그 자체이다

춤을 추면 언제가 가장 즐거워요?


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어떤 매력이 있어 오랫동안 춤을 출 수 있는 걸까. 한껏 화려한 분장을 하고 무대에서 가족과 지인을 초대해 공연을 올리는 순간도 잊을 수 없지만, 사실 진짜 매력은 지극히 평범한 순간에 있었다. 한 시간이 지나도록 음악과 춤에 빠져 있을 때, 연습복이 땀으로 축축해질 정도로 몸을 움직이는 시간이 좋은 것이다.


예술이 화려한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연습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춤은 몇 백번이고 같은 동작을 반복하면서 자세를 교정하고, 음악에 호흡을 맞추는 과정이 대부분이다. 번쩍번쩍한 조명 아래 춤을 추는 시간은 그에 비하면 찰나와 같지 않을까.


전시회에서 보았던 박서보 작가님 '묘법'


예전에 단색화의 거장이신 박서보 작가님의 전시회에서 본 영상이 기억에 남았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하는 일은 아주 단순했다. 캔버스에 겹겹이 한지를 쌓아서 고랑이 생길 때까지 긁어내면서 '묘법'이라는 특유의 작품을 만드셨다. 벽면을 한가득 채우는 캔버스에 수십 개의 고랑을 만들려면 얼마 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한 작품에만 반듯한 고랑이 수십 개이니 그의 작품은 그의 시간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림은 수양을 위한 도구'라고 생각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일정한 시간에 똑같이 반복되는 작업을 하는 일이란 보통 성실해서는 하기 어려운 일이다. 예술이란 부지런하고 성실함을 통해 결과물을 완성하는 과정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주변에 물어보면 춤뿐만 아니라 그림을 그리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취미 활동을 많이들 하고 있다.

회사 밖에서는 다들 아마추어 예술가이다. 프로에 비해 실력은 모자라지만 그 시간만큼은 무아지경으로 몰입할 것이다. 욕심 없이 순수하게 몰입할 수 있는 시간, 그 자체가 힐링이 된다. 그렇기에 취미생활은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욕심 대신 그 시간을 즐길 수 있는 틈을 만들어준다. 여기에 더해 가끔 찍은 동영상을 모니터링하며 아주 조금이나마 발전한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 그 작은 차이가 보일 때의 희열은 덤으로 주어진다.



--


평일 저녁,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별 탈 없는 하루를 마치고 스튜디오에서 한 시간 반을 몰두해서 땀 흘리는 시간이 즐거웠다. 그뿐이다.


그렇게 고요하고 평온한 순간이 많았으면 한다. 나에게 행복은 평온함과 동의어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춰볼 때, 평온하려면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결과적으로 '이걸로 무엇을 얻을 수 있나?'를 따지기 시작하면 막상 시작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특히나 생산성과 효율성을 따지자면 돈 버는 일 외에는 할 게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금전이나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무형의 가치는 결과보다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성실하고 단순함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춤을 통해 배우고 있는 것 같다.


어느 책에선가 '장인이란 길 위에 있는 사람이다'라는 표현을 본 적이 있다. 만약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면 결과보다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뜻. 무리하거나 욕심부리지 않고 차근차근 과정을 밟아가다보면 어떤 결실이든 맺을 수 있을 것이다. 고리타분하지만 인생에 지름길이란 없는 게 맞는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앉아있는 몸, 움직이는 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