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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정 Apr 28. 2024

단련, 되고 싶은 나로 태어나는 시간

손과 발이 따로 움직이는 장구춤 연습

고비를 잘 넘겨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무용에 난도가 있다면 '도구'가 들어간 춤이 어렵다.

맨손으로 춤을 출 때보다 신경써야할 많아 머리가 복잡해진다. 흰 천을 쓰는 살풀이와 양손에 부채를 드는 부채춤처럼 양손에 도구를 들고 있으면 혹시나 실수라도 하면 떨어뜨릴 수도 있어 긴장이 되기도 한다. 북, 소고, 장구처럼 악기가 들어간 춤은 장단을 외우는 것까지 추가된다. 


지금까지 배운 것 중에 가장 어려운 게 무엇이냐고 물으면 단연 장구춤이다.

허리에 장구를 매고 무대를 이러저리 옮겨다니며 특유의 리듬을 만드는 장구춤은 화려한 춤사위가 특징이다. 장구도 흥겹고 보기엔 참 재밌는데 직접 하는 입장에서는 다른 춤에 비해 두어배는 어렵고 또 어려웠다.


학교에서 피아노는 자주 쳐보긴 했어도, 장구를 가까이 본 적은 있었던가. 그래서 실제 장구 소리가 꽤나 크게 울려서 놀랐다. 허리가 잘록한 나무통이 울리면서 시원한 소리가 났고, 소리가 클수록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장구춤 배우기의 첫 번째는 장구 가락 익히기. 먼저 바닥에 앉아서 장단 연습부터 시작한다. 장구 가죽은 양쪽이 다른데 북편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고, 채편은 팔을 옆으로 벌려서 친다. 그러니까 양쪽을 같이 칠 경우, 왼손은 위로 올리고 오른손은 옆으로 보내야 한다. 왼손과 오른손을 각각 다르게 하라니... 어디선가 보았던 치매예방을 위한 뇌운동 같기도 하다.


장단이 어느 정도 익은 다음에는 끈으로 장구를 허리에 맨다.

왼발부터 스텝을 시작해 앞으로 갔다 뒤로 오는 것부터 연습하는데, 앉아서 잘 치던 것도 걸으면서 하려니 갑자기 로보트처럼 버벅이게 된다. 마치 상체와 하체가 분리된 것처럼 어색하기만 하다.


춤을 배울 때 이전과 다른 동작을 할 때면 몸이 버벅이곤 한다. 처음 해 보는 동작이니 당연한데, 악기춤이 더 어려운 이유는 춤과 악기라는 두 가지를 한번에 하기 때문이다. 평소 장구를 칠 수 있었다면 수월했을텐데 장구가 익숙하지 않으니 팔도 헷갈리고, 발은 더 모르겠다. 그래서 장구를 매고 난 다음에 걸음마를 연습하듯 앞으로 갔다가 뒤로 오기를 반복하며 손발이 따로 움직이는 연습부터 시킨다. 이때 찾아오는 고비. 걸음걸이부터 틀리니 우선 막막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내가 택한 방법 엄청 느리게 손과 발을 맞추고, 그 다음에 조금씩 속도를 올리기. 뽀족한 지름길은 없었고,  장구도 치면서 스텝도 해야 하니까 다른 춤보다 2배의 시간투자가 필요할 뿐이었다.


한창 장구 연습에 빠져있을 때,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피아니스트의 일상을 보았다. 무대에 서지 않는 요일엔 하루의 반나절을 꼬박 연습을 하며 보냈다. 전문 연주자이니 모르는 곡보다 아는 곡이 더 많을 터. 정교한 연습을 위해 아마도 같은 곡을 반복하고 있을 것이다. 몸이란 계속 움직이지 않으면 감을 잃기에 매일 일정 시간을 반복할 수 밖에 없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수준을 유지하지 위해서라도 매일 움직여야 한다. 프로라면 일정한 실력을 유지해야 하고, 그렇기에 누구보다 지루한 연습을 반복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만났던 한 사진작가의 말도 생각났다. '어떻게 하면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나요?'란 질문에 그는 '많이 찍으면 된다'라고 했다. 일반인들은 카메라로 두어 번 찍고 지나가지만, 사진작가는 백장 이백장을 찍고 그중에서 한 두 개를 고른다는 것이다. 물론 사진기를 다루는 방법과 이론에 대한 지식은 당연하고, 기본적으로 많이 찍어야 더 나아지고 잘하게 된다는 뜻일 것이다.


연습, 반복, 땀... 어떤 분야든 기본은 다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우리의 몸은 하나에 익숙해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서 내 몸에 체화하려면 단련하는 수밖에 없다. 악기를 익히거나 운동과 같이 신체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습관을 만들려고 해도 한 달은 이어서 해야 몸이 기억한다. 그만큼 몸으로 하는 일은 정직하기에, 실력을 늘리기 위해서는 얼마나 반복해 보았는가가 중요했다.


오랜만에 장구라는 악기를 배우면서 다시금 이런 기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춤을 잘 추는 사람이 되고 싶으면 춤을 추고,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 되려면 자주 써야 한다. 그렇게 원하는 모습이 될 수 있다. 꾸준한 연습으로 단단한 자신을 만드는 일이 '단련'이라면, 단련은 되고 싶은 나로 태어나는 시간일 것이다.


나는 얼마큼 나를 단련하면서 살고 있을까.

'산다는 것은 서서히 태어나는 것이다.' 생텍쥐베리가 말한 것처럼 내가 되고 싶은 모습에 시간을 투자하면서 살아야 한다. 다만 긴 시간을 연습하려면 그 일을 좋아해야 하는데, 진짜 좋아한다는 건 힘든 과정도 견딜 수 있을 정도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재능이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차리는 민감함일 수도 있겠다.


삶을 통해 다시 태어나기 위해 나는 무엇에 시간을 쏟고 있나. 그리고 앞으로 무엇에 더 집중하며 시간을 보내면 좋을까. 춤을 추면서 궁극적으로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의 모습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재밌기도 하면서 좌절감을 안겨주는 애증의 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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