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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듯, 미술관

아름다운 것을 자주 눈에 담기

by 화정

새해 첫 미술관 산책


자주는 아니지만 분기에 한번 주기로 전시를 보러 간다. 2025년 1월, 새해 첫 전시를 보러 예술의 전당으로 갔다. 1층부터 대기줄이 길었는데,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반 고흐'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붐비는 인파를 지나 내가 도착한 곳은 3층, '미셸 앙리'의 전시장이다.


미셸 앙리는 '위대한 컬러리스트'라는 별명을 가진 프랑스 작가이다. 미셀 앙리의 대표 작품은 화병이 있는 정물화. 그가 살았던 유럽의 일상 풍경을 배경으로 화려하고 탐스러운 꽃다발이 중앙에 놓인 작품이 대표적이다. 꽃 주변에는 체리, 배와 같은 과일이 그려져 있어 달콤한 향이 풍기는 듯한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


꽃이란 아름다움의 대명사이다. 주요 소재가 꽃인 만큼 그림은 어떤 복잡한 해석이 필요하지 않았다. 색깔은 화사했고 꽃이 있는 풍경은 황홀했다. 사방에 꽃 그림이 가득한 전시장에 있으니 2025년의 시작을 축하하는 듯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미셸 앙리가 '꽃'을 주요 소재로 한 이유는 간단했다. 꽃이 가장 아름다운 소재였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는 사람도 그가 재현한 아름다움을 보며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좋아하고 선망하는 것을 자주 바라보는 것은, 분명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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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그림과 꽃다발은 전부 상상 속의 것입니다.

절대 크로키를 하지 않아요. 제 눈이 메모를 합니다."


화폭에 담긴 그림은 실제로 놓고 그린 것이 아니라고 했다. 언젠가 작가가 보았던 머릿속 장면들이 화폭에 담겼다. '눈이 메모를 한다'는 말처럼, 기억은 어떤 장면을 사진처럼 포착해 저장해 둔다. 멋지고 황홀한 풍경 앞에 서면 눈을 떼지 못할 때가 있는데, 그렇게 사진처럼 오래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최대한 잊지 않고 눈에 담기 위해서.


주기적으로 미술관을 가는 이유도 비슷하다. 일상의 공간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풍경을 만나러 간다. 어딘가로 여행을 가서 색다른 풍경과 장엄한 자연경관을 보는 게 가장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미술관에 가는 것으로 충족되곤 했다. 내게 미술관은 인간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을 만나는 공간이다.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텐데, 미술사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는 나는 단순하게 먼저 눈에 보이는 대로 느낀다. 색감이 주는 다채로움을 보는 직관적인 즐거움이 첫 번째다. 그다음에 큐레이션의 설명(전문지식)에 따라 감상한다. 이때 작가가 구현하려고 하는 삶과 예술에 대한 철학을 만날 수 있는데, 부단한 노력을 통해 하나씩 작품을 완성해 가는 과정 또한 인간만이 가진 아름다움이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내가 자주 보는 것이 내 안에 쌓이고, 나중엔 밖으로 흘러나온다. 먹는 음식을 가리고, 생각을 조심하고, 만나는 사람을 신경 쓰는 것처럼 무엇을 보느냐도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미술관은 내게 영감과 아이디어를 주는 공간인 셈. 편하게 누워서 숏폼을 보는 것처럼 즉각적이고 간편한 즐거움은 없지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정신을 고양할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게 해 준다. '나도 저런 도전을 해보면 어떨까', '이런 걸 시도해 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들이 떠오른다. 그래서 잘 모르지만 공부하듯 전시장을 다니고 있다. 산책하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눈은 메모한다. 그러니 아름다움을 자주 눈에 담자. 내일의 나를 위해, 오늘의 나에게 좋은 경험을 선물해 주자. 내 안에 좋은 것을 차곡차곡 채워서 시간이 흘러도 정체되지 않고, 더 넓은 시야를 가진 사람으로 나이 들어가기를. 그리고 그것이 내 주변으로 퍼져나갈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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