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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노트, 현실과 이상을 담다

불가능한 꿈을 꾸는 리얼리스트

by 화정

이른 아침, 출근 후 내 책상 위에는 2개의 노트가 있다. 하나는 업무 사항을 적는 노트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적인 일정을 적는 노트이다. 아침에 휘리릭 그날그날 할 일을 단어 위주로 기록으로 남기려고 한다. 자고 일어나 가장 맑은 정신일 때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수집하는 용도이기도 하다.


노트, 혹은 기록에 대한 중요성은 여러 강연을 통해 들어온지라 일부러 습관을 들이려고 한다. 휴대폰 메모도 가능하지만 펜을 들고 쓸 때 손으로 움직이면서 뇌에 각인되는 효과가 있다고 해서 수기로 작성하는 노트를 준비했다. 대신 자세하게 쓰기보다는 최대한 간단하게, 순간 떠오르는 것들을 잊지 않을 정도로만 시간을 할애하는 편이다.


스프링 노트에 검정펜까지 한 세트인 개인노트는 손바닥만 한 사이즈로 출퇴근용 가방 한편에 넣어 둔다. 그래서 어디서나, 이동 중이라도 바로 꺼내서 쓸 수 있다. 이렇게 해 두면 저녁에 시간을 내어 따로 일기를 쓰지 않아도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을 담아두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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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내가 해결해야 하는 업무노트, 그리고 한 개인으로서 순수하게 하고 싶은 아이디어가 담긴 꿈노트. 나란히 놓인 2개의 노트에는 나의 '현실'과 '이상'이 적나라하게 담겨있다. 각각의 노트를 쓰면서 삶의 균형을 고민해 본다. 해야 할 일에 충실하되 상상력을 잃지 않으려는 작은 노력이기도 하다.


직업인으로서 내가 해야 할 업무는 구체적이고 명확하다. 월간, 주간, 일간 단위로 쪼개서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일정을 조율하면서 업무를 처리하는 일은 회사원에게 흔한 루틴이다. (...그에 반해 개인으로서의 재미와 의미를 위해 하는 일은 업무를 할 때만큼 촘촘하게 구성하고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 성과를 고려했을 때에도 당장 수입이 생기는 생업을 우선시하는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인간은 당장 대가가 없어도 재밌고, 창조적인 일에 관심이 가게 마련이다. 일을 하고 돈을 버는 일은 우리에게 부여된 책무이지만 예술과 창조, 놀이 활동은 본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취미 연극이나 밴드, 글쓰기, 미술 모임에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모여 활동하고 있듯이, 먹고사는 일이 어느 정도 해결되면 순수하게 재미와 의미를 주는 일에 관심이 간다.


일의 우선순위를 따진다면 현실과 꿈은 무엇이 우선할까. 시급성(Urgent)과 중요성(Important)을 기준으로 나눈 사분면에서 '현실'은 급하고 중요한 일(1번)에 속한다. 오늘 일을 하지 않으면 수입이 없을 테고 나를 먹여살리는 생계는 중요하니까. 이에 반해 꿈, 혹은 이상(理想)은 어디에 속할까. 당장 해결되지 않아도 되는 '급하지 않고 중요하지도 않은 일(4번)'일까. 혹은 언젠가 이루고 싶은,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2번)'일까. 이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또 상황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꿈 또한 시간이 갈수록 '급하고 중요한 일(1번)'로 수렴하고 있다고 답할 것이다. 마냥 청춘일 것 같던 때가 지나고 나니, 해가 갈수록 이상과 꿈을 시도해 볼 절대적 시간이 줄어드고 있다고 느껴서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그 시간을 최대한 풍요롭게 보내려면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꿈 하나 품고 있어야지. 경험이 쌓일수록 '다 해본 것들이야'라며 모든 일에 냉소적이 되기보다, 호기심을 잃지 않고 경험의 깊이를 더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불가능한 꿈을 꾸는 리얼리스트'를 말했던 체 게바라의 문장을 오랫동안 기억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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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버킷리스트>라는 제목의 영화를 보았다.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이라는 부제와 같이,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시도한다는 내용이다. 당시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그리고 가보고 싶은 곳까지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는 게 유행이기도 했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스카이다이빙 하기, 문신하기, 이집트의 피라미드 보기 등 단기간에 할 수 있는 일도 있지만,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처럼 장기 프로젝트로 있을 것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저 멀리에 있는 꿈을 상기시켜 주는 나의 기록이 될 것이다.


꿈과 이상은 추상적인 단어이다. 추상적인 단어가 한 사람의 개인과 만났을 때 구체적인 단어로 바뀔 수 있다. 나에겐 노트를 쓰는 작업이 꿈을 구체화하는 방법이다. 노트에는 순수한 목적으로 내가 취미로 하는 일들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적힌다. 예를 들어 글을 꾸준히 쓰기 위해 브런치 작가가 되자고 썼고, 브런지 작가가 된 후에는 어떤 주제로 글을 발행할지 주제를 고민하고, 또 이번주에 쓰고 싶은 에세이의 제목을 기록해 둔다. 낙서같아 보이지만 두서없이 단어들이 적혀있는 페이지들 속에 글쓰기에 대한 나의 호기심, 잘 쓰고 싶은 꿈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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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에 걸쳐하고 싶은 일, 직업적 소명은 뭘까.'

'구체적으로 어떻게 세상에 기여할 수 있을까'


조금은 막연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어쩌면 사는 동안 계속 질문하고 답을 수정하며 길을 찾아야 하는 인생 질문이기에 그 과정과 시행착오를 기록하고자 소위 말하는 꿈 노트를 쓰기 시작했다. 노트에 담긴 내용은 때에 따라 바뀌기도 하지만 스스로가 명확해질 때까지 이것저것 적어보기로 한 것이다.

노트 쓰기의 장점은 나의 취향을 분명하게 알게 된다는 것. 나의 호불호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여름 휴가지부터 취미 활동, 주말에 시간을 보내는 법 등 내가 좋아하는 일과 중요한 가치를 기준으로 작성하다 보면 보다 조금씩 나의 기준이 명확해진다. 자신을 아는 데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그간의 기록을 통해 직업인으로서 컨설턴트로 일하는 나, 그리고 여가시간엔 글을 쓰고 무용을 하는 자유 인간으로서의 나를 쌓아가고 있다. 모두 오랜 시간을 들여 잘하고 싶은 일이고, 글쓰기처럼 업무와 취미의 경계 없이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있기도 하다. 이 모든 활동을 묶을 수 있는 것은 '건강'이라는 가치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몸과 마음을 단련하며 나만의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가고 있다.



나의 원칙ㅣ 글은 생각을 명확하게 해 준다. 기록을 꾸준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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