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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정 May 16. 2021

빈 페이지를 글로 채우는 일

무궁무진한 막막함을 마주하는 용기

빈 페이지를 볼 때마다 신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조금은 알게 된다.
-시드니 셀런 Sidney Sheldon




모든 글은 단 하나의 문장에서 시작한다. 



글을 쓰려고 빈 페이지를 열어두고 보면 아득한 막막함이 느껴진다. 

제목만 덩그러니 쓰여 있는 모니터에 흰 백지만 눈에 들어온다. 나는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펜을 들었을까. 


보통 나의 글쓰기는 한 줄의 제목에서 시작된다. 

머릿속에 두루뭉술한 생각 뭉치들이 떠다니다가 문득 떠오른 제목을 핸드폰에 저장해 둔다. 하고 싶었던 키워드를 잡으면 그것과 연관된 에피소드가 생각나고, 우연히 읽은 기사나 책에서 본 글귀와 연관 지어 보기도 한다.  분명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시작했는데 이것을 글로 바꾸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나름 마음에 드는 완결을 지을 때까지 얼마나 씨름하는지 모른다.


요리를 할 때 재료를 준비해 놓고 상황에 따라 양념을 추가하고 불 조절을 하는 것처럼, 하고 싶은 주제와 에피소드만 머릿속으로 그려놓고 자세한 부분은 쓰면서 다듬어 나간다. 그러다 보면 생각지도 못하게 자세하게 써지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휙-하고 간단히 넘겨지는 부분이 있다. 한 번 써두고도 다음날 읽어보면 별로인 문장은 그냥 통째로 지워버리기도 한다. 술술 쓰는 문장가가 아니기에 퇴고를 거듭하며 완성된 한 편은 어설프지만 나의 생각으로 설계한 글 집이다. 


글 안에서 누구나 세계를 짓는다. 몇 안 되는 활자를 조합해서 수천, 수만 가지의 다른 상상을 펼칠 수 있는 언어의 무궁무진함. 어릴 때부터 작가들이 만든 소설의 세계에 흠뻑 빠져있는 게 좋았는데 읽는 것만큼이나 쓰는 재미도 있다. 브런치에서 나는 다른 사람에 던진 질문이 아니라, 내가 세상에 가진 질문에 대해 글로 쓴다. 빈 페이지 위에 내가 삶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펼쳐놓으려 한다. 하나의 글이 발행될 때마다 생각의 얼개가 조금씩 명확해진다.


시작은 아주 짧은 하나의 문장이었다. 무엇이든 내가 쓰는 대로 채워질 공간이지만 내가 키보드를 두드리기 전 까지는 백지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의 문장에서 한 편의 글이 펼쳐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미미하더라도 시작하고 행동하는 '용기'를 떠올린다.




 무궁무진한 막막함을 마주하기


빈 페이지 앞에서 무궁무진한 막막함을 느낀다. '무궁무진함'은 나만의 생각의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의미이고, '막막함'이란 내 생각을 글로서 정연하게 표현하기까지 고민과 퇴고를 거쳐아 한다는 두려움의 의미이다. 백지를 마주하는 일은 두려움과 가능성이라는 양가적 감정을 느끼게 한다. 


참 인생 같다. 매일 백지처럼 주어진 하루를 채워나가는 일이. 

어떤 날은 두려움이, 또 어떤 날은 설렘이 우세하지만 대게는 두 가지 감정이 공존한다. 이렇게 매일 우리는 기대와 두려움을 마주할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닐까. 


쓰기에서 삶의 기술을 배운다. 아무리 긴 장편도 단 하나의 문장에서 시작된다는 걸 생각하면, 오늘 내가 매달려야 하는 일은 평범한 일상이다. 어떤 삶을 살아야겠다고 스스로 선언한 단 하나의 문장을 잊지 않으려 한다. 그럴 때 내가 쓴 글은 나를 북돋우는 용기를 주고, 내 세상을 이해하는 힌트가 된다. 


쓰고 싶은 마음을 북돋우는 공간과 커피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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