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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정 Jun 16. 2021

글을 쓰면 삶을 두 번 맛보게 된다

당신이 글을 쓴다면 당신은 삶을 두 번 맛보게 될 것입니다. 현재와 이 현재에 대해 글을 쓰면서 회고하게 될 때 두 번 말입니다.
--- Anais Nin 아나이스 닌


언젠가부터 여행을 가서 노트를 쓰기 시작했다. 

특히 해외에서는 자투리 시간이 많다. 딱히 할 일이 없는 여유 가운데 일정 정리도 하고, 기록도 남길 겸 해서 빈 노트를 하나씩 챙겨 다녔다. 장거리 비행기에서는 영화를 보다가 기억하고 싶은 문구가 있으면 써 두기도 한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서 그날의 방문지와 감상에 대해 적는다. 30분 정도의 간단한 작업이지만 나중에 보면 놀랄 정도로 자세한 기록이 남는다. 


여행지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무장 해제된다. 

낯선 장소가 주는 해방감에 그 기간만큼은 행동과 마음 상태가 자유롭다. 써야 할 글이 아니라 쓰고 싶은 글을 쓰다 보면 편하게 글이 써진다. 

몇 년 전 일본에 갔을 때다. 도쿄타워가 있는 아자부에 숙소를 잡고 근처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근방에 회사가 많은지 실내에는 세미 정장의 비즈니스맨들이 조용히 업무를 보고 있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분위기에서 나도 노트북 대신 종이 노트를 꺼냈다. 일행과 떨어져 혼자 시간을 있는 한 시간, 노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딱히 쓰려던 내용도 없고, 써야 할 의무도 없었다. 오랜만에 일본에 온 소감을 적었고, 처음 일본에 왔던 십 년 전과 무엇이 달라졌는지, 지금의 이 여행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써 내려갔다. 기다리던 친구가 오기까지 몇 장을 볼펜으로 꾹꾹 눌러썼다. 나중에 서울에 돌아와 노트를 열어보고 새삼 신기했다. 일상에서는 그 정도로 세세하게 포착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여행지는 분명 글쓰기 좋은 환경이다.  여행지에서 할 일이란 마음껏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것 아닌가. 

새로운 장소가 주는 낯선 경험들로 인해 오감이 열려있다. 색다른 환경 속에서 모든 것들에 호기심이 간다. 많은 것을 받아들이는 만큼 생각이 자극되고, 생각이 풍성해지면 어떤 형태로든 발산하고 싶어 진다. 가장 쉬운 것은 말이다. 친구들에게 사진과 함께 즐거웠던 에피소드를 설명한다. 이것을 글로 표현하면 나에게 들려주는 여행기가 된다. 그 여행에는 내가 무엇을 자주 떠올렸고 어떤 소감이 남았는지가 정리된다.    


반대로 일상을 기록하면 여행처럼 낯설어지기도 한다.

매일이 비슷하긴 하지만 같은 날은 단 하루도 없다. 비슷한 패턴들 가운데 조금의 차이가 만들어지는 순간을 포착하면 글감이 된다. 미묘한 계절의 변화를 알아차리듯 내가 보는 세상을 글로 서술한다. 일상을 돌아보고 기록하면 평범한 하루에 스토리가 입혀진다. 내가 '마주한' 순간, 그리고 내가 '인식한' 순간이 각각 존재한다. 그래서 글로 쓰면 삶을 두 번 살게 된다.


글쓰기 노트가 쌓일수록 내 본연의 색깔이 분명 해지는 기분이다. 

글을 쓰는 일은 당장 먹고사는 일과 관련이 없지만, 삶을 인식하고 실현하는 그 자체이다. 쓰기를 통해 나와 주변을 자세히 바라보게 된다. 두둑한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풍요롭다. 그만큼 주변 사람들과 나눌 거리가 많으니까. 글은 쓰는 기쁨과 나눔의 기대가 있다.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취미생활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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