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넘게 108배를 하고 있다.
첫째는 불교신자로서의 양심, 둘째는 전신운동의 필요, 셋째는 현재의 몸상태 점검을 위해서다. 절을 접하고 시작하게 된 것은 부모님을 따라 절에 드나들면서이다. 처음엔 가만히 앉아 있는 좌선이 힘들어서 차라리 몸을 움직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몇 년 전, 유명 연예인이 절체조를 하면서 운동으로서의 절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운동은 일단 신발끈 묶고 밖에 나서는 '시작'이 힘든데 절은 사실 아무런 준비가 필요치 않다. 집안 한 곳에 가로 세로 1m의 공간만 있다면 마음먹은 즉시 할 수 있는 운동이다. 사시사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내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백번 넘게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면 꽤 땀이 난다.
처음 하나를 시작할 때는 '언제 100번까지 넘어가나' 싶지만 아무 생각 없이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30분이 지나 있다. 마지막 백 여덟 번째 절을 할 때의 뿌듯함이란! 하루 운동치 할당량을 채웠다는 후련한 마음이 우선 든든하다. 매일 8시간 넘게 모니터 앞에 앉아 있다 보니 눈동자와 손목만 쓰게 된다. 정작 걷기나 팔다리는 움직이지 않으니, 눈은 뻑뻑하고 피곤한데 몸은 찌뿌드드한 불균형이 생긴다. 여유가 있으면 한 시간 정도 걸어도 좋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간편하게 코어 근육을 사용할 수 있어 절 체조를 꾸준히 하기로 마음먹었다.
절을 하면서 현재 내 몸상태를 점검할 수 있다.
한 달 전에 처음 시작할 때는 30번째부터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50번, 70번째에 잠깐 쉬면서 팔다리를 풀었다. 배와 다리에 근육이 적으면 일어설 때 중심이 흐트러지기 쉽다. '예전엔 안 그랬는데...' 퍼뜩 위기감이 들었다. 체력이 좋을 땐 가볍게 할 수 있던 일이 버겁다고 느껴지다니. 배와 다리의 근육이 줄어들고 있다는 자각이 들었던 날부터 오늘까지 하루 30분 108배를 이어서 하고 있다.
자신과의 약속이 제일 지키기 어려운 법.
어찌 보면 30분은 하루 중 작은 부분이지만, 매일 꾸준히 하기란 힘들다. 보통 저녁을 먹고 소화를 시킬 겸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피곤한데 내일 할까? 혹은 자기 전에 할까? 하는 마음이 올라와도 가차 없이 방석을 들고 와야 한다. 오늘은 중간쯤이 지났을 때에도 몸이 가벼웠다. 제법 힘이 생겼나 보다. 이마를 바닥에 대었다가 마지막으로 일어서는 순간에도 배와 다리에도 별다른 무리가 느껴지지 않는다. 오- 한 달이란 시간의 효과다!
물방울이 바위도 뚫는다는 말처럼, 꾸준함이란 무엇이든 일구는 힘이 있다.
다만 모든 시작은 미미하고, 결과를 확신할 수 없어 중간에 그만두기 쉽다. 별거 아닌 108배지만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나고 나니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에 차이가 만들어졌다. 무엇이든 능숙하기 위해서는 시간의 축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몸으로 새겨본다.
작년부터 브런치를 시작하며 쓰기에 사뭇 진지해졌다.
글쓰기에 대한 책도 여럿 읽어보지만 시작할 때의 계획만큼 자주 쓰지 않다. 제목부터 시작해 발행까지 누르는 과정은 한참이 걸린다. 무엇을 쓸지에 대한 고민과, 어떻게 정리할지, 더 나은 전개는 없는지 계속 생각한다. 역시나 돌다리도 두들기는 신중한 성격이다. 그러다 보니 메모장 기록만큼 발행 글이 많지 않다.
부지런히 글을 발행하는 분들을 보면 자극도 된다. 수천 명의 팔로워를 가진 작가분들은 기본적으로 꾸준히 새 글을 온린다. 대부분 직장인으로서 하루 일과를 보내고 개인 시간에 부지런히 쓴다는 걸 알기에 나의 바쁨과 피곤함도 핑계가 될 수 없다.
기성 작가들도 기본적으로 '꾸준함'을 강조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무라카미 하루키도 매일 500~1000 단어 정도를 썼다. 일간 이슬아를 발행하는 이슬아 작가도 매일 에세이 1편을 작성한다. 잘하는 사람도 하는 일이라면, 잘하고 싶은 사람도 그만큼 해야 하지 않을까.
너무도 식상한 클리셰이지만 운동이든, 공부든, 글쓰기든 기본은 꾸준히 해 나가는 것밖에 없다. 108배로 몸을 단련하듯 브런치로 쓰는 꾸준함을 연습하는 중이다.
"작가는 우물과 비슷해요. 우물은 작가들만큼이나 여러 종류가 있죠. 중요한 건 우물에 깨끗한 물이 있는 거고, 그러자면 우물이 마르도록 물을 다 퍼내고 다시 차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규칙적인 양을 퍼내는 게 낫습니다." (헤밍웨이의 말, 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