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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 Dec 06. 2023

닭아, 네가 무슨 죄가 있겠니

“새댁, 닭 한 마리 잡아줄 테니까 갈 때 가지고 가.”

시골 어르신들은 대부분의 식재료가 그렇겠지만 닭고기, 달걀 역시 사드시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자식들 다 출가하고 두 분이서 사시는 경우는 더더욱. 매년 병아리 수십 마리씩 사서 애지중지 키우다가 자식들이나 손주들이 가끔 한 번씩 올 때면 손수 잡아주시는 닭들. 자식들 입에 넣어줄 생각으로 뜨거운 물속에 들어가 장렬히 전사하는 닭을 바라보며 행복해하시는 어르신들에게 병아리가 닭이 되도록 키우는 일은 어르신들의 소소한 일거리이자 기쁨 중 하나다. 그 소중한 닭을 나에게 주신단다. 가서 아이들이랑 몸보신하라며. 아, 참 감사한데, 아, 이를 어쩌지?      





당시 나는 군청에서 일자리 창출이라는 목적하에 만든 여러 일자리 중 마을회관을 청소하고 아침마다 회관으로 모여드는 어르신들의 점심을 챙겨드리는 일을 하고 있었다. 시골엔 이미 고령화가 진행돼도 한참 진행된 터. 60세 어르신을 보고 청년이라 부르는 지경이었으니 나는 뭐 그분들 눈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철없는 손녀정도 됐으려나. 이장 사모님의 급호출을 받게 되었고 놀고 있으면 뭐 하나 싶어 시작하게 된 마을회관 일. 아침에 아이들 학교, 유치원을 보내자마자 마을회관으로 달려간다. 부지런히 아침청소도 하고, 회관 주변도 정리하고, 어르신들께 커피도 타드리고. 둘러앉아 나누시는, 사투리로 잔뜩 도배되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는 말씀에 적절히 맞장구도 쳐 드린다. 하루의 시작을 워낙 일찍 하는 분들이기에 점심은 11시쯤 드시는데, 점심시간에 늦지 않게 밥을 안친다. 전기밥솥은 절대 안 되고 누룽지에 숭늉까지 드실 수 있도록 밥은 반드시 압력밥솥에 해야 한다. 밥을 너무 많이 태워도 안되고 다음 날 누룽지를 끓여 먹을 수 있을 만큼의 눌은밥 양이 나와야 한다. 내가 실수를 하나 안 하나, 밥은 얼마나 잘하나, 얼마나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가를 말없이 조용히, 그러나 강렬하기가 세상 둘째가라면 서러울 법한 레이저를 동시 다발적으로 쏘아대는 할머니들에게 트집 하나 잡히지 않으려 고군분투하는 날 따뜻한 눈빛과 웃음으로 받아주시는 유일한 분이 한 분 계셨는데, 바로 가장 강력한 레이저는 쏘는 할머니의 남편분이다. 뭐라도 하나 놓쳤을까 봐 앉아 있으면서도 눈치를 보고 전전긍긍하는 날 보시며 편하게 앉아 있으라고, 커피를 타 드릴 때도 같이 마시자며 꼭 챙겨주셨던,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 사랑’이라는 말이 이래서 나온 거구나를 몸소 느끼게 해 주셨던 할아버지.(시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시아버지 사랑이 뭔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나이다) 나의 숨구멍이 되어주시는 할아버지께서 닭 한 마리 잡아 줄 테니 가져가라 신다.  


  

출처: 픽사베이

처음 우리가 이곳에 내려왔을 때, 권사님 한 분이 복날 목사님 사모님 드시라고 직접 키운 닭을 잡아주신 적이 있는데 그 닭을 받아 들고 한동안 남편은 닭고기는 입에도 대지 못했었다. 이미 생을 다했으나 온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닭털만 뽑고 모가지만 댕강 쳐준 그 닭. 후처리가 하나도 되지 않은 닭을 우리 손에 쥐어주신 권사님 앞에서는 차마 내색하진 못했으나 뼛속까지 도시 남자인 남편은 순간 멘붕. 주셨으니 먹긴 먹어야겠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두 눈 꼭 감고 안에 있는 잔여물들을 긁어내고 씻어내는 남편은 토악질을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그 후로 잡아주시는 닭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남편은 마트에서 깔끔하게 손질되어 조신하게 누워있는 닭고기도 못 먹었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며 감사하다고 말은 하고는 있으나 바쁘게 돌아가는 내 머릿속. ‘주시면 어떻게 들고 가지? 보통 쌀포대에 담아주시니 두 눈 질끈 감고 집까지 들고 달려? 아니면 남편한테 나오라고 해야 하나? 집까지 거리가 300미터 정도 되니 일단 들고 달리자. 그 뒤엔 난 몰라, 남편에게 알아서 하라고 해야지 뭐. 아니면 끝나자마자 집에 빨리 가야 한다며 서둘러 나올까? 전화하는 척하며 나와야 하나?’ 그날 일이 끝날 때까지 얼굴엔 미소를 띠고 있으나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던, 집에 가야 할 시간이 다가올수록 해답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아이처럼, 요동치는 내 마음을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혼자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새댁, 기다려 내가 닭 잡아 올게.” 아, 기억력도 좋으신 우리 할아버님. 피하기는 이미 글렀다. 미소를 띠며 최대한 감사함을 보이며 받자. 나 생각해서 주신 거니까, 그 마음 참 감사하다, 하며 내 마음을 단도리하고 있는데.

아뿔싸! 쌀포대에 들은 닭이 아니로구나! 살아서 푸드덕 거리는 닭 한 마리를 위풍당당하게 들고 오시는 할아버님! 오 마이 갓! 이걸 어떻게 가져가라는 건가요 할아버지!  


   

“자, 이렇게 두 날개를 꼭 잡고 가지고 가.”

“네?? 살아있는 채로 가지고 가라고요?”

아, 이렇게 힘이 펄펄 넘치는 닭을, 잘 먹이고 키우셔서 살이 오를 대로 오른 이 닭을, 날개를 잡아서 데리고 가라고요? 아. 난 망했다!

“감사해요 할아버지~잘 먹을게요~”이 정도는 들 수 있지요 라며 있지도 않은 허새 가득한 몸짓으로,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한껏 미소를 띠며 닭을 들고 나왔다.  금방이라도 푸드덕 대며 날아갈 것만 같은 닭 한 마리를 들고. 엉덩이는 뒤로 쑥 빼고 마치 똥 싼 아이가 걸어가듯 어그적 어그적 대는 걸음으로.  “엄마, 어떻게 해, 아. 이거 어떡해, 얘 날아가면 어떻게 해, 으악! 날아갈 거 같아. 너무 무거워, 으악. 무서워 무서워 엉엉엉” 듣는 사람도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눈물을 글썽이며 그렇게 집 앞에 도착해 남아 있는 힘을 다해 남편을 부른다.

놀라서 달려 나온 남편은 내 모습을 보더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마당에 있는 닭장 문을 살포시 열어준다. 나보고 넣으라고? 아 이 남자 진짜!! 열린 문을 향해 닭을 있는 힘껏 내던지며 일은 일단락됐다.




 우리집 마당에도 닭장이라 부르기 민망한 닭장에 열 마리 남짓되는 닭들이 이미 있었다. 일단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있는 닭도 안 잡아먹는, 아니 못 잡아먹고 있는데. 뉴페이스가 또 생겼다! 이걸 어쩌나!

그렇게 영문도 모른 채 함께 살고 있던 식구들, 친구들과 작별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이사를 오게 된 닭은.... 우리 입에 들어가기는커녕 안타깝게 생을 마무리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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