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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 Nov 30. 2023

텃밭의 매력을 아시나요

“아휴, 내가 정말 못 살아! 나 나갈 거야!”

 큰 소리 한번 질러주고 문을 박차고 나온다. 이럴 땐 혼자 카페 가서 달달한 케이크에 커피 한잔 마시며 화를 가라앉힌다. 내 마음을 달래주는 건 역시 향긋한 이 커피 향뿐이구나. 크게 틀어놓은 음악과 창밖으로 펼쳐진 멋진 풍경을 배경 삼아 신나게 달리는 드라이브 역시 울적한 마음이 조금은 달래는 방법이지, 한 번 달려봐?  

라고 진심 말하고 싶지만! 


나의 현실은, 문을 열고 나가면 초록이 무성한 풀떼기들이 가득한 밭이요, 고소하고 향긋한 커피 냄새 대신 맡는 건 구수한 소똥 냄새요, 크게 들리는 건 소 울음소리뿐인, 휘황찬란한 불빛 대신 별빛과 달빛을 가로등 삼아 지내야 하는 이곳.  친구 하나 없고, 마음 터 놓을 곳 없어 울적할 때, 육아스트레스로부터 나를 달래주는 건 커피도, 빵도 드라이브도 아닌 바로 밭에서 자라는 식물들이다.      





십 년이 넘게 농촌에서 살았지만 한 번도 뭔가를 심고 거둬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농사라는 게 생각보다 잡일이 많고 신경 써야 할 것도 많고 무엇보다 엄청 부지런해야 함을 알고 있기에. 아이 셋을 키우는 것만으로도 벅찼던 내가 감히 쳐다볼 수도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다 작년에 지인이 재미로 키워보라며 주신 옥수수, 호박, 방울토마토 모종을 심었는데.. 어라. 생각보다 별거 없다. 나도 할 수 있겠는데, 하는 마음에 올봄. 옥수수, 방울토마토, 호박, 가지, 오이 모종을 한 아름 사다 심었다.

밭을 갈고, 검은 비닐을 씌워 잡초가 잘 자라지 않게 밑작업을 해 준 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모종 하나씩을 심는다. 열 맞춰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심고 싶었는데. 이놈의 삼 남매가 서로 하겠다고 싸우더니 결국 삐뚤삐뚤. 뭐가 중요하리. 잘만 자라다오. 올여름과 가을 우리 집 식탁에 풍성하게 올라올 녀석들을 생각하니 설레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좀 해라 잔소리를 아무리 해도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 아이들, 내 속을 박박 긁어대는 말만 해서 속 시끄럽게 하는 삼 남매와 달리 물만 주고 곁순을 잘 쳐주기만 하면 그런 나의 수고와 관심을 알아주는 것 마냥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나의 또 다른 아가들.

오늘은 없었는데 내일 가보면 꽃망울이 잡혀있고, 또 며칠이 지나면 꽃이 피고, 그 자리에는 어김없이 열매가 맺히고. 예측을 할 수 없는 삼 남매만 보다 정답지에 나온 순서대로 자라는 열매들을 보며 신기하기도 하고 계획대로 되어야 마음이 편안한 ‘J형’인 나는 그 모습을 통해 위로를 받는 신기한 일이 생긴다. 어느 순간 아이들 때문에 화나 나고 답답할 때면 나도 모르게 작은 텃밭으로 향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게다가 혼자 중얼거리기도 한다. “잘 자라라, 잘 자라라. 쑥쑥 자라주렴.” 머리끝까지 차 올랐던 나의 화와 분노가 사그라들고 마음에 평안이 찾아온다.     

직접 키운 오이, 방울토마토, 옥수수

 

밭농사라고 부르기 민망한 밭농사를 지으며 위로와 함께 얻는 깨달음이 있는데, 바로 ‘선택과 집중’이다. 옥수수는 밑에서 자꾸 올라오는 잎을 다 제거야 줘야 한다. 방울토마토도 본줄기에서 올라오는 것 말고 새로 올라오는 곁순들을 다 제거해 줘야 하고 호박과 오이 역시 꽃이 피면 모든 꽃들을 남겨두는 게 아니라 마디를 세면서 제거할 것들은 제거해 준다. 그래야 더 크고 실한 열매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일 아까워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것이 방울토마토다. 막내가 워낙 잘 먹는 토마토를 많이 수확하고 싶은 욕심에 꽃이 펴있는 줄기들을 제대로 잘라내지 못했다. 앞집 아저씨는 그렇게 아까워하면 실한 열매를 맺을 수 없다며, 중간중간 줄기들을 잘라내야 더 달고 맛있는 토마토를 먹을 수 있다고 하셨는데, 왜 그렇게 아깝던지. 애지중지 키운 자식을 떨쳐버리는 기분이랄까. 결국 욕심을 버리지 못한 나는 나중에 토마토가 숲이 되는 모습을 볼 수밖에 없었고, 그 안에 맺힌 토마토는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해 맛이 없거나 중간에 떨어지거나 결국엔 벌레들에게 다 먹혀서 양질의 열매를 수확할 수 없었다. 


또 하나는, 잡초의 생명력이다. 잘못 뽑아서 뿌리를 남겨 놓으면 며칠 지나지 않아 또다시 빼꼼히 머리를 내미는 잡초들. 얼마나 깊게 박힌 건지 힘으로 뽑으려면 뿌리째 제거하지 못해 같은 자리에 몇 번씩의 수고를 해야 한다. 그럴 때는 물을 충분히 뿌려준 뒤 살살살 흔들어 빼면 뿌리까지 쏙 뽑을 수 있다. 이제 됐나 싶을 때 둘러보면 어느새 또 소리 없이 조용히 날아들어와 뿌리내린 잡초들. 


하나밖에 없는 딸(둘째)은 항상 엄마의 사랑을 고파한다. 안 그래도 예민한 기질을 가진 아이인데다 위에 오빠 밑으로 남동생 사이에 껴 있어 늘 사랑의 부족함을 느낀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엄마 마음에 대못을 쾅쾅 박아대는데, 그때마다 아이에게 같이 화를 내고 윽박지르면 엄마를 향한 서운함, 분노는 극에 치닫는다. 잡초에게 물을 뿌려 살살살 달래는 것처럼 나의 마음을 한번 접고 아이의 마음을 공감해 주고 읽어준 뒤 조곤조곤 이야기하면 다시 순한 딸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게 한 번으로 되지 않음을 안다. 몇 번씩 뿌리내리는 엄마의 사랑에 대한 불안함, 자신을 보잘것없는 사람이라 여기는 낮은 자존감의 그 쓴뿌리들이 또다시 딸의 마음에 자리 잡을 때마다 나는 나를 내려놓고 다시 한번 딸의 쓴뿌리 제거에 열과 성을 다한다.      




아이들 때문에 힘이 빠지고 지칠 때마다 한결같은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었던 밭의 식물들, 제거하는데 힘이 들지만 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줄 수 있게 만들어 준 잡초들. 따뜻하고 분위기 있고 화려한 카페는 아니지만, 멋들어진 풍경과 음악소리가 깔린 드라이브는 아니지만 나에게 위로를 주었던 작은 텃밭. 내년 봄에는 어떤 식물을 통해 위로와 깨달음을 얻게 될까. 하지만 카페와 텃밭 중 어느 것을 택할래라고 묻는다면. 음, 그건 고민 좀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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