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가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살고 있기에 전화로 안부를 물으며 우리의 소식을 전해드렸다. 순간 흐르는 정적.
“둘 낳았으면 됐지 또 아이를 가졌다고? 이제 목회에 전념해야지 언제까지 아이만 키우고 있을 거니? 언제까지 목사님이(어머님은 본인 아들에게 꼭 목사님이라고 부르신다) 육아하느라 목회 못하고 그러고 있을 거야. 성인 남녀가 그거 하나 조절 못해서 아이를 또 가졌어?”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사실 원치 않는 임신이긴 했다. 둘째를 가질 때는 그렇게 노력을 해도 안 되다가 포기할 때쯤 생기더니, 셋째는 이렇게 쉽게 생긴다고? 이제 막 모유수유 끊은 지 한 달 됐는데?
둘째 임신 했을 때 셋까지 낳아보자며 행복한 가족계획을 세웠었다. 그때까진 몰랐으니까. 우리 기쁨이가 얼마나 예민덩어리고 키우기 어려운 아이인지. 한번 울면 한 시간은 기본으로 울어 재끼고, 돌이 다 되었는데도 통잠은커녕 두세 시간마다 한 번씩 깨서 울어 재껴 온 가족 모두에게 기다란 다크서클을 선물해 준, 우리 대단한 딸. 우리에게 셋째는 없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 그랬던 우리에게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 셋째.
시어머니와 통화 후 시어머니 얼굴만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올랐다. 둘째가 안 생겨서 마음 고생 할 때도 굳이 뭘 애를 하나 더 낳으려고 하냐, 하나만 낳아서 잘 키우면 되지 라며 내 마음을 박박 긁어대는 말씀만 하시더니, 성인 남녀가 조절 하나 못해서 애를 또 가졌냐니. 원체 돌려 까기를 못 하는 화법을 소유한 어머님이 존경스럽다. 뒤통수 치느니 앞에서 대 놓고 말해 주시는걸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나. 가까운 지인은 나와 열 살 차이나 나는 분인데(위로 열 살) 셋째 임신했다는 소식에 온 가족이 들고뛰고 난리도 아니었단다. 너무 감사한 일이고 축하할 일이라며.(그분의 세 아이 모두 우리 아이들과 같은 나이다) 나의 셋째 소식에 시어머니만 빼고 모두가 축하해 주셨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차라리 어머님을 원망할 일이 생겨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어머님의 그 말 한마디로 아이가 잘못된 거라고 어머님 탓으로 다 돌려버릴 수 있을 테니까. 내 뱃속에 있는 아이를 나마저도 외면하고 있었다. 기쁨이는 뭘 알고 그러는 건지 내 배 위에 올라가 밟고 뛰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고 그런 기쁨이를 말리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에게 행복과 위로를 줄 존재라는 걸 잉태되는 순간부터 알고 있었던 걸까? 누나가 무슨 짓을 해도 건강하게 잘 버텨 준 우리 행복이.
시어머니와 통화 후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고, 제발 오지 않았으면 했던 설 연휴가 다가왔다. 시어머니 얼굴은 정말 보기 싫은데 맑음이는 외할아버지, 외삼촌, 친척들을 너무 보고 싶어 했고 안 그래도 자주 못 보여드리는 외손주를 명절 때 아니면 보여드릴 수 없으니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가기 몇 주 전부터 어머님을 뵈면 쏟아낼 말들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한 번도 어머님께 대든 적 없고, 내 할 말 제대로 한 적 없지만 이번에는 결단코 그냥 넘어가지 않으리.
아직도 생각난다. 시댁의 분위기가. 냉랭하다 못해 몸이 떨릴 정도로 추웠고 어느 곳 하나 내 마음을 기댈 곳 없었던 그때의 그 분위기, 장면들이. 그날도 어김없이 교회 봉사를 하고 전도를 하고, 기도하고 오신 어머님. 그런 어머님의 얼굴 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절 위해, 제 뱃속에 있는 아이를 위해 기도를 좀 하시는 건 어떤가요 어머니.
“다들 셋째 소식에 축하해 주고 기뻐해 주는데 어머님만 그러지 않으셨어요. 가족한테까지 외면받고 축복받지 못하는 아이가 세상 누구에게 축복받고 사랑받을 수 있겠어요? 저보다 열 살 많은 사모님은 임신했다는 소식에 온 가족이 축하해 주고 기뻐해 주셨데요. 어머님이 저희 아이들 한 번을 봐주신 적 있으세요? 저 혼자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이들 이만큼 키웠어요. 셋째 역시 어머님 도움 하나도 받지 않고 저희가 키울 거고요. 어머님 아들이 중요한 것처럼 제게도 소중한 아이예요. 어머님이 함부로 말씀할 존재가 아니라구요. 만약 이 아이 잘못되면 저는 어머님 탓 할 거예요”
“너 말 진짜 이상하게 한다. 아이가 잘못되면 그게 다 내 탓이라는 거니?”
“여보, 당신 말이 좀 심한 거 같아.”
요것 봐라. 이 와중에 이 효자 아들은 지 엄마 편을 든다. 내가 얼마나 마음을 끓이고, 하루에도 몇 번씩 혼자 눈물 흘리며 제대로 된 태교 한번 못 하고 있는지 옆에서 다 봐왔으면서. 역시, 착한 아들은 구제해 줄 필요가 없구나.
마음속에는 아직 못다 한 백 마디 말이 있는데 딱 잘라 말씀하시는 어머님께 더 이상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칭 뒤끝 없고 쿨한 어머님은 다음날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날 대하셨지만 난 그 이후에도 어머님 얼굴 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다 쏟아내지 못한 나의 마음속 말들에게 미안했고 벌써부터 아이를 지키지 못하는 무능한 엄마가 된 것만 같았다.
임신 기간 내내 온갖 기상이변을 일으켰던 내 마음과는 달리 봄날 아무도 모르게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 꽃망울처럼 묵묵히 자신의 탄생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우리 행복이. 존재만으로도 봄날의 따스한 햇빛처럼, 여름에 불어오는 산들바람처럼 나를 위로해 주는 아이. 만약 그때 내가 뱉은 그 원망과 분노의 씨앗이 뿌려졌다면 지금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지금보다 몸은 편할지 몰라도 마음은 평생 걷히지 않는 안갯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아이가 불러주는 노래와 미소와 눈빛이 나를 살아 가게 한다. 널 안 낳았으면 어쩔 뻔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