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4학년을 앞둔 1월, 임용생에게 중요한 3학년 겨울방학.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던 난 공부하겠다는 핑계로 집에도 잘 가지 않았다. 고3 수험생인 듯 하지만 그때보다 자율성이 더 생겨 정신을 부여잡지 않으면 안 됐고, 더욱 스스로를 몰아붙여야 했던 그 겨울. 그렇다고 책 속에만 빠져 지낸 것도 아니었으면서, 왠지 도서관 밖을 나가면 불안해서 놀더라도 도서관 안에서만 놀았던 그때.
새벽 5시. 이상하게 불안감에 눈이 떠진다. 깊은 잠을 잘 수가 없다. 전날 늦게 자서 분명 피곤한데, 자꾸 선잠만 들고 자다 깨다를 반복한다. 그때 울리는 전화벨. 이 시간에 누가? 동기 녀석이 또 밤새 술 퍼마시고 전화했구먼.
아빠였다. “엄마가... 죽었어.” 내가 어떻게 반응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이라곤 전화를 끊을 때까지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았다는 것. 머릿속이 하얘진다는 게 어떤 건지 느꼈던 그 짧은 순간. 멍하니 있다가 기계적으로 욕실에 들어가 머리를 숙이는데 후두둑 눈물이 떨어진다. 멈출 수가 없이 목놓아 엉엉 운다.
“아저씨, 터미널로 빨리 좀 가주세요. 첫차를 꼭 타야 해요.”
“아니 학생, 이렇게 이른 시간에 어딜 가?”
“엄마가, 돌아가셨데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기사님은 경주마가 달리듯 내달리셨다. 길가의 신호등마저 얼른 가보라는 듯 길을 열어 주었다.
아빠의 전화를 받기 바로 전날, 주일예배를 본교회에서 드리기 위해 인천집에 갔었고, 주일 일정을 모두 마친 뒤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기숙사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날따라 엄마가 문 앞까지 나와 마중해 준다. 밥 잘 챙겨 먹으며 공부하라고, 잘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한다고. 갑작스러운 엄마의 고백(?)에 난 별 대수롭지 않듯, 됐어~라며 쿨 하게 나왔는데. 그게 엄마와의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엄마 마음 편해질 수 있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고 꼭 한번 안아주고 올 것을.
어떻게 장례를 끝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연락을 자주 주고받지 못했던 친구들이 찾아와 반가운데, 우린 서로 부둥켜안고 울며 인사를 대신했고, 늘 반갑게 웃으며 만났던 이모, 삼촌들이 왔는데 굳은 얼굴로 서로의 눈을 바라보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래야 서로의 눈물을 지켜줄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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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없지만 우리의 일상은 흘러갔다. 꽃피는 3월 개강을 했고, 정신없이 흘러가는 학사일정에 맞춰가느라 나의 감정 따위는 되돌아볼 시간이 없었다. 봄바람은 따뜻한데, 내 마음만 추웠고 멍 때리고 앉아 있는 시간이 늘었다. 동생은 정신적 지주였던 엄마가 사라지자 방황을 하기 시작했고, 그 해 가을 국가의 부름을 받았다.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상태로 입대한 동생 걱정에 늘 불안했고, 매 순간이 두려웠다. 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남동생의 생각을 알 수 없으니 답답했고, 하루가 다르게 약해져 가는 아빠의 모습을 보는 게 힘들었다. 가정이 깨질까 봐 무서웠다. 우리 가정의 기도의 기둥이었던 엄마가 사라졌다. 늘 배경처럼, 그림자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내 뒤에, 우리 가족 뒤에 있어 주었던 엄마가 이젠, 없다.
이제야 알 것 같다. 나이의 많고 적음에 따라 엄마라는 존재가 차지하는 삶의 부분이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엄마의 손길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있음을. 내가 엄마가 되었지만 나에게도 역시 엄마가 필요하다는 것을. 엄마인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건 역시 엄마밖에 없다는 것을.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 온전히 받아줄 수 있는 건 엄마밖에 없다는 것을. 웬수 같을 지언정 없으면 안 되는 존재라는 것을. 엄마에게도 누군가가 필요했다는 것을.
“넌 대체 왜 그렇게 생겨먹은 거니? 대체 누굴 닮아 그러는 거냐고!”
“누굴 닮긴 누굴 닮아. 엄마랑 똑같이 생겼는데. 이렇게 낳아 놓은 엄마를 탓해.”
“너도 나중에 너 똑 닮은 딸 낳아서 고생 한 번 해 봐라!”
엄마. 그 고생 나 지금 엄청 하고 있다. 하늘에서 다 보고 있지? 기쁨이 때문에 속상할 적마다 엄마 생각이 많이 나. 엄마도 나를 이렇게 힘들게 키웠구나. 정말 많이 답답했겠구나. 우리 키우면서 정말 많이 외로웠겠구나.
엄마한테 마지막까지 다정한 딸 못 해줘서 미안해. 그러니까 이제 제발 꿈에라도 한 번만 나와 주면 안 될까? 그때 못 해준 말 다 해줄게. 기다리고 있을게. 꼭 만나자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