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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 Jan 03. 2024

따끈따근한 추억이 배송되었습니다.

“와~이번엔 내 거다.”

택배가 도착하기가 무섭게 개봉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힘들었던 순간들이 싹 사라진다.

둘째가 태어났을 때부터 써 온 아이들의 성장 일기. 큰 아이 때는 있는 줄도 몰랐다가 비슷한 시기에 임신한 친구가 알려준 후 꾸준히 써온 일기다. 아, 둘째 돌 지나고 바쁘다는 핑계로 한 3년 중단했으니 꾸준히라고 말하면 안 되려나.

중단했던 성장일기를 다시 쓰게 된 이유는 아이들 때문이다. 한글을 아직 읽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그건 그냥 책꽂이에 꽂혀있는 장식물에 불과했는데 우연히 들춰본 책에 본인들의 사진이 담겨 있으니 놀랍기도 했겠지.

“엄마, 이 책에 내 사진이 들어있어.” 똑같은 책인 줄 알았는데 본인의 ‘지못미’ 사진이 실려 있으니 호기심 많은 큰 아이의 눈에 단박에 들어온 것.

때가 왔도다! 큰 아이를 무릎에 앉혀 놓고 써 놓은 일기들을 읽어주는데, 눈물이 그렁그렁 한 채로 내용에 집중을 한다.

맑음아, 사랑한다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사랑해.”라는 구절을 읽어줬는데 그 말이 마음에 와닿았을까. 아빠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다 동생이 태어나면서 그 사랑을 빼앗겼다고 생각이 들었던 걸까. 그런 아이의 마음을 톡 건드려준 말이었던 걸까.

평범한 한 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말에 눈에 가득 찬 눈물을 떨어뜨리지 않으려 두 눈을 부릅뜬 아들의 모습에 나까지 코끝이 찡해진다.(그 뒤로 잠자기 전 항상 나에게 저 말을 해주곤 했었다) 그 모습에 건너지 말아야 할 강을 건너고 말았다.   

  



백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출석체크를 해야 하고, 사진도 편집해서 넣어야 하고 쓴 내용도 수정해야 하고... 아이 셋을 키우며 쓰기란 쉽지가 않았다.(사실 좀 귀찮기도 하다) 하루에 세 명의 아이들의 일기를 똑같이 써야 하는 게 쉽지 않아서 큰 이벤트가 있었던 아이 위주로 쓰다 보니 자연스레 막내의 일기장은 권수가 부족하다. 본인 것만 뭔가 빈 듯함을 인지한 막내는 이제는 형아 누나 말고 자기 일기만 쓰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기도 한다. 

“엄마, 행복이 울어.” 본인의 일기를 읽으며 막내는 대성통곡을 한다. 그러다 말없이 다가와 폭 안기는 사랑스러운 막내. 엄마가 널 얼마나 사랑으로 키우고 있는지, 너의 꼬라지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이제 좀 알겠니.  


   

책을 읽는 시간이 되면, 심심할 때면 성장 일기를 뽑아 들어 따뜻한 바닥에 배를 깔고 눕는다. 딸은 너무 자주 펼쳤다 접었다 하면 닳아질까 봐 책을 활짝 펼치지도 않는다. 그 모습을 보면 이 정도 썼으면 됐어, 할 만큼 했으니 이제 그만하자 했던 다짐은 어느새 사라지고 아이의 모습 하나라도 놓칠새라 카메라를 들이대고 어떤 내용을 써 줘야 할지 고민하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깔깔깔 웃다가도 뭐 이런 것까지 적었냐며 나를 향해 눈을 흘기기도 하는 아이들. 서로의 일기를 읽으며 “엄마 내가 진짜 이랬어? 내가 진짜 이런 말을 했어?”라며 재차 확인을 하는 아이에게 일일이 설명을 해줘야 하는 수고로움이 뒤따르긴 하지만.     



“엄마, 나는 첫 번째 일기장이 제일 재미있어. 왜냐면 다른 일기장에는 내가 엄마 힘들게 했던 내용들이 많은데 첫 번째 일기장은 내가 아기였을 때 있었던 일들이라 좋아.”

좋았던 일, 행복했던 일들만 기록해 놓으면 참 좋겠지만 길이길이 기억에 남을만한 진상짓 한 날들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법. 아이들이 커 갈수록 ‘내 반드시 너의 흑역사를 기록해 놓았다가 구멍 뻥 뚫린 사골마냥 우려먹고 또 우려먹으리.’라는 심정으로 쓴 일기들이 점점 늘어나게 되는데 본인도 그런 내용은 민망한지 대충 한번 쓱 훑고 넘어간다. 

왼쪽부터 첫째, 둘째, 셋째의 성장일기. 아직 출판해야 할 책이 열권 이상 남은 게 함정.

출판 쿠폰의 마감이 임박했다는 알림이 자꾸 나를 채근한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빨리 해치우자라는 생각으로 사진을 고르기 위해 외장하드를 열어보는 순간.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 얼얼하다. 그땐 몰랐던 아이들의 표정과 행동이 이제 보이기 시작한다. 공부할 때마다 하도 짜증을 내서 ‘공부할 때 네 모습이 어떤지 직접 봐라’라는 마음에 찍어둔 영상이 있었다. 당시에는 짜증을 내는 아이, 나를 힘들게 하는 아이만 보였는데 영상 속에는 최선을 다해 한 문제 한 문제 풀어가고, 엄마의 날카로운 말에 눈치 보는 아이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너도 이렇게 애썼구나, 최선을 다 하고 있었구나, 내 힘듦만을 보느라 너의 마음을 내가 놓쳤구나. 많은 사진들과 영상들 속 아이들의 모습은 천진난만, 해맑음으로 무장되어 있다. 써 놓았던 일기를 다시 읽어보는데 사춘기 아들이 사랑스러워지는 마법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 넌 나에게 따스한 봄햇살 같은 아이였었지, 나의 비타민 같은 존재였어.     



아이가 커 갈수록 아이들이 스킵하고 넘어갈 내용들이 가득하다. 특히 사춘기에 접어든 큰 아이의 일기 내용은, 매일 싸우고, 혼나고, 울고, 그런 널 보기 힘들다는 엄마의 신세한탄의 내용이 연속이다. 아들과 행복했던 날들도 많았을 텐데 속상한 내용들만 담겨있으니 어쩌면 나의 일순간 느꼈던 감정들의 기록들로 기억이 왜곡되고 아이들에게 죄책감, 엄마에 대한 미안함만을 안겨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멈칫하게 된다. '아, 이제 우려먹을 사골이야기는 그만 써야겠구나.' 


     



이제 막 도착한 따끈따끈한 일기를 펼치며 오늘의 독서시간을 갖는다. 역시나 따뜻한 바닥에 배를 깔고 귤 하나씩 까먹으며. 깔깔깔 거리며 웃다가 엄마에게 눈을 흘기다가. 이 모든 순간들을, 따스한 온기와 분위기를 다시 잘 기록해 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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