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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 Dec 23. 2023

친정도 잃었습니다.

계모와 살고 있습니다(2)


첫 아이를 낳고 조리원에서 돌아온 첫날. 아, 내가 여기서 지내다간 돌아버리겠구나 싶었다. 조카는 아무 때고 문을 벌컥벌컥 열고 들어와 자고 있는 맑음이를 깨워댔고, 수유 중이던 나는 급하게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쿵쾅거리며 뛰어다니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사실 아이의 잘못은 없다. 아이는 본성에 충실했을 뿐이고 그동안 그렇게 들고뛰는 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니까. 동생이 생겼으니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고 만지고 싶은 게 당연한 거니까. 문제는 매일 밤 잠 못 자 예민보스 판다가 된 나였을 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에 살고 계시는 큰 이모님 가족이 여행차 한국에 들어오셨는데 동생 집에서(나의 시어머니) 지내시겠다며 그 좁디좁은 집으로 오셨고 안 그래도 식구가 많아 복작복작하던 집이 이제는 도떼기시장 같은 곳이 되어버렸다.


 사실 아주버님 내외는 아침 먹고 나가 저녁 늦게 들어오는 잠만 자는 직장인의 삶을 살고 있기에 식구가 늘어난 것에 대해 무감각했을 것이다. 지금 헤어지면 언제 또 만날지 기약 없는 만남이기에 언니를 살뜰히 챙기는 일에 신경이 곤두서 있는 어머님 역시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루 종일 집에 틀어박혀 먹고 싸고 안 자는 아이를 둘러업고 고군분투하고 있는 나에게만 모든 것이 거슬리고 사사건건에 신경이 곤두섰다. 여길 벗어나야 내가 살 수 있다!     


새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이런 일은 아빠에게 전화해서는 절대 안 된다) 전후 사정을 말씀드리고 2주일만이라도 아니 일주일만이라도 친정에 가 있으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내 말이 끝나고 무겁게 흐르던 정적. 소리 없는 거절이었다. 사실 나도 더 이상 부탁을 드릴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다. 남들은 친정엄마가 몸조리해주는데 아빠는 그렇게 못 해줄 테니 내 조리원비용을 아빠가 내주라고 당당하게 말했던 나니까. 아빠는 그게 뭐 대수냐는 듯 선뜻 비용을 내주셨으니 어쩌면 친정에서 해 줘야 하는 건 다 해준 거 아니냐고 말해도 할 말은 없었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산속에 홀로 놓여있는 여린 짐승이 된 것만 같았다. 도망갈 곳도, 숨을 곳도 없는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곳에 나 혼자 덩그러니 놓여있는 기분.     

출처: Pixabay

첫아이라 그랬던 건지 내가 무지했던 건지 아이를 낳고 손목을 쓸 수가 없었다. 정형외과도 다녀보고 한의원을 다녀봐도 소용이 없었다. 손목을 쓰지 말라는데 당장 백일도 안된 아이를 키우며 손목을 안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아빠는 이제 백일 정도 모유 먹였으면 되는 거 아니냐며 그냥 편하게 분유 먹이라고, 울어도 안아주지 말고 눕혀놓으라며 손주보다 아픈 딸 챙기기에 바빴고, 못 먹고 못 자 얼굴이 퀭해진 내 얼굴을 볼 때마다 안쓰러워 어쩔 줄 모르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셨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새어머니는 조용히 한마디 날리셨다.     



“애 낳으면 다 그 정도는 다 아픈 거 아니니? 네 아빠가 유난이다.”     

묻고 싶었다. 애 한 명도 낳아보지 않으신 분이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시는지.      




둘째는 굉장히 예민한 아이다. 어렸을 때 밤마다 울어재끼기 시작하면 한 시간은 기본이었고 통잠을 자기 시작한 것도 두 돌이 넘어서야 가능했던 아이. 맑음이가 키우기 수월한 아이였다며 기쁨이는 도대체 누굴 닮아 그런 거냐며 하하 호호 이야기를 하는데 또 훅 들어온 한마디.     


“예민한 건 지 엄마 닮았겠지 누굴 닮았겠니.”

네네, 저도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제 딸이니 절 닮았겠지요. 저의 예민함과 까칠함을 한번 더 상기시키고 싶으셨나요.      

새어머니의 툭툭 내뱉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허허실실 웃는 것뿐이었다. 맞받아 치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나의 상처를 외면했다. 그 순간만 눈 꼭 감고 넘기면 된다고 생각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나보다 새어머니 편을 들어줘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던 아빠. 이해는 하지만 아빠에게도 서운한 감정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와 새어머니 사이에서 가장 난처하고 곤란했을 사람은 아빠였을 터.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나 역시 나의 상처를 드러내지 않았던 건데, 결국 터져버렸다.     

“내가 친정이 어딨어? 남들 다 있는 친정엄마가 없잖아! 내가 아무 때고 편하게 갈 수 있는 친정이 나한테는 없잖아!!”

“넌 언제까지 죽은 네 엄마만 붙잡고 살 건데!”     


새어머니의 말과 행동보다 아빠의 한마디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꽂혔다. 그 전화를 마지막으로 아빠와의 연락도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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