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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 Apr 12. 2024

엄마, 어디가

어렸을 적, 한솥 가득 끓여지고 있는 곰탕을 보면 아, 엄마가 어딜 가는구나를 알 수 있었다. 엄마가 없어도 동네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 “밥 먹자”라는 위층, 아래층 이모들의 부름에 친구들과 우르르 집으로 몰려가면 엄마가 끓여 놓고 간 곰탕을 친구들과 이모들과 맛있게 먹곤 했었던. 엄마도 나도 걱정 없이 서로의 시간을 보내게 해 주었던 곰탕 한 솥.     



몇 달 전부터 손꼽아 기다리던 날이 다가왔다. 늘 보고 싶고 궁금하고, 자주 보지 못해 아쉬운 동기 작가님들을 만나는 날. 토요일이라 한 달 전부터 예매하지 않으면 원하는 시간대의 기차를 탈 수가 없는데 이래저래 정신없는 아내가 놓칠 새라 알아서 기차표를 예매해 준 남편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표한다. 게다가 약속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하는 표를 예매하고, 돌아오는 기차표도 늦은 시간으로 해준 덕에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다 올 수 있다.      



주말에 혼자 외출하는 게 약간 미안하긴 하다. 남편 혼자, 세 아이의 삼시 세 끼를 모두 챙겨야 하는 게 제일 마음에 걸린다. 내가 없어도 알아서 잘해 먹는다는 것도 알고, 아이들도 어느 정도 컸으니 하루 대충 먹는다고 뭐 큰 일이야 나겠냐마는 (어쩌면 내가 없을 걸 더 좋아할지도) 혼자만 자유를 찾아 떠나는 것 같은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엄마가 없어도 곰탕 하나만 있으면 한 끼 아니, 어쩌면 하루 세끼 뚝딱 해결되었던 것처럼 남편과 아이들의 식사를 뚝딱 해 치울 수 있는 뭔가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냉장고를 열어 본다. 제일 반찬투정이 심한 막내가 좋아할 만한 반찬으로 만들어야겠다. 막내만 밥투정 안 해도 평안히 식사할 수 있을 테니.    


 

첫 번째 메뉴는 잡채다. 어차피 야채 많이 넣어봤자 애들은 면만 호로록 골라먹을게 뻔하니 구색 맞춰 만들지 말고 집에 있는 야채 대충 때려 넣어 만들어야겠다. 시금치 약간과 어묵, 양파와 당근. 저녁 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두 시간. 괜히 마음이 조급해지고 손이 빨라진다. 시금치 데칠 물이 끓고 소금 약간을 넣으려고 뚜껑을 여는 순간. 아뿔싸! 소금보다 고운 가루가 콸콸 쏟아진다. 오 마이 갓! 설탕이다! 물에 아직 잠기지 않은 시금치 위로 쏟아진 설탕을 조심스레 싱크대로 가져가 탈탈 털고선 다시 시금치는 물속에 투입! 우여곡절 끝에 시금치는 완성. 정석대로 라면 당근과 양파는 따로 볶아야 색이 예쁘게 물들 테지만 어차피 우리 가족끼리 먹는 거, 그게 뭐가 중하리. 대충 다 때려 넣고 한 번에 볶는다.     

잡채에 들어갈 소박한 재료들

잡채에 들어갈 야채를 다듬고 볶는 중간중간 두 번째 메뉴, 소불고기에 들어갈 재료들을 손질한다. 핏물을 빼고 좀 더 야들야들한 식감을 위해 양파와 배즙을 넣고 믹서기에 갈아낸다. 조금이나마 맛이 고기에 베어 들기를 바라며 갖은양념과 양파&배즙에 고기를 섞어 재워 놓으면 소불고기는 얼추 완성. 먹기 전에 야채만 다듬어 넣고 함께 볶기만 하면 끝이다.     

불고기와 바통 터치한 잡채의 마무리를 서두른다. 간장과 설탕의 적절한 비율로 간을 맞춘 후 당면에 고운 갈색 옷을 입혀준다.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를 속으로 외치며.

갈색빛 옷을 입은 당면과 볶아 놓은 야채들을 섞으면 잡채도 끝. 어제 끓여 놓은 김치찌개까지 상에 올리면 오늘 저녁 반찬은 얼추 완성이다.

재워 놓은 남은 불고기와 남은 잡채는 정갈하게 반찬 통에 넣어 놓는다. 정확히 2시간 만에 내가 없는 하루 동안 먹을 반찬이 완성되었다. 태권도 학원에 갔다 돌아오면 ‘다녀왔습니다.’ 보다 ‘엄마 배고파. 밥 언제 먹어’를 외치는 아들 녀석에게 늦지 않게 저녁을 먹일 수 있음에 안도의 한숨이 나오며, 이 정도면 내일 엄마의 외출에도 남편과 아이들의 식사는 문제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가벼운 마음으로 뒷정리를 한다.  

   


“와, 엄마 오늘 무슨 날이야? 내가 좋아하는 불고기랑 잡채가 있네.”

“응, 무슨 날이야.”

“무슨 날인데?”

“내일 엄마가 하루종일 집에 없을 거야. 서울에 좀 다녀와야 하거든. 엄마 없어도 아빠랑 같이 먹을 반찬 해 놓은 거니까 엄마 없어도 잘 지내고 있어.”

“와 역시, 잡채는 맛있어.”     


맛있게 먹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나갔던 정신이 두 시간 여만에 다시 돌아온다. 일하고 돌아와 쉴 시간도 없이 후다닥 만들어낸 음식들인데 맛있게 먹어주는 가족들에게도 고맙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배려해 준 남편에게도 고맙다.      




아, 그런데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음식이 잡채와 불고기가 되면 어쩌지.

그건 좀 곤란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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