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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 Jun 25. 2024

마늘꽃도 꽃이다.

나이가 들었나 보다. 꽃이 그렇게 예뻐보인다. 예쁘게 조경되어 있는 꽃과 나무도 예쁘지만 길가에 아무렇게나 핀 들꽃도 예쁘다. 핸드폰 사진첩은 언제나 아이들 사진으로 넘쳐났는데 어느 순간 꽃과 하늘 사진으로 가득 차있다.


언제부턴가 남편이 꽃을 사기 시작했다. 교회 강단에도, 우리 집 식탁 위에도 꽃병이 하나씩 놓였고, 계절에 맞는 예쁜 꽃들을 사다 꽂기 시작했다.  꽃병에 꽂혀있는 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그 순간이 위로가 되고 마음이 평안해지는 시간이 되었다.


이런 남편과 나의 모습을 보던 교인들이 마당에 피어있는 꽃들을 꺾어오신다. 빨간 장미, 푸르른 수국, 순백의 백합까지. 꽃집에서 사려면 돈깨나 주고 사야 하는 꽃들이 교인들 집 마당에는 지천으로 펴있다. 너무 익숙하게 봐 왔던 터라 눈에 들어도 오지 않았던 꽃들을 목사님이 좋아한다고, 사모님이 좋아한다고 한 아름씩 꺾어다 주신다. 십 년이 넘게 한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이제야 이런 관심과 사랑을 받는구나. 감사하면서도 묘한 이 감정.     



출처: 강산뉴스. 강진에서는 마늘꽃 축제도 열린다고 한다.

예배 시작 전. 출입문이 열리고 아름드리 꽃다발이 먼저 들어온다. 오늘도 꽃을 좋아하는 목사와 사모를 위해 꽃 한 다발 꺾어오셨다. 내가 좋아하는 수국이다. 어? 이 꽃은 무슨 꽃이지? 처음 보는 꽃이다. 여쭤보니 마늘꽃이란다. 마늘도 꽃이 핀다니. 정확한 이름은 ‘코끼리 마늘꽃’이라는데 볼수록 신기하다. 이리 살펴보고 저리 살펴보니 수국과 참 잘 어울린다. 신문지에 대충 둘둘 쌓여 들어온 꽃들이 꽃꽂이를 담당하시는 권사님께 인계되어 예쁘게 꽃병에 꽂히고 그날의 예배당을 좀 더 환하게 만들어 준다.     


예배가 한참 진행되는데, 앗. 어디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 이게 무슨 냄새지? 20평 남짓한 장소를 가득 메운 이 냄새는... 마늘 냄새다! 꽃병은 맨 앞자리, 강대상 옆에 놓여있고 나의 자리는 예배당 가장 뒤쪽인데 내 자리까지 풍겨오는 냄새는 진짜 마늘 냄새다.    

 

“아우 사모님, 나 저 꽃 냄새 때문에 머리가 다 아팠어요.”

“엄마, 교회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

“윽, 엄마 꽃에서 왜 이런 냄새가 나?”     


그렇게 마늘꽃은 교회 옆 텃밭에 던져지면서 삶을 마감했다. 꼿꼿한 자태로 등장했던 마늘꽃은 그렇게 짧은 시간 강렬한 인상을 남긴 채 삶을 달리했다. 분명 인터넷으로 검색해 봤을 때는 마늘 냄새가 많이 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옆 동네 강진에서는 마늘꽃 축제까지 하던데. 좁은 공간이라 그런가 예상보다 마늘꽃의 냄새는 강렬했다. 화려한 겉모습만 봤을 땐 아름다운 플로랄 향이 날 것만 같았는데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정말 정직하게 마늘향을 내뿜은 마늘꽃. 생긴 건 참 예쁜데 향은 별로구나. 에이, 실망이야. 넌 다신 꽃병에 꽂히지 못하겠어. 텃밭에 내던지며 돌아서는데. 가만, 마늘꽃이 마늘꽃 냄새가 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이런 푸대접을 받는 게 맞는 건가라는 생각이 문득 스치고 지나간다. 나의 잘못된 생각과 기대로 느낀 실망감은 과연 너의 잘못일까 나의 잘못일까.     



이런 일들이 과연 이 마늘꽃에서 만일까. 사람에 대한 괜한 기대, 바람, 희망. 혼자 가지고 있다가 내 뜻대로 되지 않아 실망하고 좌절하는 일이 얼마나 많던가.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했다가 내 뜻과 다른 모습들을 보며 혼자 실망하고 상처받고, 벽을 치는 일이 내 삶 속에 얼마나 많이 일어났던가.   


  

멀리 갈 것도 없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나만의 기준을 세워 놓고 아이가 그대로 따라와 주지 않으면 괜한 실망감과 불안감에 아이를 닦달하기도 하고 모진 말로 아이의 기를 죽이기를 여러 번. 아이는 아이만의 속도가 있고 아이만의 기질이 있는 것인데, 하늘 아래 같은 아이는 한 명도 없거늘. ‘초등학교 4학년이면 이 정도는 해야 해. 중학교 1학년이면서 이것도 몰라? ’라며 ‘일반적, 평균적 잣대’랍시고 아이들에게 들이대며 아이만의 고유성을 깔아뭉개고 있던 나의 모습을 어제도 보지 않았던가.     



아이는 그냥 지금 자기 모습에 만족하며,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마늘꽃이 자기가 낼 수 있는 향을 내며 꼿꼿한 꽃대로 서 있는 것처럼.

무엇을 잘하고 못 하고에 따라 아이의 존재감이 가벼워지거나 무거워지는 것은 아니다. 마늘 냄새를 풍긴다고 마늘꽃이 꽃이 아닌 것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나의 기대가,  나의 기준이 문제일뿐. 당위성을 강조하는 대신 다름을 인정할 때 아이는 성장한다는 것을 또 한번 상기시켜 준 마늘꽃. 고맙다.


산에 피어도 꽃이고 들에 피어도 꽃이고 길가에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아무 데나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노래, '모두 다 꽃이야' 가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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