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글쓰기 11. 일상 중 한 장면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날, 아이들을 위한, 아이들만의 특별한 날인 오늘은 두 아이의 학예회 날이다. 작은 시골학교에서의 학예회는 축제와도 같은 날이다. 일 년 동안 방과후 수업을 들으며 갈고닦은 실력을 부모님들 앞에서 뽐내는 시간, 오롯이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어 내 아이, 남의 아이 할 것 없이 큰 환호와 박수를 보내고, 아이들도 부모님들 그리고 선생님들까지도 한껏 들뜨는 날이다. 그래서일까. 이곳에서의 마지막 축제를 즐길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이번 학예회가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올해는 둘째 아이가 학예회 1부 사회를 맡게 되었다. 얼굴에는 긴장된 표정이 역력하고, 편하게 미소 한 번 지을 수 없으며 자신감이 현저히 떨어진, 엄마만이 알 수 있는 아이의 긴장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더 잘할 수 있음을 알기에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동시에 들었지만, 마이크를 잡았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대단한 일임을 나도, 그리고 학교에 계시는 모든 선생님들도 안다.
전교생 40명도 채 안 되는 작은 학교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사회를 보는 것도 아니고 겨우 1시간 학예회 사회를 보는 게 뭐 그리 대수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아이에게는 너무도 큰 도전과 모험이 아닐 수 없다.
병설유치원에 입학하고 처음 학예회 무대에 올랐던 아이는, 리허설을 위해 무대에 올랐지만 인간얼음이 되어 그대로 서있기만 하다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내려왔다. 전교생이 얼마 되지 않는 학교이기에 하굣길에 나를 만나는 아이마다 소식을 전해주었고, 그 짧은 길에서 적어도 10번 이상 같은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아이는 이틀 뒤인 본 무대에서는 떨지 않고 울지 않고, 오히려 음악을 따라 부르는 여유까지 부리며 무대를 무사히 마쳤다. 그렇게 아이는 학예회에 대한 경험치를 쌓았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유독 체험학습이 많다. 일 년에 적어도 10번 이상 나가는 것 같다. 당일로 다녀오는 체험학습도 많지만, 1박 2일, 2박 3일의 여정으로 다녀오는 경우도 연 2번 이상은 된다. 보통 아이들은 집을 떠나 친구들과 지내는 그 시간을 손꼽아 기다린다. 엄마의 눈길을 피해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간들, 평소에 자주 경험할 수 없는 활동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뜨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체험학습 안내가 되면 근심과 걱정이 한가득이다. 엄마가 학교 운영위원회 위원이라 학교의 여러 소식을 다른 친구들보다 먼저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학교 행사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아이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진다.
“엄마, 나는 집 아닌 다른 곳에서 자면 잠이 잘 안 오는데 친구들은 다 자는데 나만 밤에 못 자면 어떡해? 나 벌써부터 너무 걱정돼서 아무것도 못 하겠어.”
(체험학습 가려면 두 달이나 남았다)
공부하다가도, 책을 보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씻다가도 휘몰아치는 생각과 걱정으로 갑자기 눈물을 쏟거나 짜증을 내는 딸을 감당하기가 버거울 때가 많다. 처음에는 괜찮다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어르고 달래기를 여러 번 했음에도, 아이의 불안과 걱정은 체험학습을 가기 전까지 조금도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은 엄마에게 욕을 한 바가지 얻어 들어야 끝이 살짝 보일까 말까 하고, 그런 딸을 볼 때마다 ‘이 아이를 어찌해야 하나, 나중에 사회생활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밤잠을 설치는 것이 다반사다.
(물론 막상 체험학습을 가면 너무도 잘 지낸다. 대체 그 많은 시간들을 왜 그렇게 걱정을 달고 지냈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을 정도다.)
이번 학예회 사회도 아이에게는 처음 접하는 경험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 예상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한 불안감이 높은 아이에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선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도전이다. 안 하겠다고, 못 하겠다고 울고불고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함께 하는 6학년 오빠가 있어서인지 다행히 그러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본을 보며 “이걸 어떻게 다 외우냐”며 투덜거리는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아이의 감정이 진정되고 사그라들기를 잠잠히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학예회 1부가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 할 일을 다 끝냈다는 홀가분한 마음에 그제야 환하게 웃으며 신나게 친구들 틈으로 뛰어가는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아이의 굳은 얼굴을 보며 내 마음 한구석도 얼어붙어 있었는데, 아이의 미소를 보니 그제야 내 마음도 봄눈 녹듯 사르르 녹아내린다.
무대 위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사회를 보던 아이는 어느새 또 하나의 도전을 이겨냈다. 그 순간 아이의 마음 한구석에는 보이지 않는 작은 경험치가 조용히 빛을 더했다. 아이가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낯선 길에서도, 오늘 쌓인 이 작은 빛이 앞으로 아이가 스스로를 믿는 근거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