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글쓰기 10. 오늘의 정리
이사를 앞두고 슬슬 정리를 시작했다. 14년이라는 시간만큼 쌓여있는 짐들도 상당했다. 이런 게 있었나 싶었던 물건들이 속속 나오는 것을 보며 아이들에게 정리 안 한다고, 정리를 안 하니 어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있겠냐며 잔소리하던 게 미안할 지경이다.
남편은 버리기를 참 못한다. 나중에 쓸모가 있을 거라며, 나중에 분명 필요할 때가 있을 텐데 지금 버리면 또 사야 한다는 논리로 쌓아놓고 또 쌓아놓는다. 결혼 전에 입었던, 이제는 배불뚝이 아저씨가 되어 입지도 못하는 옷들, 유행이 한참 지나 레트로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어려운 옷이나 물건들을 잘 버리지 못한다. 그뿐 아니다. 물건이 담겨있던 박스들도 버리지 못한다. 나중에 중고로 팔 수도 있는데 박스에 담아서 파는 거랑 그냥 파는 거랑은 차원이 다르다며 상자까지 차곡차곡 모아놓았다. 결국 폐지로 버려질 운명이라는 걸 진정 모르는 걸까.
켜켜이 쌓인 먼지들을 털어내며 버릴 것들을 추려내다 불뚝한 박스 하나를 발견했다. 열어보니 20년도 훨씬 지난 편지들이 질서 없이 담겨져 있다. 남편과 연애할 때 서로 주고받은 편지들, 교생 때 받았던 편지들, 교회 언니, 동생들과 주고받은 편지들, 정말 짧은 교직 생활이었지만 제자들에게 받은 편지들까지.
엄마가 들고 나온 두툼한 상자가 궁금했던 세 아이들은 쪼르르 달려와 하나씩 편지들을 펼쳐 읽어나간다.
“푸하하하하. 엄마 이건 뭐야? 아빠한테 쓴 편지야?”
지금 읽어보면 진짜 손발이 오그라들다 못해 잘라버리고 싶을 정도인 내용들을 아이들이 읽는데 정말 너무 부끄러웠다. 내가 왜 그랬을까. 이런 간지러운 말을 이렇게 자연스럽게 하다니.
당시 유행하던 ‘러브장’(으악 너무 추억 돋지만 입에 올리기도 낯간지러운 단어다)은 왜 그리도 지극정성으로, 많이도 만들어줬는지 원. 그 정성으로 공부나 더 할걸. 아, 그랬으면 사랑스러운 세 아이를 못 만났겠구나.
“우와 엄마, 인기 엄청 많은 선생님이었구나.”
아직도 기억에 남는 나의 첫 제자들. 정확히 나와 띠동갑이었던 아이들, 아무것도 모르는 새내기 교사인 나를 잘 따라주었던 고마운 아이들. 그들이 써준 편지들이 한가득 있었다. 15년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얼굴이 생각났다. 가끔 SNS를 통해 대학생활, 취업소식 그리고 결혼 소식까지 듣긴 했으나 이렇게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쓴 손 편지가 주는 애틋함과 추억은 또 다른 것 같다. 엄마가 된 상황에서 아이들의 편지를 읽으니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왜 그렇게 아이들에게 내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냈을까. 정말 미숙하고 부족한 선생님이었구나. 둘째 아이가 나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것처럼 선생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쓰던 아이들의 그 마음들이 이제야 정확하고 선명하게 보였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글쎄 학부모님께 받은 카드도 몇 장 보인다. 아이를 처음 중학교에 보내며 어떤 심정이었을지, 보내놓고도 내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 걱정되고 염려되는 엄마의 마음이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살포시 그리고 조심스럽게 담겨있는 그 쪽지를 보며 내 아이의 첫 중학교 등굣날이 떠오른다. 그때 다 이해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이제 너무 정확히 알 것 같았다.
분명 14년 전, 이곳으로 이사 올 때도 바리바리 챙겨 왔으니 지금 내 손에 있는 거겠지. 그때도 받은 편지들은 작은 쪽지조차도 버리지 못하고 모두 모아두었다. 버리면 나에게 보내준 상대의 마음이 버려지는 것 같다는 생각에 고이고이 모아놓았는데 그렇게 소중히 여기던 편지함이 아이 셋을 낳고 늘어나는 아이들의 짐에 내 물건은 조금씩 자리를 내주었고 결국은 창고 깊숙한 곳에 빛도 온기도 받지 못한 채 그렇게 외면받고 있었다.
이 마음들을 이제 어찌해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다. 이제 여기서 안녕을 해야 할지 아니면 다음 이사까지 가지고 가야 할지. 며칠을 고민 후 이제는 그만 보내주기로 했다. 추억할 수 있고 즐거웠던 기억들이 떠올라 행복하지만 자꾸 과거를 보며 지금의 삶에 만족을 못 하고 감사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좋았던 날들이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데 발판이 되고 도움이 되면 좋을 텐데 이루지 못한 나의 꿈에 대한 아쉬움들이 더 올라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리지 못했던 그 편지들이 나의 가치와 존재를 증명해 주는 것 같아서 손을 놓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정리를 해야 할 것 같다. 다른 모습의 삶을 살고 있는 지금의 나도 괜찮으니까. 이 글을 쓴 후 내 손으로 직접 보내줘야지.
따뜻했고 파릇파릇했던 나의 청춘의 시절아 안녕!
아, 그러고 보니 아이들에게 받았던 편지, 카드, 쪽지도 집에 한가득 있는데 그건 어떡하지. 일단 그건 잘 가지고 있다가 아이들이 성인이 된 후 한 번 더 꺼내서 함께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