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알이가 태어났다.
첫아이는 예정일 보다 늦게 온다고도 하고 빨리 온다고도 했다. ( 사람마다 다르다는 말이다! )
아이가 예정일 보다 늦으면 머리가 커져서 자연분만이 어려워 질 수도 있으니 많이 움직이고 힘들어도 운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전시도 보러 가고 친구와 조금 강도가 센 산책을 하기도 했다.
예정일은 12월,
12월의 아이를 만난다고 생각하니 왠지 설레었다.
시언니가 삼겹살을 많이 먹으라고 하셔서 힘을 비축하기 위해(?) 삼겹살을 먹으러 갔다.
아이를 낳은 후 100일까지는 기름진 음식을 멀리해야 하기 때문에 마지막 만찬일지도 모를 삼겹살을 아주아주 맛있게 먹고 싶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즐겨 찾던 가게가 웬일인지 영업을 하지 않았다.
여기도 기웃, 저기도 기웃...
삼겹살을 파는 가게는 많았지만, 발길을 사로잡는 가게는 찾지 못했기에 새로 생긴 가게에 도전하기로 했다.
여자와 남자는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가게엔 도전하지 말자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내일은 맛있는 삼겹살을 먹자며 여자와 남자는 서로를 위로했다.
다음 날 아침은 왠지 다른 날과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오늘인가... 그치만, 아직 11월이니까 콩알아 며칠만 참았다가 나오렴...
콩알이를 다독이며 여자는 진통 간격을 체크해 주는 어플을 켰다.
가진통에 관한 얘길 많이 들었고 병원에 갔다가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불상사를 겪지 않으려면 진통의 간격을 잘 체크해야 한다고 했다. 나름 고통을 잘 참는다고 생각했던 여자는 평생 겪어보지 못했던 고통이 5분 주기로 찾아오자 이건 가진통일리 없다고 생각하고 짐을 챙겼다.
여자와 남자는 불안하고 설레는 발걸음으로 병원으로 향했다.
두려움에 휩싸인 여자의 마음과는 달리 이런 일은 많이 겪어봤다는 듯이 무심한 투로 주치의쌤은 가진통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병원에서는 달리 해줄 것이 없으니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거웠고 날이 섰던 것으로 기억된다.
섭섭함과 두려움으로 날이 선 여자와 곁에 있어주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남자의 시간은 더디고 느리게 흘렀다. 새벽이 되었고 여자와 남자는 다시 출산가방을 들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자궁문이 열리지 않았다며 집으로 돌아가서 더 기다렸다가 오거나 병원비를 지불하며 아무것도 먹을 수 없고 힘들지만 입원을 하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불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여자는 입원을 선택했고 그때부터 긴 진통의 시간이 시작되고 있었다.
분명 나는 아픈데 왜 내 아픔이 가짜라고 말하는 건지...
무심하게 말하는 의사쌤과 간호사들이 미웠다.
함께 어쩔 줄 몰라하는 남자도 왠지 미워 보였다.
그렇게 아침이 밝아왔고 여전히 자궁문이 열리지 않았다며 다시 집으로 가겠냐는 말을 들었을 때는 진심 욕하고 싶더란... 그러다가 1센티가 열렸고 3센티까지 열리고 남자에게 수술하면 안되냐며 앙탈을 부리기도 하고 세 번의 무통주사를 맞았으며 시어머니가 보시는 앞에서도 진통에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질렀다. 나를 지켜보던 엄마가 뒤돌아서 붉어진 눈시울을 훔치셨다.
무통주사를 맞으라던 선배맘들 무통주사는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말했었다. 처음 맞았던 무통주사는 선배맘들의 말처럼 모든 고통을 차단해 주었다. 1시간 후 무통주사의 효능이 사라지자 주사를 맞기 전보다 더 견디기 힘든 고통이 찾아왔다. 그 고통을 잊기 위해서 또 무통주사를 맞고자 했지만 정해진 시간이 지나야 다시 맞을 수 있다는 매몰찬 말이 돌아왔다. 초단위로 시간을 체크하고 두 번째 무통주사를 맞았다. 두 번째 주사는 처음과는 달리 모든 고통을 사라지게 해 주진 않더라. 짧은 시간이 지나고 다시 찾아온 고통... 세 번째 주사가 무통주사의 마지막이라고 했다. 마지막 무통주사는 맞지 않았을 때보다 살짝 고통이 줄어들었을 뿐이었다. 무통주사인데 왜...
금방이라도 아기가 나올 것처럼 힘이 들어갔고 숨이 쉬기 힘들어졌다. 어두컴컴한 분만실로 옮겨졌고 습습 후 후의 호흡법 따윈 기억에서 사라져 본능적으로 힘을 줄 수밖에 없었다. 숨을 쉬라는 남자의 말도 그때는 왜 그리도 섭섭하게 들리던지... 금방이라도 아기가 나올 것 같았지만, 아기가 내려올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릴 것으로 판단해서인지 분만실에 여자와 남자 둘만 남겨지기도 했더랬다. 세상에 둘만 있는 것 같이 당황스러웠고 외로웠다.
외롭고 정신을 잃을 것 같은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콩알이가 세상에 나오기 위해 힘을 쓰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 콩알이를 만나기 위해 여자도 마지막 힘을 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쌤은 아기 머리만 나오면 모든 고통은 사라질 거라고 말해 주었다. 더욱 힘을 주었다.
콩알이의 머리가 세상을 향해 나오는 것이 느껴졌고 누군가 콧구멍에서 수박이 나오는 것 같다고 했던 말을 이해하게 될 때쯤 쌤의 말처럼 거짓말같이 고통이 사라졌다.
내 가슴 위에 올려진 검붉은 핏덩어리...
콩알이가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