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다는 말에 나는 펜꽂이 맨 앞,
햇살이 가장 먼저 닿는 특별한 자리를 얻었다.
소중하다며 너는 나를 아꼈고,
나는 깎이지 않은 완벽한 끝과 한 번도 눌린 적 없는 지우개를 지닌 채
언제나 첫날의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옆자리의 검은 연필은 달랐다.
그는 매일 조금씩 몸을 내어주며 짧아졌고,
누군가의 편지, 일기, 생각의 파편들에 자신을 새겨 넣으며 살아갔다.
그의 몸에는 세월이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닳은 페인트, 이빨 자국, 움푹 패인 홈들.
모든 상처가 곧 그의 이야기였다.
나는 여전히 완벽했지만, 어딘가 텅 비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검은 연필은 너무 짧아져 사라졌다.
그 마지막 뒷모습이 어찌나 당당하던지,
쓰임을 다한 자의 떳떳함이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아름다움은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곳에 쓰이는 데 있다는 걸.
나도 무언가를 남기고 싶었다.
네 손에 잡혀, 누군가의 마음에 닿고 싶었다.
하지만 써주길 기다리다,
결국 한 번도 쓰이지 못한 연필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예쁘기만 한 애물단지가 되었다.
여전히 완벽하게,
여전히 외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