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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슴뿔 Jan 01. 2022

'요즘 누가 수선해서 입나'

 어릴때는 가지고 싶은 것이 많았다.  예쁜옷도 사고 싶고 멋진 가방도 신발도 사고 싶었다. 그랬는데 어느 순간 잘차려입는 것에 대한 욕구가 사라져버렸다. 사회생활에 딱 필요한 정도로만 챙겨입고 특별한 날이 아니면 화장하는 일도 거의 없어졌다. 익숙한 옷을 좋아해서 거의 같은 옷을 입는다. 그러다보니 해지거나 수선해야할 일이 자주 생긴다.

 

 오늘의 수선 물품은 15년된 빨간색 야구모자이다. 조절하는 뒷부분이 떨어져서 수선을 맡겼는데 비슷한 천이 없어서 버리는 모자의 플라스틱으로 된 조절부분을 떼어 붙여주셨다.

 수선방 주인할매는 세월이 어느땐데 그냥 버리지 또 고쳐입냐며 혀를 끌끌차면서도 내심 내가 가는 걸 반가워하는 것 같다. 할무니는 50년을 바느질 일을 해왔는데 언제부턴가 바짓단 수선조차도 하러 오는 사람이 없어서 많이 한가하다고 한다.  요즘엔 판매처에서 바로 수선해주니 동네 수선집에 맡기는 사람은 앞으로도 더더 없을 것 같다.  한가하다는 말이 쓸쓸하게 들려서 자주 들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전엔 오랫동안 썼던 가방 끈이 해져서 남포동 국제 시장안에 있는 가방 수선집에 들렀다. 미로같은 골목골목을 지나 낡은 건물 지하 1층에 자리잡은 수선집은 엄청나게 두꺼운 돋보기를 쓴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곳으로 작은 공간에 오랜 세월이 흔적이 묻어나는 그런 곳이었다.

 분위기상 장인이 운영하는 곳이구나 싶어 냉큼 맡겼는데...

수선을 마친 가방이 뭐랄까… 해졌지만 해지지 않은 것만 같은 묘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수선한 것인지 물어보니 가방끈을 새로 갈면 비용이 많이 들테니 해진부분에 검은색 매직을 칠했다고 한다. 정말? 매직을...? 아니, 이런 창의적인 수선법이 있다니…? 수선비는 0원이라고 해서 대신 할아부지와 친구분들께 국제시장표 길다방커피를 대접하고 나왔다.  








덧,

매직을 칠한 가방끈은 얼마 후 다시 벗겨졌다. 아예 끈을 교체하려고 백화점에 갔더니 20만원이라고 하여 다시 영감님께 재수선을 맡겼다. 못쓰는 가죽자켓을 잘라 손잡이에 덧대어 감싸주었는데 바느질이 삐뚤빼뚤하다. 장인은 아니셨나보다. 하지만 삐뚤한 바느질 모양도 꽤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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