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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슴뿔 Feb 01. 2022

독서일기-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

요즘 집 근처 도서관에서는 독립출판물 특별 전시 중이다. 창의적인 책들이 많다. 크기도 재질도 내용도 다양하고 자유롭다. 아는 사람들의 책들도 눈에 들어온다.

그러다 묘하게 낯익은 표지가 보여 집어든 책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  



 저자와는 블로그 이웃이었다. (과거형인 이유는 그때 쓰던 아이디를 삭제해버려서)

백수로 살아가는 일상과 신변잡기적인 글들을 모아놓은 블로그였는데 책을 내겠다며 본인이 직접 그린 그림으로 표지 시안들을 올린 것이 기억이 났다.

결국 책을 냈구나. 그리고 그 이상한? 시안을 정말 책 표지로 정했구나.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 -김봉철.  독립출판





 

 저자 김봉철은 빅맥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30년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본인 같은 찌질한 사람이 입 밖으로 그런 고급러운 영어 단어를 소리내서 말해도 되는 걸까, 점원이 비웃지는 않을까, 너무 고민이 되어서 그 단어를 말하는데 그렇게 힘들었다고 한다.

 나 역시 사람과 대면하지 않다보니 말하는게 어색해져서 가게에서 뭘 달라 말하는 것조차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던지라 엄청나게 공감하며 블로그를 읽었다.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를 검색하니 인터뷰 영상이 나왔다. 그런데....생각보다 말을 잘해서 놀라고, 멀쩡하게 생겨서 놀랐다!  (솔직히 안여돼 알았는데 히키코모리에 대한 편견이 이렇게 무섭다.) 왠지 모르게 약간의 배신감이 들면서도 작가가 되어 책을 여러 권 낸 걸 보니 내가 키운 것도 아닌데 마음이 뿌듯하고 벅차다.


 그의 글을 읽었던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10년도 더 전이다. 긴시간이 지났음에도 그 블로그를 기억하는 이유는 격하게 공감하는 어떤 부분 때문인데 그건 블로그 모든 글의 전반에 깔린 죄책감과 수치심이라는 감정이었다.   

 나 역시 내 존재 자체를 부끄러 다. 이유에 대해 많이 고민했고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 시작은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나를 부끄러워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였던 것 같다.  

 나는 소아당뇨라고 불리는 1형 당뇨병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많이들 알고 있지만 옛날에는 이 병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대형 병원 의사가 아닌 이상 원인과 치료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의사도 많았다.  

 당뇨병이라고 말하면 열에 아홉은 '어린애가 몸관리를 어떻게 하길래  벌써 당뇨병에 걸리냐'라고 반응하던 시절이었다.

 어떤 관리를 했어야 할까. 걸음마때부터 알아서 운동도하고 식사조절도 해야했을까. 1형당뇨는 자가면역질환이지만 원인이야 어찌되었든 엄마는 그런 나를 부끄러워했다. 한참 지나서야 왜 그랬는지 물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본인도 한창인 나이에 아픈 딸을 혼자 키워야 하는 상황이 무서웠고 그래서 내가 밉고 원망스러웠다고 한다. 혈당이 올라가니 뭘 먹을 때마다 엄마는 화를 냈다. 나는 엄마를 너무 좋아해서 엄마가 싫어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늘 배가 고팠다.   


 부끄러움에 관한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 있다.


 답사를 가던 날이었다. 버스 안에서 빵과 우유를 나눠주는데 내 차례에 갑자기  '넌 이런거 먹으면 안되잖아'라며 주지 않았다. 빵 먹는다는 생각에 몸이 달아있던 나는 갑자기 절박해져 동생한테 줄거라고 거짓말을 했다.(동생 없다) 빵을 먹는 친구들 틈에 초조하게 앉아있다가 버스가 휴게소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에 가서 몰래 먹었다. 숨어서 먹는 내가 너무 싫은데 그 와중에 빵은 너무 맛있어서 울었다. 그리고 몰래 먹은 걸 친구한테 들켰고 부모님한테 부끄럽지도 않냐는 말에 부끄러워서 또 울었다.


 지금은 인슐린이 매직펜처럼 생겨 누가봐도 거부감이 없지만 예전엔 주사기로 되어있었다. 그걸 꺼내면 사람들이 놀랄까봐 그리고 구구절절 설명하기 싫어 화장실에 숨어서 맞았다. 밥 먹을 때만 되면 가방 싸들고 화장실 가는 걸 이상하게 여기고 '안좋은 습관은 고치라'고 한마디씩 했던 선배, 선생님, 직장상사가 있었는데 사정을 말하고 나면 너무 과도하게 나에게 맞춰주려 해서 이내 불편해지곤 했다.  


 가까운 친구들은 나에게 이런 병이 있다는 걸 알지만 그 병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다. 어느 겨울이었는데 인슐린에 비해 식사가 부족했는지 혈당이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저혈당이 되면 빨리 당분을 보충해줘야 하는데 그 날따라 가지고 나온게 없어서 음료수나 사탕같은 것 있냐고 다급하게 주변을 뒤졌고 누군가 영문을 모른채 음료수를 내게 내밀었다. 저혈당이 뭔지 모르는 내 친구는 당뇨병이라 단것은 주면 안된다며 음료수를  빼앗아버렸는데 이후의 일은 정확하게 기억이 안난다. 병원이었고 엄마가 와있었고 몸관리 하나 못하냐고 마구 소리지르며 화를 내고 있었다. 정확히 기억 안나는 것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엄마한테 미안하고 추운날에 갑자기 땀 흘리며 손을 벌벌 떨면서 단걸 찾아다니는 나를 어떻게 봤을까 창피해서 원래부터 잘 안가던 학교를 더더욱 가지 않게 되었다. 

  성장내내 이런 일들의 반복이었다. 사람을 깊게 사귀지 않게 되고 집에 있는 날이 많았다. 혼자 지내는건 편안했지만 근본적인 수치심과 죄책감을 떨칠 수 없어 자주 힘들었다. 그랬던 그 시절 김봉철의 블로그는 직접적인 위로를 건네는 글 따윈 없지만 세상엔 더 이상하고 막돼먹은 인간이 있다는 걸 확인 시켜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와 안식이 되던 곳이었다.


 나는 더이상 누군가에게 미안해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래도 사람들과 밥먹는게 편하지는 않아서 억지로 누군가와 같이 밥먹지 않아도 되는 백수신분이라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먹고 사는 걱정은 덜고 하루를 좋아하는 일로만 채우며 지낼 수 있게 되어서도 너무 다행이다.  

 혼자 있음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누군가로부터 숨는 것이 아니라 혼자있는 걸 좋아해서 혼자있다는 점은 달라졌다. (같이 있는 것이 좋으면 언제든 같이 할 것이다.)

 방문 틈으로 세상을 훔쳐보던 30대 쓰레기 백수 김봉철도 세월의 고비 고비를 넘어 인간세상에 잘 안착한 것으로 보인다. 어두운 시절을 빠져나와  나름의 성장을 이루었다니 그도 나도 참 기특하고 대견하다.  





그 시절 신나게 댓글 달던 방구석 인간들 모두 각자의 성장을 이루었길..





매장'과 '파종'의 차이는 있다고 믿는다. 생의 한때에 자신이 캄캄한 암흑 속에 매장되었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사실 그때 우리는 어둠의 층에 파종된 것이다. 청각과 후각을 키우고 저 밑바닥으로 뿌리를 내려 계절이 되었을 때 꽃을 피우고 삶에 열릴 수 있도록. 세상이 자신을 매장시킨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을 파종으로 바꾸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파종을 받아들인다면 불행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아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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