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주민센터에서 주관하는 발목펌프운동이라는 수업에 참여한 적이 있다. 누워서 하는 편한 운동이다 보니 수강생의 연령층이 높았고 말하기 좋아하는 어르신들이 많다 보니 아주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으르신들의 필수 코스인 병 자랑 시간이 시작된다. 나의 병 자랑을 들은 한 할머니가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그건 순환이 되지 않아 생기는 병들이 아니냐며(사실이다) 자기랑 꼭 가야 할 곳이 있단다. 밑도 끝도 없이 그렇게 손 잡혀 간 곳은 산속에 있는 매우 수상해 보이는 건물이었고 외진 곳임에도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뭔지도 모르고 얼떨결에 듣게 된 것은 의료기기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세미나였는데 어느 정도 일리 있어 보이는 건강 상식들을 나열하고 그 기기를 이용한 결과 병이 나았다 하는 뭐 그런 뻔한 스토리였다. 스토리는 뻔하지만 기기를 발명한 박사님이라고 불리는 사람의 입담이 너무 좋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다. 그 기기는 빨판이 앞에 달린 작은 청소기 같은 것인데 그걸로 살갗을 빨아들이면 온갖 노폐물이 빠져나가고 혈액순환이 되어 만병을 통치한다나 뭐라나. 구석구석 빨아 당겨 순환을 도와준다는 것은 뭐 나름 일리 있어보이지만 기기의 가격은 전혀 일리 있지 않다 생각했는데 내 생각을 눈치챈 할머니는 안사도 된다며 본인 집에 그 기기를 사다놨으니 잘 들어놨다 꼭 와서 하라 신신당부했다.
밑져야 본전이고 새롭게 사귄 친구와의 교류를 위해 그 날 이후 할머니 집에 가서 매일 그 기기를 체험했다. 피부를 빨아당기니 시퍼렇고 붉은 자국들이 생겨 피부가 멀쩡한 날이 없었다. 매일 다른 부위를 돌아가며 해야하는데 얼굴을 한 날은 어디서 얻어맞은 꼴이 되어 일주일간은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는 지경이었다. 판매자는 이것을 명현현상(?)이라며 점점 적응해서 멍이 들지 않게 된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자 젊은애도(나다) 드나들며 받는다는 신식 치료법이라 소문이 나서 의도치 않게 홍보에 보탬이 되었고 결국 그 기기는 온 동네 할머니들이 다 하나씩 가지게 되었다.
기기의 효과에 대해 내가 단정할 순 없지만 작은 청소기처럼 생긴 그것은 청소기의 약 30배 가격이었으니 말도 안 되게 비쌌고 가격을 알게 된 자녀들의 분노가 할머니들을 향했다. 자녀들 생각처럼 할머니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라서 이걸 산 걸까. 나도 늘 그런 어리석은 소비들을 해온 입장이라 어떤 마음으로 산 것인지 너무 잘 알아서 괜히 속이 상했다.
누가 봐도 허술해 보이는 약이나 의료기기들을 고가에 사게 되는 것은 사람들이 바보라서 속는 것이 아니라 혹시라도 하는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는 그 절박함과 간절함 때문일 것이다. 그 맘을 이용하여 뭐든 팔아먹어보려는 하이에나들이 시골 동네를 돌아다니며 가짜 약과 물건들을 팔아제끼는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