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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슴뿔 Apr 27. 2023

모르는게 아니고 알아도 속는거라고.

동네 주민센터에서 주관하는 발목펌프운동이라는 수업에 참여한 적이 있다. 누워서 하는 편한 운동이다 보니 수강생의 연령층이 높았고 말하기 좋아하는 어르신들이 많다 보니 아주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으르신들의 필수 코스인 병 자랑 시간이 시작된다.  나의 병 자랑을 들은 한 할머니가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그건 순환이 되지 않아 생기는 병들이 아니냐며(사실이다) 자기랑 꼭 가야 할 곳이 있단다. 밑도 끝도 없이 그렇게 손 잡혀 간 곳은  산속에 있는 매우 수상해 보이는 건물이었고 외진 곳임에도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뭔지도 모르고 얼떨결에 듣게 된 것은 의료기기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세미나였는데 어느 정도 일리 있어 보이는 건강 상식들을 나열하고 그 기기를 이용한 결과 병이 나았다 하는 뭐 그런 뻔한 스토리였다. 스토리는 뻔하지만 기기를 발명한 박사님이라고 불리는 사람의 입담이 너무 좋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다. 그 기기는  빨판이 앞에 달린 작은 청소기 같은 것인데 그걸로 살갗을 빨아들이면 온갖 노폐물이 빠져나가고 혈액순환이 되어 만병을 통치한다나 뭐라나. 구석구석 빨아 당겨 순환을 도와준다는 것은 뭐 나름 일리 있어보이지만 기기의 가격은 전혀 일리 있지 않다 생각했는데 내 생각을 눈치챈 할머니는 안사도 된다며 본인 집에 그 기기를 사다놨으니 잘 들어놨다 꼭 와서 하라 신신당부했다.

 밑져야 본전이고 새롭게 사귄 친구와의 교류를 위해 그 날 이후 할머니 집에 가서 매일 그 기기를 체험했다.  피부를 빨아당기니 시퍼렇고 붉은 자국들이 생겨 피부가 멀쩡한 날이 없었다.  매일 다른 부위를 돌아가며 해야하는데 얼굴을 한 날은 어디서 얻어맞은  꼴이 되어 일주일간은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는 지경이었다. 판매자는 이것을 명현현상(?)이라며 점점 적응해서 멍이 들지 않게 된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자 젊은애도(나다) 드나들며 받는다는 신식 치료법이라 소문이 나서 의도치 않게 홍보에 보탬이 되었고 결국 그 기기는 온 동네 할머니들이 다 하나씩 가지게 되었다.

기기의 효과에 대해 내가 단정할 순 없지만  작은 청소기처럼 생긴 그것은 청소기의 약 30배 가격이었으니 말도 안 되게 비쌌고 가격을 알게 된 자녀들의 분노가 할머니들을 향했다. 자녀들 생각처럼 할머니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라서 이걸 산 걸까. 나도 늘 그런 어리석은 소비들을 해온 입장이라 어떤 마음으로 산 것인지 너무 잘 알아서 괜히 속이 상했다.

 누가 봐도 허술해 보이는 약이나 의료기기들을 고가에 사게 되는 것은 사람들이 바보라서 속는 것이 아니라 혹시라도 하는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는 그 절박함과 간절함 때문일 것이다. 그 맘을 이용하여 뭐든 팔아먹어보려는 하이에나들이 시골 동네를 돌아다니며 가짜 약과 물건들을 팔아제끼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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