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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슴뿔 Jun 15. 2023

3. 세상에서 제일 돈 없는 사람이 된 기분

나의 영도 정착기

 한정된 돈과 시간으로 조건에 맞는 집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  


 대형 부동산 관련 사이트에 내가 원하는 조건-시내와 대형병원이 가깝고 바다가 바로 앞에 보이고 남향이고 주차공간이 있고 -의 집을 찾는다는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부산 쪽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조건에 딱 맞는 곳이 있다며 추천해 준 집이 마린 시티다. 단어 조합만으로도 비싸 보이는 그 동네의 집 가격을 조심스레 물어보니 00억이란다. 뒤이어 추천해 주는 비슷한 조건의 빌라조차도 나에겐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가능한 예산도 함께 올려두었는데 왜 이런 추천을 하는 건지 조롱당한 기분이 들어 괜히 맘이 상했다. 사실 부동산은 본인의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인데 집을 구하러 다니는 과정 중에 나도 모르게 옹졸해져 있었다.

  집을 구하며 떠돌아다닐 때마다 매번 빈민층으로 한 없이 추락하는 기분이 들곤 했다.  대학교 근처 원룸을 찾을 때도 그랬고 직장인이 되어서 지하철 노선도를 펼쳐놓고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의 집을 찾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서울에서 내가 가진 돈으로 가능한 집들은 달동네 판잣집 수준이었고 그 안에서라도 조금 더 좋은 환경을 찾으려 발버둥 치지만 결국 식비를 줄여야 할지 월세를 줄여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놓이곤 했다.

 어릴 땐 아는 게 없으니 부동산 소장님들을 대하기가 더욱 어려웠는데 애초에 그들이 추천하는 집은 내가 살 수 없는 가격대이고  그나마 내가 가진 돈에서 가능한 물건을 부동산이 선심 써서 찾아주는 느낌인지라 부동산 소장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애썼던 것 같다. 눈치 보며 부동산에 앉아 있으면 자존감이 쪼그라들다 못해 극빈층으로 추락한 기분이 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순진해 빠졌던 것 같다.  








 어쨌든 그날도 그런 막막한 기분으로 부산 바닷가 부동산을 돌아다녔고 역시나 별 소득 없이 돌아가는 길에 영도 흰여울길을 지났다.  마침 날이 너무 좋은 데다 흰여울길에서 보이는 영도 바다는 윤슬이 부서지며 반짝이고 있었다.  


영도 바다 풍경 멀리 떠가는 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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