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도 정착기
결국 나는 집을 구했다.
부산에, 그리고 바다 바로 앞에. 내가 원하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춘 곳에.
명함에 적힌 부동산은 조금 떨어진 노후된 아파트 단지에 붙어 있는 작은 부동산이었다. 재개발 부동산과 언니 동생하는 사이라 또 다른 사기꾼일까 긴장했으나 다행히 집은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다. 바로 집을 계약했고 학자금 대출 이후 처음으로 큰돈을 대출받았으며 처음으로 내 소유의 집이 생긴다는 사실에 묘한 긴장감이 들어 잠을 설쳤다.
바다 바로 앞에 지어진 이 집은 시시각각 변하는 영도 바다의 아름다움을 통창에 가득 담아 보여준다. 맑은 날엔 제주 바다와 같은 에메랄드색이었다가 해가 질 무렵엔 천천히 분홍빛이 내려앉아 바다는 보라색으로 변한다. 조금 더 지나면 배들에 불빛이 하나씩 켜져 바다 위에 별이 내려앉은 듯 반짝이기 시작한다. 새벽이 되면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사라져 마치 배들이 구름 위에 떠가는 것 같은 비현실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해무가 생기는 계절은 더욱 몽환적이다.
멀리 수평선에서 스멀스멀 다가오는 구름들이 순식간에 배와 붉은 등대를 안갯속으로 숨겨버린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새하얀 이 풍경은 조금 두려우면서도 신비로웠다.
맘에 쏙 드는 집을 구한 나는 앞으로의 나날들이 기대가 되었다.
이 때는 집이 생긴 기쁨에 취해 이 해무도, 바다도, 영도도 그저 좋게만 보였다.
앞으로 다가올 고난의 시절은 예상도 못한 채…. 역시 한 치 앞도 못 보는 것이 인간이다.